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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완희 Feb 08. 2024

2화 영(soul)끌의 최후는 나의 영(young)끝

살기 위해 걷기로 했다.

 영(soul). 끌로 저지레 한 남편님의 최후는 다음과 같다. 일단 그에게는 빚이 많다. 감당하지 못하는 몇억 대의 빚, 은행의 대출들과 마이너스 통장까지 땡길수(?)있는 모든 곳에서 끌어모아 을 벌였기 때문에 이제는 죽을 때까지 갚을 일만 남았다. 죽도록 일만 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회사에서 기본적으로 하는 일 외에 작더라도 돈을 벌 수 있는 일이면 추가적으로 무엇이든 했다. 그래서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일에만 집중해야 하는 상황을 남편님은 겸허히 맞이했다.


 아이들의 상황은 이러했다. 큰 아이는 원래 다니던 초등학교에서 이 동네 초등학교로 전학을 하면 되었는데 문제는 6살인 둘째 아이였다. 그전에 다니던 아이의 유치원은 나름 그 도시에서, 동네에서, 유명한 사립 유치원이었다. 천주교재단의 전통 있고, '정통' 몬테소리교육을 하는 곳이었다. 무엇보다 나는 어릴 때 아이들의 경험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컸기 때문에, 추첨의 어마어마한 경쟁률을 뚫고 어렵게 당첨되어 열심히 보내고 있던 유치원이었다. 지방에 살고 있었지만, 열정만은 강남 대치동 엄마들의 마음으로 아이를 키우고 있었다.


 그 유치원이 뭐라고.. 못난 부모 때문에 이제 이 유치원을 못 보낸다고 생각하니 아이의 인생이 이대로 끝날 것만 같은 느낌으로 가득했다. 이사를 준비하며 둘째 아이의 유치원을 알아보았는데, 그전에는 실감하지 못했던 입학금과 여러 교육비들. 보낼 수 있는 돈은 없고, 욕심으로만 가득한 내 마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고 현실을 인정하기 싫었다.


 여러 상황의 고민 끝에 아이는 우리 집에서 경상북도 청도로 가는 길에 있는, 작은 시골마을의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에 보내기로 하였다. 이유는 단 하나 '10원 한 장. 돈이 들지 않기 때문에.' 여기도 좋은 곳인데 나는 아이에게 왜 그렇게 미안했을까? 또 왜 그렇게 마음이 아팠을까? 아마도 갑작스레 바뀌게 된 환경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나는 어른인데도 어떤 환경에 적응하려면 다른 사람들보다 1.5배 속도의 시간이 더 걸리는 편이다. 그래서 아이의 적응 때문에 염려되는 마음이 더 많았을 것이다.


 큰 아이의 학교수업이 끝나고 난 후도 문제였다. 큰 아이는 1학년이라 점심을 먹고 바로 하교하는 날이 많았다. 어디 맡길 곳이 없어서.. 솔직하게 얘기하면 어디 학원에 보내려고 해도 사실 돈이 없었다. 또 돈이다. 그 눔의 돈!!!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 눔 그 인간!! 의 얼굴이 떠오르는 건 어쩔 수 없는 건가 보다. 시댁, 친정모두 차로 1시간 넘게 떨어져 있다 보니 맡기는 것을 부탁드리기도 불가능한 상황이어서 우리는 맞벌이보다 한 사람이 아이들을 전적으로 돌보는 시스템(?)을 선택했다. 그 한 사람이 바로 나 다. 돈도 없는데 아이들까지 잘못되면 끝이다는 생각으로 말이다.


 남편의 한 달 월급으로 빚도 갚아야 하고 생활비도 써야 하다 보니 아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고 그래서 학원 없이, 사교육 없이 모든 것을 엄마가 교육하는 일명 "엄마표 교육"을 시작했다. 엄마표 국어, 엄마표 수학, 엄마표 영어.. 서툰 부분들도 많았지만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아이들도 나도 그 시절을 보낸 것 같다.

 이사오기 전엔 나도 나름 젊었고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에 그렇게까지 아끼는 편은 아니었다. 어느 정도는 하고, 아니 누리고 살았다. 하지만 이사 온 이후로는 모든 것이 과하다 싶을 정도로 알뜰살뜰한 아줌마가 되었다. 이제 내 인생에서 영(young)한 사치는 끝난 것이다. end...


 그렇게 1년 정도를 정신줄 놓지 않고 열심히 아등바등 살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나도 모르게 답답함이 찾아왔다. 가슴도 답답하고 숨도 막히고, 처음엔 체한 건가 싶어 활명수도 여러 번 먹어보고 수지침으로 손가락도 따보고 숭늉처럼 밥을 끓여도 먹어보고, 그럼에도 속은 좀처럼 좋아지지 않아서 병원에 가서 진료도 받아봤지만 속은 괜찮은데 증상만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었다. 속의 불편함은 마음의 불편함으로 내게 다가왔고, 나는 견딜 수 없는 예민함과 우울감으로 많이 힘들었다.


 어떻게 해서든 이겨내고 싶었고 그래서 아이들을 학교로 보낸 이후부턴 무조건 밖으로 나가 햇볕을 보며 걸었다. 처음엔 30분 정도 천천히 걷다가 그다음엔 40분, 그다음엔 1시간, 점점 시간을 늘려가며 걸으니 몸에도 마음에도 활기가 조금씩 생기기 시작했다. 살 것 같았고 막혀있던 내 안의 무언가가 조금씩 소화되는 듯, 내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것에만, 오롯이 내 호흡에만 집중하니 잡념들이 조금씩 사라졌고, 내 몸을 혹사시키면 혹사시킬수록 기분도 마음도 개운해지는 걸 느꼈다. 그 이후로 나는 시간이 날 때면 걸었고 걸으며, 걷고 싶은 곳을 떠올리게 되었다.


상상만으로 기분이 좋아졌다. 뇌가 나의 신체를 지배하고 있는 순간.

뇌가 신체를 지배하든, 신체가 뇌를 지배하든, 어떤것이 먼저라도 상관없었다. 중요한 건 '내 마음'이었다.

몸이 고되더라도, 마음의 편안함을 느끼고 싶어 나는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돈을 아껴야 하니까 아이들 학원도 안 보내는 판국에 걷고 싶은 곳이 웬 말인가. 하지만 그래서, 생각해 낸 방법이 '더 아끼자'였다. 딸은 예쁜 도둑이라고 했던가. 친정에 갈 때마다 양손 가득 먹을거리를 들고 오기를 여러 번, 지출은 '꼭 필요한 것'에만 하고, 아이들과 나를 위해 매달 조금씩 몇 만원씩 모아 내가 생각했던, 꿈 꿨던 걷고 싶은 곳으로 떠나보았다.


 내가 걷고 싶은 곳. 내 눈으로 보고 싶었고, 내 눈에 담고 싶었던 버킷리스트였던 곳.



여러 곳들 중 제일 먼저 어디로 가볼까?


아이들과의 첫 걷기 여행 중, 어느 한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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