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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완희 Feb 17. 2024

3화 노고단(老姑壇)과 노고(勞苦)

엄마의 품에서 '첫걸음마'를 떼다.

 설레는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하는 첫 걷기 여행의 준비를 시작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도 엄마인 나도 만족할 수 있는, 더 의미 있는 여행을 할 수 있을까. 이곳은 어떨까. 저곳은 어떨까. 여러 곳을 알아보며 깊은 고민에 빠져있던 나에게, 해답을 알려주었던 건 바로 '나의 진심'이었다.

물질적인 풍요로움보다, 정신적으로 편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아이들에게 자연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싶었고, 돈으로 살 수없는 그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을 선물해주고 싶었던,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는 곳.


 여러 곳들 중 가장 먼저, 내가 아이들과 함께 걷고 싶었던 곳은 지리산의 '노고단'이다. 지리산은 엄마의 산이라고 하던데. 엄마의 품에 안겨, 익숙한 엄마의 냄새를 맡고, 따뜻한 엄마의 체온을 느끼며,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를 듣 . 지리산 노고단으로 오르는 길을 내가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감각으로 한걸음 한걸음 걸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 아이들과 아파트 담벼락길, 동네 백자산 둘레길을 부지런히 걷기는 했지만 혹시나 힘들어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으로 편한 길도 있으면서 산에 올랐을 때, 트인 시야로 보는 아름다움도 있는 이유에서 지리산 노고단을 첫 오름의 산으로 정한 것도 있다.


 그런데, 아이들의 생각은 과연 어땠을까? 


 "나연아 나예야. 이번 여행에서 지리산 노고단넉넉하게 1시간 반 정도 올라가 보는 건 어때?

 왕복으로는 3시간? 3시간 반? 정도인데 노고단 정상에 가면 멋진 풍경도 볼 수 있고 너무 좋을 것 같아."

 "(머뭇거리더니) 엄마 조금 힘들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다른 곳은 어때요. 엄마."


 산에 오르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들이 이 세상에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우리 집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더우면 더운 대로, 추우면 추운 대로, 이유를 불문하고 정상에 오르는 것이, 걷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어른인 나도 힘든데. 

 '어떡하지? 어떻게 이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지?'라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는지 모른다. 갖고 싶은 것을 하나씩 사줘야 하나? 그러기엔 지금 이 여행도 아껴서 아껴서 가는 상황인데.


아이들에게 협박이 아닌,

아이들과의 협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결과는 여행 일정을 계획하는 과정에서 엄마는 지리산 노고단 '단 하나만' 지켰고, 다른 것들은 모두 아이들의 주도로 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는 것, 이렇게 지리산 노고단의 협상은 체결되었다.





 

 드디어 지리산 노고단에 가는 날이다. 10월 중순이 훌쩍 넘은 시기라 아침저녁으론 약간의 쌀쌀함이 느껴지는 날씨다. 든든히 아침을 챙겨 먹고 지리산 노고단 등산로 입구인 성삼재휴게소로 출발했다. 성삼재휴게소에 거의 다 도착했을 무렵 꼬불꼬불한 오르막길을 10~20분가량 올라가는데 뒷좌석에 앉은 아이들 사이로는 아무 말이 없는 조용한 긴장감이 감돌았고, 앞 좌석의 운전하는 내 자리는 설레는 마음으로 가득 찼다. 같은 차 안이지만 흐르는 공기는 서로 달랐고, 그렇게 나와 아이들은 서로 다른마음을 품은 채 성삼재 휴게소에 도착을 했다.


  

 성삼재는 지리산 능선 서쪽 끝에 있는 고개로, 높이가 1,102m이다.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명의 장군이 지켰던 고개라 하여 성삼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전해진다. 노고단이 아닌, 이 곳 성삼재휴게소에만 올라와도 뭔가 마음이 뚫리는, 시원한 기분이 들었다. 흐렸던 날씨 때문인지 구름이 우리와 비슷한 높이에 있어서 아이들이 무척 신기해했다.


 하지만, 등산로 입구로 가기 위해 차에서 내려 여러 채비를 하는데, 아이들의 얼굴이 많이 어두웠다. 마치 독감 예방접종을 하기 위해 병원에 갔는데 간호사분이 "주사 하나도 안 아파."라고 얘기하며 옷의 소매를 걷을 때 아이들의 표정 같았다. 약간의 두려움에 둘러싸인듯한 느낌이라고하면 비슷할까?

나는 하는 수 없이, 아이들에게 얘기했다.


"얘들아. 올라가다가 많이 힘들면 내려오자."


엄마의 말 한마디에 노고단으로 오를 준비를 하는 아이들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다.



 전날 비가 온 탓인지, 나무의 나뭇잎들이 아래로 많이 떨어져 있었다. 뿌려진 낙엽 위로 발을 뗄 때마다 가슴이 떨렸고, 가을이라는 계절을 온전히 느끼듯, 한걸음 한걸음 너무 행복했다. 가끔 나무들 사이에 부는 바람들로 젖은 나뭇잎들과 나무에 붙어있던 작은 빗방울들이, 나와 아이들의 머리 위로 떨어지고 낙엽 회오리가 불어 우리 모두 가을이라는 목욕탕 안에 낙엽샤워를 하듯 온몸으로 지리산의 가을과 거칠게 인사를 했던 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아이들과 깔깔거리고 함께 웃으며 오르는 힘듦을 망각한 채, 우리는 노고단 정상을 향해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노고단을 향해 중간쯤 오르다 보니 갈림길이 나왔다. 3.2km의 편안한길로 갈 것이냐. 1.1km의 경사가 있는 힘든 길을 갈 것이냐.

올라갈 때 힘들면 내려가자고 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돌아가자고 할 수도 있겠다고 나는 생각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1.1km의 지만 힘든 길로 오르기를 선택했다. 힘든 걸 알고 있지만 부딪혀보려고 하는 그 마음이 너무 기특했고, 아이들의 후퇴하지 않고 전진해보려고 하는 용기 있는 행동이 고마웠다.


 매 순간이 선택의 연속이듯, 우리도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런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는 일들이 많지 않을까? 짧지만 힘든 길, 지만 편안한 길. 눈에 보이는 길은 두 개의 길이지만, 나는 제3의 길 '힘들지만 긴 길이 있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다. 또 그것을 아이들에게 경험하게 해 주고 싶다. '아이들과 내가 지금 여기에 와있는 이유도 그중 하나가 아닐까?' 아이들이 커가면서 예상치 못한 일, 어려운 일들에 부딪혔을 때, '강하게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힘들지만 긴 길도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다.



 결과적으로 아이들은 올라갈 땐 1.1km의 짧지만 힘든 길, 내려올 땐 3.2km의 길지편안한 길 두 가지의 길을 모두 선택했고, 두 가지를 모두 경험해 보았다.

하지만 '동시에' 장. 단점이 다른 두 가지의 길을 경험할 수 없는 우리 삶의 일부분처럼, 어떤 길을 선택하더라도 자기가 만족하고 현재를 인정하며 사는 것이 최선이 아닐까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드디어, 노고단 정상에 도착했다. 나의 양 볼에 스치는 차가운 공기가 기분 좋았고, 흐렸던 날씨는 중요하지 않을 만큼 노고단 하늘 아래 있다는 게 너무 행복했다. 람을 따라 움직이는 구름들, 이어져있는 지리산의 산 줄기들, 울긋불긋한 나무들, 노고단에서 바라보는 하나하나가 모두 소중해서 내 마음에 담아 가고 싶었다.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꿈을 꿀 수 있다면 지리산 노고단에 계절마다 올라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보는 내 모습을 꿈꾸고 싶었다. 그만큼 설레었고 그래서 더 떨렸다.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시간의 여유는 있는 반면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노고단 정상에서 그동안 나의 노고에 '고생했어. 그리고 잘하고 있어.'라고 내가 나에게 말해주었다.

깊게 자리 잡고 있던 내 마음의 무거웠던 짐을 아래로 내려놓은 듯, 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차갑게 부는 바람 때문인지, 놓인 내 마음 때문인지 알 수 없지만 가을의 단풍잎처럼 내 눈시울이 붉어지는 순간이었다.



아이들과의 첫 오름의 산. 

내 버킷리스트의 첫 걸음이기도 했던 '지리산의 노고단'

우리엄마의 품처럼 너무 따뜻했고 포근해서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5년전

살던곳에서 백천동으로 이사를 가야했던 이삿날, 우리가 살 던 곳에서 차로 5분정도 되는 거리에 친정부모님이 살고계셨다. 나는 결혼하기전까지 독립하지않고 부모님과 함께 지냈고, 결혼하고나서도 부모님과 가까운 거리에 살고있어서 늘 곁에 함께있다는 것이 익숙했기에 부모님과 떨어진다는 것이 실감나지않았는데, 인사를 하며 내가 엄마를 안아주었는데 엄마가 슬피우셨다.
결혼을 한지 10년이 지난 그때, 비로소 나는 결혼을 실감했다.

"완희야. 힘들때 언제든지 엄마한테 와."    

 백미러로 주름진 얼굴위 흐르는 엄마의 눈물을 보며,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내 눈에도 참았던 눈물이 흘렀다. 차로 서너시간 걸리는 곳에 이사를 가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보면 한시간밖에 되지않는 거리로 이사를 가는 거였지만. 엄마는 내가 다른지역으로 이사를 가는것이었고 또 좋지않은 상황으로 이사하는 것을 알고있었기때문에 더욱 마음이 아프셨을 것 같았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나 힘들 수도, 괴로워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쉽지만은 않은, 그게 우리 인생이기도 하니까.





지리산 노고단 정상 (첫째아이 초3, 둘째아이 초1)



 노고단에 오르는 것이 힘들었지만, 함께 동행해 주었던 나연이 나예 너무 고마워.






아이들과의 두 번째 걷기 여행 중, 어느 한순간.



우리의 걷기 여행은 계속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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