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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완희 Mar 02. 2024

5화 여행(旅行)과 고행(苦行) 그리고 다행(多幸)

with 문경새재에서 흘리고 마신, 코피와 콥히(coffee)


[Prologue 1]

나의 남편님은 주말이 다가오면 늘 찾는 음식이 두 가지가 있다. 바로 '삼겹살에 소주' 아니면 '회에 소주' 다. 금요일 늦은 오후,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울리는 나의 전화벨.


"여보세요"

"여보. 오늘 저녁은 뭐야?"

"혹시. 뭐 먹고 싶은 거 있어?"

"응"

"회야? 삼겹살이야?"

"땀겹딸" 

"......"


 이번주는 '땀겹딸'이라고 한다.

삼겹살을 집에서 구워 먹으면 어떻게 되는지 주부라면 누구나 알 것이다. 온 집안에 기름냄새가 진동하고, 프라이팬 주변으로 기름들이 튄다. 내 앞치마에도, 심지어 내 얼굴에도 기름이 튄다. 거의 매주 이런 잔치(?)를 치르는 것이 익숙한 나는 이제는 그러려니 하고 산다.


 그런데 남편님의 요구사항은 점점 늘어났다. 일반 삼겹살이 아닌, 문경의 '약돌돼지'가 좋을 것 같다며 나에게 인터넷으로 주문을 부탁했다. 삼겹살, 목살 각각 1kg씩. 안부전화가 올 때마다 약돌돼지~ 약돌돼지~ 노래를 불러서 주문을 넣었다. 약돌삼겹살 1kg, 약돌목살 1kg 총 2kg. 그 많은 고기를.. 누가 다 먹나.

냉동실에 남은 고기를 얼리는 걸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결국 버리게 되니까 아까운 마음에) 나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속삭였다.


'한 점이라도 남기면 넌 내 손에 죽었어.'


 그렇게 약돌돼지는 우리 집으로 배송되었고, '삼겹살이 다 똑같은 삼겹살이지. 뭐가 그렇게 다르다고?'라고 생각했다. 고기를 구우며 한입크기로 자르는데, 자르는 느낌이 달랐다. '어? 뭐지? 뭐가 이렇게 슥슥 잘 잘리지?' 그러고는 뜨끈한 고기를 입안에 넣는 순간 몇 초만에 이미 식도로 넘어가고 없어져버린 약돌돼지 한 점. 그 후로 우리 가족은 '약돌돼지의 전도사'가 되었다. 문경에 가면 약돌돼지를 더 맛있게 먹을 수 있겠구나.


[Prologue 2]

 구미에 살고 있는 남동생이 마침 친정에 와있어서 같이 저녁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동생은 시간이 날 때마다 어디든 다니며 걷는 취미가 나와 같다. 그래서인지 아이들과 걷기 좋은 곳을 여기저기 추천해 주곤 하는데 얼마 전엔 문경새재 1관문부터 3관문까지 다녀왔다고 했다. 아이들과 걷는 코스로 딱 일 것 같다며 추천을 했고, '아이들과 함께 걸어봐야지' 하며 내 마음 한쪽에 문경새재를 담아 두고 있었다.


  [Prologue 3]

 나는 호텔보다  '자연휴양림'을 좋아한다. 숙소의 컨디션에 따라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숲 속의 자연 안에 있는 숲 집의 그 공간이 좋다. 다음날 일찍 일어나서 대충 겉옷을 걸치고 한 바퀴 휘도는 휴양림의 아침산책이 그 어떤 것보다 나에게 힐링이 되는 시간이기 때문에, 여행을 가게 되면 되도록 자연휴양림으로 숙소를 예약하려고  하는 편이다. 그런데 때마침 가려고 하는 날짜에 문경의 '대야산 자연휴양림'을 예약할 수 있었다. 평소 인기가 많은 곳이라 예약이 어려웠는데 가려고 하는 날짜에 예약이 가능하니 나는 이 때다 싶었다.



첫 번째 약돌돼지

두 번째 '문경새재' 길

세 번째 대야산 자연휴양림


'완벽한 삼박자가 떨어진다는 건 이런 게 아닐까'




 2021년 2월 19일 드디어 아이들과 문경으로 출발했다. 우리 집과 문경은 차로 거의 2시간가량 걸린다. 이동하며 아이들과 문경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우리가 지금 가는 곳은 '문경'이라는 곳이며 오늘 걸을 곳은 '문경새재'라는 곳도 소개해 주었다. 아이들은 '새재'라는 말이 안의 'ㅔ'인지 밖의 'ㅐ'인지 궁금해했다.  


"엄마 문경새재 할 때 새재는 안에 'ㅔ'에요. 바깥에 'ㅐ'에요?'

"새재라는 글자의 새재 두 글자 모두 바깥의 '' 야.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뜻도 있고, 고갯길을 따라 흐르는 냇가에 억새가 많이 자라서 그런 이름이 붙여진 것도 있대" 


아이들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라는 말에 '왜 그렇지?'라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차 창밖을 바라보았다.


그땐 모두, 아무도 몰랐다. 문경새재를 넘는 오늘의 여행이 고행이 될 거란 사실을.


 집에서 출발한 지 2시간이 지났을 무렵, 밖으로는 여러 간판들이 보였다. 문경의 특산품인 오미자진액을 파는 가게, 문경 레일바이크를 홍보하는 현수막, 문경 석탄박물관의 안내표지판 등이 보였다. 그리고 문경의 여러 약돌돼지식당들.

오늘 나에겐 다이어트란 있을 수 없다는! 약돌돼지를 배불리 먹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며 드디어 문경새재도립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미세먼지 없는 맑은 날씨라 너무 좋다며 주차를 하고 차에서 내렸는데 따뜻한 차 안의 온도와 대비되는 바깥의 날씨. 평소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착용했었던 마스크를 벗고 따뜻한 햇볕 아래 문경새재 길을 걷고 싶었는데 추워서 마스크를 무조건 써야만 했던, 햇볕이 따뜻했지만 겨울은 겨울이었던 추운 날씨였다.

 문경새재는 예로부터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조령산(鳥嶺山) 마루를 넘는, 한강과 낙동강유역을 잇는 영남대로상의 가장 높고 험한 고개로 알려져 있으며 사회 문화 경제의 유통과 국방상의 요충지였다.

'새재'라는 말에는 '새(鳥)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 '억새가 우거진 고개', '하늘재와 이우릿재(이화령) 사이(間)의 고개', 새(新)로 만든 고개'라는 뜻이 담겨있다. 예로부터 조선팔도 고갯길의 대명사로 불리며, 영남지방에 살던 선비들이 과거 시험을 치르기 위해 경상도에서 한양으로 향하던 과거길이었으며 선비들의 청운의 꿈, 그리고 백성들의 삶과 땀이 서려 있는 곳이기도 하다.


 문경새재에는 문경 쪽에서 고개 정상부로 향하면서 주흘관(제 1관문), 조곡관(제 2관문), 조령관(제 3관문)의 순서로 총 세 개의 관문이 자리하고 있다.

우리는 1관문에서 3관문까지 가는 코스로 총 6.5km의 거리지만, 중간에 문경새재 오픈세트장도 둘러본다고 생각하여 기본소요시간인 2시간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예상하였다. 

그렇게 문경새재 과거길을 걷기 시작했다. 우리가 걷기 시작한 시간은 오후 1시.




 1관문에서 2관문으로 가는 길은 자동차도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넓고 평탄한 길로 되어있었다. 3관문까지 계속 이런 길이라면 너무 좋을 것 같다며 걷기가 수월하다 느낄 때쯤, 차 앞유리에 'SBS 홍천기'라고 붙여진 차량 몇 대가 지나갔다. 아이들은 SBS는 서울에 있는 방송국 아니냐며, 그 순간 뛰기 시작했다.



"얘들아 잠깐만!! 엄마랑 같이 가야지." 하며 신기한 마음에 아이들을 따라 나도 함께 뛰었다. 방송국 촬영이 뭐라고 머리카락을 휘날려가며 그렇게까지 뛰었던가. 그때 그 상황을 다시 떠올려보아도 웃음밖에 안 나온다.


(사진출처. SBS 홍천기 공식홈페이지)

 1관문의 길을 제대로 느낄 새도 없이 도착한 문경새재오픈세트장.


그런데, 진짜 촬영을 하고 있었다. SBS홍천기팀이라는 종이팻말이 중간중간 붙어져 있었고 옛날 조선시대 느낌으로 꾸며놓은 세트장의 모습과 여러 소품들, 많은 카메라들 사이에 있었던 여러 배우분들. 아이들도 나도 그런 광경이 신기했던 나머지 한참을 서서 배우분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우리는 모두 SBS 홍천기 촬영에 흠뻑 빠져있었다.

 그렇게 우리가 걸어가야 할 문경새재길은 우리의 머릿속에서 조금씩 잊혀가고 있었다.

 

 그리고 꽤 많은 시간 동안 세트장을 돌아다니며 자세히 꼼꼼히 살펴보고 이곳저곳을 왔다 갔다 했다. 그래서 그랬는지 문경새재길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벌써부터 다리가 아팠다.



 

 문득 한참의 시간이 지났다는 생각이 들어, 시간을 확인했는데 벌써 오후 3시가 다 되어가고 있었다. 우리는 이제 1관문을 지났는데. 더 이상 여기에 머물러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여 아쉽지만 오픈세트장을 빠져나왔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1관문의 길을 이어 걸었다. 아이들은 오픈세트장에서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탓인지, 걸으며 다리가 아프다, 배가 고프다, 춥다 등... 힘들다 song 1절을 소리 높여 불렀지만 나의 걷고 싶은 마음이, 걷고 싶은 욕심이 그날따라 유독 강하게 작용되었다.


 문경까지 왔는데, 문경새재 길을 걷지 않고 가는 건 생각만 해도 싫었다. 이 길을 걷고 싶어서 2시간을 달려 여기까지 왔는데.


"딱 2시간만.. 얘들아."


 그때부터가 여행이 고행이 된 시작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이들을 어루고달래어 어떻게든 데리고 가고 싶었다.



'얘들아. 저기 보이는 산만 넘어가면 되는 거야.'


 우리는 그렇게 2관문으로 향했고, 열심히 걸었다. 걸어가는 길 옆쪽의 냇가로 물이 조금씩 흐르고 있었는데 얼음이 언 곳 아래로 비치는 흐르는 물들이 보기만 해도 차가워 보였지만, 흐르는 물소리는 내 마음속 스트레스를 모두 아래로 흘려 내려보내주듯 정화되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을 타고 흐르는 공기 또한 매우 차가웠지만, 그 차가움이 나를 더 개운하게 만드는 기분도 느꼈다.


  그렇게 20~30분 정도 걸었을 때쯤, 우리는 드디어 2관문에 도착했다. 여기서부터 3관문까지는 평균적인 걷는 소요시간으로 1시간 10분 정도가 걸린다고 한다.


 지금 시간은 3시 30분, 그러니까 3관문까지 늦더라도 5시까지는 도착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여러 가지의 고민 끝에 남편은 왔던 길을 되돌아가서 차를 가지고 3관문이있는 조령산으로 우리를 데리러 오기로 했다. 3관문까지 걷고 다시 1관문이 있었던 입구까지 되돌아가기엔 날씨가 너무 추웠고 아이들이 많이 힘들 것 같아 그렇게 결정을 했다. 


 아이들과 나는 3관문을 향해 다시 걸었다. 분명, 2관문까지는 그래도 사람이 조금은 있었던 것 같은데 3관문으로 향하는 길로 들어서면서 사람이 이상할 정도로 거의 없었다. 그리고 3관문을 향해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2관문까지는 보이지 않았던 '눈'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눈길'이 보였다. 1관문에서 2관문으로 왔던 길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2관문을 기준으로 확연하게 달랐던 길.


 더군다나 눈길은 뽀득뽀득 소리가 나는 눈길이 아닌, 눈이 반쯤 얼어있었던 미끄러운 눈길이었다. 우린 '당연히' 아이젠도 없었고,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가기엔 너무 멀리 와버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설상가상으로 아이들의 힘들다 song 2절이 시작되었다. 힘들다, 춥다, 배고프다, 이제는 '무섭다'라는 얘기도 나왔다. 노래의 추가된 후렴구.


 '무조건!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조건을 제시해서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다!'라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들에게 3관문에 도착하면 간식으로는 어떤 것을 먹고 싶은지,  오늘 저녁 먹은 다음 유튜브로 어떤 것을 보고 싶은지, 3관문을 향해 걸어가는 길을 느낄 새도 없이, 아이들이 힘들다 song이 생각나지 않도록 아이들의 정신을 여러 조건들로 혼미하게 만들었고, 들으면 끌릴만한 최대의 조건을 제시했다.

그리고 무섭다는 아이들의 말에 휴대폰으로 음악도 쉴 새 없이 틀었고, 아이들과 노래도 신나게 불렀다.


 그런데... 헉.. 이럴 수가...

시간을 확인하려고 가방 옆주머니에 넣어둔 핸드폰을 꺼내보는데, 배터리가 정확히 13% 남아있었다.

나는 그 순간, 내 머릿속의 배터리가 나갈뻔했다.

'뒷골이 땡기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싶을 정도로 머리가 띵했다.


 오픈세트장에서 아이들과 얼마나 많은 사진을 찍었던가. 유튜브로 노래는 또 얼마나 많이 틀었던가..

늘 휴대폰 배터리에 신경 써라고 얘기했던 남편의 말이 떠올랐고, 늘 여사로 보았던 나의 생활습관이 여기에서 탈로나 모든 것이 끝나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오르막길의 반쯤 얼은 미끌미끌한 눈길을 넘어지지 않으려 조심해서 걷느라, 올라가는데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그만큼 힘도 많이 들었는데 이제는 배터리까지 말썽이라니.  

 이건 여행이 아니고 고행이란 생각밖엔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새도 날아 넘지 못하는 고개라고 하더니, 그만큼 힘든 고개 맞구나.'


 몸도 마음도 지칠 대로 지쳐있었다. 문경을 오며 차 안에서 먹었던 김밥 한 줄이 점심의 전부였는데, 김밥 한 줄의 에너지를 쓰고도 모자라 내 몸 전체의 에너지를 다 끌어모아 안간힘을 쓰며 나는 오르막길을 오르고 있었다. 아이들도 너무 힘들어 보였다.


 뭐 때문에 내가 지금 이렇게 아이들과 이런 고행 수준의 걷는 여행을 하고 있는가. 아이들을 고생시키려는 마음은 절대 아니었는데, 그저 난 이 길을 걷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나의 걷고 싶었던 욕심으로 이런 상황이 된 것 같아 아이들에게 너무 미안했고 속상했다.


 나는 '아이들과 안전하게, 무사히 산을 넘자'라는 생각만 했다. 3관문으로 향하는 마지막길은 다소 가파른 편이었지만, 우린 열심히 있는 힘을 다해 걸었고 또 걸었다.



 마침내 오르막길의 끝. 고개의 정상쯤이었을까? 눈부신 해를 만났고, 눈길이 녹아있었던 길을 마주했다.

3관문에 아직 도착하진 않았지만, 밝아졌던 길에, 녹은 눈길에 안심이 되었다.



 몇 분더 걸어가니 등산로 표지판과 함께 3관문이 우리 눈앞에 보였다.

조령산에 도착하여 남편에게 전화를 하려고 핸드폰의 꺼냈는데 남아있던 배터리는 6%.


 힘든 고갯길은 끝이 났지만, 왜 이렇게 산 넘어 산이었을까.


조령산을 내려가는 길은 두 갈래길이었고 남편은 조령산 입구에 차를 세워두고 3관문쪽으로 걸어 올라오는 길이어서 서로 엇갈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통화하는 중간에 핸드폰이 꺼지면 어떡하나.'라는 불안감이 계속 들었지만, 다행히 우리는 서로 만났고 잊지 못할 문경새재 길의 추억을 남겼다.

둘째는 아직까지도 그때를 생각하면 아빠를 만나지 못할 것 같은 불안감이, 힘들었던 것보다 더 생생하게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문경의 옛 이름은 문희(聞喜)였다고 한다. 이 지명의 뜻은 ‘경사스러운 소식을 처음으로 듣는다.’ 또는 ‘기쁜 소식을 처음으로 듣는다.’이다. 이 때문에 문경새재는 과거 급제를 바라는 많은 선비가 좋아했던 고갯길이었으며, 멀리 호남지방에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선비들까지 먼 길을 돌아 문경새재를 넘어갔다고 전해진다.



'문경' 지명의 뜻처럼 '경사스러운 소식'이란 이런 게 아닐까?  

문경새재의 제 1관문부터 제 3관문까지 걸으며 여행고행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안전하게 무사히 걸을 수 있어서 다행이기도 했던 아이들과의 소중한 걷기 여행이었던 그날의 모든 것이 아닐까.


 나는 그 어떤 것보다 더 반갑게 그날의 '경사로움'을 맞이했다. 이 보다 더 좋은 경사가 어딨 을까?




 걷는 것이 힘들지만, 늘 함께 동행해 주는 나연이 나예 너무 고마워.






[ epilogue ]


 

그날 저녁, 많이 고된 하루였는 지 코피를 흘린 둘째를 보며 괜히 미안해지는 마음이 들었다.


'나예야. 오늘 많이 힘들고 무서웠지. 하지만 우린 해냈어. 엄마는 너의 그 코피가 영광의 코피라 생각해. 마음 같아선 엄마가 대신 코피를 흘려주고 싶어. 휴지를 돌돌 말아 작은 콧구멍을 막는 사랑스러운 를 보며, 엄마는 달달한 콥히(coffee)가 생각나는 밤이구나.'









아이들과의 네 번째 걷기 여행 중, 어느 한순간.




우리의 걷기 여행은 계속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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