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처질 걱정 없는 다양성
숫자로 삶을 수치화하는 사회의 축소판이 궁금하면 1학년 교실로 오시면 된다.
선생님 몇 살이에요?”
질문에 답해주지 않지만 내 답과 상관없이
“우리 엄마 40에요. 우리 엄마가 더 많을걸요.“
“하, 우리 아빠 50살이야.”
“우리 할머니 나이 100개 넘을라고 해.”
온 가족 나이를 꺼내 누군가를 이겨야만 끝이 난다.
선생님 돈 얼마 있어요?”
질문에 답해주지 않지만 내 답과 상관없이
“나는 집에 십만원 있는데.”
“야, 십만원? 내 통장에 백만원 있거든?”
“우리 아빠 백억 있어.”
“우리 집에 돈 백조 백경 백해 무한대 있어.”
서로 허풍 떨다가 뻥치지 마라고 싸우며 끝이 난다.
“제 키 120 넘었다요.”
“나는 124미터. 내가 더 커.”
“우리집에 물티슈 24개 있어요.”
“엄청 적네. 마스크 87, 88, 89나 있다.”
“오늘 아침에 9등으로 교실 오고 1등으로 급식 먹었어요.”
“나 오늘 화장실 5번 감. 나보다 많이 간 사람?”
“12개 맞춘 내가 1등 맞죠? 엄마한테 말해주세요.”
“우리 엄마 아빠 결혼은 1번 했는데 아기는 2번 낳았어요.”
우리 엄마는 두 번 결혼했어요.”
온통 숫자 경쟁에 심취하여 이건 나만 들은 것 같아 다행이다.
실생활에 수를 대응하여 양과 빈도, 순위를 세는 대화는 수 감각을 길러준다. 그러나 내 숫자를 친구들과 비교하며 우월감을 찾거나 박탈감을 느끼는 일이 생길까 두렵다.
수에 대한 흥미는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수에 대한 좋은 경험은 어른인 우리가 만들어 줄 수 있다. 보이지 않는 과정은 보이는 숫자보다 더 뜨거운 가치가 담겨 있음을 강조할 것이다. 서로를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다름을 읽는 교실에서 뒤처질 걱정 없는 다양한 세상을 가르칠 것이다.
퇴근길, 맥주 한잔 한다.
의미 없는 비교로
갈등을 조장했던 내 말들을 반성해.
그런데.
나 500cc 한번에 4잔 마실 수 있어.
시속 4잔.
넌 나한테 안되잖아?”
나 숫자 선생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