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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완희 Feb 25. 2024

4화 다산(茶山)앞에서의 다사(多思)

with.  '벗'에게로 가는 오솔길

 12월의 어느 주말 오후, 아이들과 오랜만에 대구 반월당에 있는 'yes 24 중고서점'을 가게 되었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만화책 코너로 향했고, 나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어느 한쪽 구석에 앉아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우연히 보게 된 책 한 권. 표지 왼쪽 부분이 바래진 옛날 서책 같은 느낌의 책이었다. 나는 무언가에 이끌리 듯 책을 집어 들었고, 아이들을 기다리는 동안 책을 살펴보았다.


 잠깐의 시간이었지만, 나는 책을 읽으며 '이 책을 아이들에게 꼭 읽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모든 부분이 다 마음에 들었지만, 특히 책 속의 '생각하며 느끼며'라는 부분이 마음에 크게 와닿았다.


나는 평소 아이들과 식사를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는 편인데, 생활습관에 관련된 얘기가 나올 때마다 처음 내 마음과는 다르게 항상 '잔소리'로 끝맺음을 하는 경우가 많아서 속상했었다. 그런데 '생각하며 느끼며'라는 부분엔 내가 진심을 다해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들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 적혀있었고, 아이들 또한 엄마의 잔소리가 아닌 '책 속의 선생님'을 만나 옛날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생각과 행동에 대해 스스로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책은 바로  다산 정약용 '아버지의 편지' (한문희 엮음/함께 읽는 책 출판사)라는 책이다.


 '아버지의 편지'라는 책은 조선후기의 실학자인 다산 정약용이 오랜 기간 사랑하는 가족의 품을 떠나 멀리 유배지에 머물러있으며 학연과 학유 두 아들에게 편지의 내용이 담겨있다. 뜻을 세워 독서와 공부에 정진해야 한다는 것과 부모님께 효도하고 형제간에 우애로우며 웃어른을 공경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는,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강조하시며 멀리 나아가서는 배운 학문을 백성들의 생활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연구하는 일도 매우 중요함을 일러주었다.

 때로는 꾸짖듯, 때로는 격려하듯 두 아들을 올바른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가르치는 '아버지' 다산 정약용의 모습을 느낄 수 있고, 또한 다산 정약용은 어떤 분이셨는지 아이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소개해 놓은 책이다.


 그렇게 아이들과의 다산 정약용  '아버지의 편지'라는 책 읽기가 시작되었다.

 매일 저녁 9시 "엄마옆으로 모두 집합!"

내가 남에게 베풀지 않았으면서도 남이 먼저 나에게 베풀어 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희의 오만한 뿌리가 아직도 제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유념해서 평소 일이 없는 날에도 공경하고 화목하며 근신하고 성의를 다하여 여러 일가붙이의 마음에 들도록 힘써야 할 것이요, 절대로 마음속에 보답을 바라는 싹을 남겨두지 말아야 할 것이다.

- 다산 정약용'아버지의 편지' 중 남을 도울 줄 아는 사람이 되거라. p97


 남의 도움을 받기보다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다산 선생님(다산 정약용을 줄여서 '다산 선생님'이라 하겠다.)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이들은 친구에게 도움을 받았던, 친구에게 도움을 주었던 서로의 경험을 이야기해보기도 하고, 도움을 주고받을 때의 마음가짐에 대해서도 서로 생각을 나눠보았다.


 아이들은 다산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떨 땐 자신의 행동에 대한 반성과 성찰의 마음도 가지며, 어떨 땐 낮은 톤의 목소리로 아버지의 편지 중 다산 선생님이 말씀하신 내용을 흉내 내듯 말해보기도 하며 다산 선생님이 가까이에 있는 친할아버지 외할아버지처럼 '편안하고 친근한' 사람으로 아이들의 일상 속에 자연스레 스며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한 달여간 엄마와의 책 읽기가 끝날 무렵, 책에 다산 선생님이 귀양살이를 할 때 거처하셨던 '다산초당'이 나왔다. 아이들은 다산 선생님이 계셨던 다산초당을 많이 궁금해했고, 우리는 직접 강진의 다산초당과 다산 선생님의 벗이었던 혜장스님에게로 가는 백련사 오솔길을 가보기로 하였다.




 다산 선생님을 만나러 갔던 2021년 1월 25일.

전라남도 '강진'이라는 곳에 아이들과의 여행은 처음이다. '아버지의 편지'라는 책이 아니었다면 나와 아이들이 지금 여기에 있을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면서, 나와 아이들이 살고 있는 시대와 다산 선생님이 사셨던 시대가 다르지만, 무언가 끌어당김의 힘이 느껴졌다.


 다산 선생님이 나와 아이들을 아버지의 편지라는 책 속의 세상으로 초대했다는 착각이 드는, 다산 초당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실 거라는 또 다른 착각 속의 세상으로 한걸음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길 입구에서 다산초당까지의 거리는 총 300m. 아이들과 천천히 산길을 걸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걸은지 얼마 되지 않아 수백 년도 더 된 나무들과 나무의 뿌리들이 보였다. 순간 '와..'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뿌리는 생각보다 굵었고 단단했지만, 껍질이 벗겨져 상처가 나 있는 것도 많았다. '땅 밑에 있어야 할 뿌리들이 왜 이렇게 땅 위로 올라와있지?'라는 물음이 생길 정도였다.

아이들은 나무를 관찰하며 굉장히 신기해했고, 나 또한 아이들과 함께 나무와 뿌리들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 있었다.



 뿌리를 밟지 않고서는 올라가기 힘들 만큼 서로 엉켜져 있었던 '뿌리의 길'.


 나는 뿌리의 길을 걸으며  '다산 선생님의 힘드셨을 귀양살이'가 생각났다. 말을 할 수 없는 나무의 뿌리처럼, 다산 선생님도 힘든 귀양살이로 인해 가족과 사회로부터 느꼈을 고립감과 객지 생활의 가난 그리고 건강이 악화되어 중풍을 앓은 후로 평생을 고생하셨지만 열악한 환경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학술과 저술에 몰두하여 백성을 살리고 나라에 보탬이 되는 실학을 연구하셨다. 그렇게 500여 권의 책을 집필하며 끝을 맺게 되는 다산 선생님의 18년 동안의 귀양살이. 험난함 속 묵묵함을 지키고 있는 나무의 뿌리와도 같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다시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뿌리의 길'을 가더라도 가벼운 마음으로 걷지는 못할 것 같다.


 뿌리의 길과 조금은 험할 수 있는 돌길을 지나다 보면 드디어 보이는 '다산초당'

다산 초당 앞에서


 다산초당으로 들어서는 나와 아이들의 마음은 아마도 같지 않았을까.

'할아버지 댁에 놀러 온 듯, 편안한 마음'


1월의 겨울이었지만 다산 선생님의 마음처럼, 따뜻한 봄의 기운을 느꼈던 곳.

다산초당 툇마루에 앉으면 보였던, 여러 나무들 사이로 비춰진 햇볕들의 반짝거림이 아름다웠던 곳.

깊은 산속 다산초당에 계시며, 학연과 학유 두 아들에게 편지로 전했던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곳.

다산 선생님이 느끼셨을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홀로 계셨던 외로움에, 내 마음 한쪽이 아려옴 느꼈던 곳.


 아이들은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다산 선생님이 계셨던 '다산 초당'을 느껴보았다.


그렇게 시작된 다산초당에서의 다산 선생님 이야기.

아이들은 다산초당을 보며

"엄마, 다산 선생님은 우리보다 200년도 더 전에 사셨는데 집이 현대식이에요"

"원래 계시던 곳은 초가집이었는데, 무너질 만큼 너무 오래된 거야. 그래서 다산 선생님의 유적을 보존하시는 분들이 새롭게 이 자리에 지어놓으셨어. "


 그리고는 툇마루에 놓여있는 방명록을 발견했다.

다산초당에 다녀간 사람들이 적어놓은 다산 선생님을 향한 따뜻한 마음들. 아이들도 마음을 담아 방명록에 글을 남겼다.


 

 우리가 다산 선생님께 따뜻한 마음을 느끼는 것처럼, 다산 선생님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느낀 사람이 있었다. 다산 선생님이 이곳에서 귀양살이를 하며 고립감으로 힘드셨을 때, 아래로 열 살이 어리지만 서로 학문을 토론하고 시를 지으며 차를 즐기기도 했던 유일한 '벗'.


 그분은 바로 '백련사의 혜장스님'이다. 다산 선생님은 백련사로, 혜장스님은 다산초당으로 오가며 서로의 학문에 깊이 빠져들었고, 혜장스님은 다산 선생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유서와 시학을 배웠다고 전해진다. 안타깝게도 혜장스님은 서른아홉 살의 나이로 일찍 돌아가셨지만 다산 선생님과의 인연은 지금까지 기억될 만큼, 소중하게 전해지는 이야기인 것 같다.


 다산선생님과 혜장스님을 떠올리며, 아이들과 나는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로 가는 1.1km의 오솔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은 한 두 명 정도 지나갈만한 정도의 폭으로 되어있었다. 길 양쪽으로는 나무들이 위로, 때로는 옆으로 뻗어 터널의 모양을 하고 있기도 했다. 바닥에는 나뭇잎들이 많이 떨어져 있었는데, 걸을 때마다 느껴지는 나뭇잎 밟는 느낌과 밟는 소리도 듣기 좋았다. 순간, 멈추고 가만히 있으면 새소리만 들릴 정도로 조용하고 고요했던 숲길이었다.

 또 동백나무들이 많이 있어서 동백꽃을 보며 따뜻한 남쪽의 겨울을 느끼며 걸었고 백련사가 다 와갈 때쯤엔 마치 산의 정상을 향해가듯 구불구불한 오르막길도 조금 있었던 것 같다.

   

 다산선생님과 혜장스님 두 분이 얼마나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깊었으면 이렇게 오솔길이 열렸을까.

그땐 지금보다 훨씬 길이 험했을 거라 생각이 되지만 '벗'을 만나러 가는 데 그만한 수고로움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백련사로 가는 오솔길을 걸으며 나는 생각했다. 다산 선생님은 이 오솔길을 걸으며 어떤 생각에 잠기셨을까. 이곳으로 유배를 오게 되어 모든 것을 잃어버린 듯 공허한 마음이 지만, 그런 마음조차 마음을 굳게 다지며 단련하듯 강하게 이겨내려는 생각에 잠기셨을 것 같다. 이 힘든 귀양살이를 어떻게 하면 가치 있게 또 의미 있게 보낼 수 있을지도 말이다.

 

 나 또한 이 오솔길을 걸으며 다산 선생님의 마음처럼, 내 인생을 어떻게 하면 더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잠겼다. 

아이들을 키우며 주부의 삶을 살고 있는 지금, 의미 있게 산다는 건 엄마로서 아이를 바르게 키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삶에 대한 고민을 스스로 할 수 있도록 힘을 키워주는 것, 그것이  '바르게 키운다'는게 아닐까?
또한 내가 아이들을 남과 비교하지는 않았는지, 내 욕심으로 했던 일들은 없었는지, 이기적인 것들로 채워져 있던 내 마음 한 쪽을 비워내는 연습을 하며 나를 다시금 되돌아보았다.

 

 아이들과 걷다 보니, 어느새 백련사에 도착을 했다. 백련사는 신라 문성왕 대 국사 무역스님이 산 이름을 따서 만덕사로 산문을 열었다. 백련사를 중창한 국사 요세스님이 주창한 백련결사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으며 세종대왕의 둘째 형인 효령대군이 불교에 귀의하고 입산한 사찰이기도 하다.


백련사에서 보이는 강진만

 

 백련사에서 보는 강진만이 너무 여유로운 듯 편안해 보였다. 나무에 둘러싸인 깊은 숲 속 길을 걸으며 내 안의 여러 생각에 빠져 힘들었을 무렵, 멀리 보였던 고요한 바다와 높은 하늘을 마주하며 힘든 오름의 끝에 느껴보는 잔잔한 느낌이었다. 해결되지 않은 고민들이었지만, 해결될 거야라는 마음의 평온함을 찾게 해 주는 풍경이기도 했다.


산에서  바다를 느껴볼 수 있는 곳.

이곳이 우리가 서 있는 백련사다.


 백련사가 있는 만덕산에는 차 나무가 많다. 그래서인지 백련사는 '차'가 유명하지만, 아이들에게는 백련사의 '차'가운 아이스크림이 더 끌리는가 보다.


 다산초당으로 올라가는 입구에서부터 백련사까지 산을 넘는 힘들 수 있는 길이었음에도 열심히 잘 따라와 준 아이들. 나는 다른 생각에 잠긴다. 아이들은 오솔길을 걸으며 어떤 생각에 잠겼을까.


 다산 선생님이 오솔길을 걸으며 잠기셨을 생각을 생각해 보니 나의 생각이 많아졌고, 아이들은 또 어떤 생각에 잠겼을지 생각해 보니 나의 생각은 깊어졌다. 뿌리의 길에 있는 뿌리들처럼, 나의 생각은 서로 엉켜진 듯 복잡했다.

하지만, 여러 생각의 끝에 항상 나와 마주하는 건 언제나 그랬듯 소중한 내 아이들.



 걷는 것이 많이 힘들지만, 늘 함께 동행해 주는 나연이 나예 너무 고마워.






아이들과의 세 번째 걷기 여행 중, 어느 한순간.



우리의 걷기 여행은 계속 진행된다.





[ 다산초당과 함께 여행하며 둘러본 '강진' ]


강진만 남파랑길 81코스 중 청자해안길 갯벌에서 캔 바지락과 바라보았던 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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