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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차선령 May 26. 2024

30. 형님의 위엄

우리 형님 멋지다~ 할까요?

너 때문이야!”

교실에 누워 오순도순 빅북을 읽던 둘이 참 이쁘다 싶었는데 읽는 속도가 달라 책장이 찢긴다. 속은 쓰리지만 책이 얼마나 재미있으면 그랬을까 싶고 찢어지는 소리에 지들이 더 놀라 서로 탓을 하는 모습도 8살 같아 귀엽다. 이번엔 <형님 작전>을 꺼낸다.


유치원 동생들이 이런 모습 보면
우리 형님들 멋지다고 할까요?”
이번 금요일, 유치원에
그림책 읽어주러 갑니다.”


책을 펼치지 않는 아들이 유치원 때 읽던 책을 꺼내 그 책만 며칠째 자기를 앉혀놓고 읽어준다고 대체 뭔 일인지 학부모님께서 깜짝 놀라신다. 이 책이 나을지, 저 책이 나을지, 자기 읽기 실력이 유창한지 쉬는 시간마다 조언을 해주고 난리다.


유치원에 가니 기가 찬다. 어리광만 피우던 녀석들이 ‘이 유치한 장난감을 아직 만지나, 어려서 이해하겠냐, 더 쉬운 책 가져올걸 그랬다.’ 거드름 피운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1:1로 짝을 맺어주면 어느 순간 여기저기서 다정한 목소리를 장착하여 또박또박 책을 읽어주는 소리가 들린다. 책에 대한 질문과 답을 나눈 후 자유놀이를 한다.


욕심내고 규칙을 지키지 않는 동생들이 있지만 선생님이 나설 필요가 없다. 지금 이순간 세상에서 가장 의젓한 1학년 형님들이 있으니.

이렇게 다녀오면 유치원 동생들에게 본 잘못된 행동들을 본인이 하지 않도록 조절한다.


누워서 애들 생각에 피식거리다 나도 다르지 않다는 것을 깨우친다. 동생에겐 엄석대, 부모님께는 천하의 게으름보. 친구들 사이엔 물가에 내놓은 애라 불려도 후배 선생님들에게는 멋진 선배로, 선배 선생님께는 열심히 하는 후배로 보이고 싶다.


학교에서 들리는 욕을 지나치지 못해 매번 불러 세운다.

1학년 동생들이 욕을 배워 쓰고 있어.
어떻게 생각하니?”


요즈음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는 고학년들 욕에 이어지는 소리.

1학년 애들 들어, 임마.”


형제자매가 많지 않은 요즈음, 선배와 후배가 만나 채우는 영역이 있을 수 있다. 작은학교에서 ‘학년군 프로젝트’와 ‘1~6학년 6남매 동아리’ 활동이 만든 선후배 관계의 끈끈함을 보았다.


다음 달에는 직접 만든 ㄱㄴㄷ 단어 그림책을 읽어주러 간다. ‘몇 밤 남았냐.’고 하루에도 몇 번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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