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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랑드르의 한별 Nov 03. 2024

[한 주, 한 작품] 3.아스크 역의 전화기

[1 semaine, 1 oeuvre] poste téléphonique

휴대전화 없는 삶은 오늘날 상상하기 어렵지만, 지금으로부터 80년 전엔 집전화를 소유한 가정이 아주 드물었다. 특히 2차 세계대전으로 황폐화된 프랑스 북부의 작은 마을에선 전화 자체가 귀해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통신 관련으로 일하는 직종이 아니라면 더욱 보기 힘들었다. 지금은 간이역이 되어버린 작은 아스크 Ascq 역에서 온 20세기 초반의 전화기는 이 마을의 가장 고통스러운 비극을 담고 있다.


[한 주, 한 작품] 3.아스크 역의 전화기

빌뇌브 다스크의 아스크 학살 추모관


아스크는 현재 '아스크 신도시'란 뜻의 빌뇌브 다스크의 한 구역으로, 예전에는 3500명 정도가 거주하는 마을이었다. 벨기에와 프랑스 사이에 위치한 철로 덕에 유동인구가 많아서 역 주변으로 시내가 형성됐다. 1944년 독일군은 연합군의 지속되는 공격과 레지스탕스 운동으로 잃은 병력을 무마하기 위한 총공격을 준비하기 시작했고, 점령국의 일반 시민을 향한 무차별 공격도 더욱 심해지고 있었다. 이런 흐름에서 레지스탕스 운동이 활발했던 아스크는 언제 독일군의 목표가 될지 알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같은 해 4월 1일 토요일 저녁, 나치 군수품 수송차를 노리던 아스크 레지스탕스 그룹이 기획한 철로 폭발로 기차 탈선이 일어났다. 하지만 그 기차에 타고 있던 것은 군수품이 아닌 나치 친위대(SS)였으며, 이들이 다음날 새벽까지 아스크 주민과 마을에 잠시 묵고 있던 외지인을 모두 포함해 남성 86명을 무작위로 사살한 사건이 바로 아스크 학살이다.


기차 탈선 당시 아스크 역에는 두 명의 역무원이 야간근무 중이었다. 두 명 모두 기차에서 내린 나치 근위대에게 공격당하고 기절하지만, 둘 중 엘리 드라쉬가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후 릴 중앙역으로 구조 요청을 했다. 그 연락 수단이 바로 전화기였다. 물론 사진의 전화기가 그 순간에 쓰였는지의 여부는 알 수 없으나, 같은 시기에 마스크 역에서 사용됐던 같은 기종이다. 이 전화통화가 학살을 저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제 아스크역의 전화기는 역사에서 멀지 않은 '아스크 학살 추모관 Mémorial Ascq 1944'에 전시되어 있다. 프랑스인도 알지 못하는 제2차 세계대전의 비극을 담고 있는 이 뮤제에선 4월 1일 밤에 왜 레지스탕스 그룹이 철로를 폭파했는지, 누가 이런 학살을 명령했고 사망한 86명은 어떤 사람이었는지, 학살 이후에 마을은 어떻게 되었는지를 차분한 태도와 최대한의 정보로 풀어낸다. '적군과 아군의 대적' 같은 단순한 프레임으론 이해하기 어려운 이 역사의 한 조각을 여러분이 들여다 볼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인 셈이다. 80 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 여전히 현대사회에서도 평행선을 그리고 있는 한, 우리는 이 학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건강상의 문제로 한 주 늦게 올라왔습니다. 기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한 주, 한 작품은 '프랑스 뮤제로의 산책 : 오 드 프랑스 편' 발간을 축하하며, 책에 소개된 열네 곳의 뮤제의 독특한 전시물 하나를 소개하는 시리즈입니다. 이 책은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만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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