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남편은 한때 자신은 평생 외로움을 느껴본 적이 없다고 말했던 사람이다.
그때의 그는 한치 오차도 없는 단단한 눈빛과 단정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살뜰한 마음과 보통의 경제력을 가진 수더분한 부모님의 귀한 외동아들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더러 자신을 놀려댄 친구를 쫓아가 싸우다가 친구 귀를 깨물거나 실수로 남의 집 창문을 깨부수는 정도의 사고를 치기도 했다. 그건 그의 인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친 사고였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는 친구들과 시를 쓰고 무협지 소설을 돌려 읽으며 얌전한 취미를 갖기 시작했다. 반항이나 방황 같은 건 꿈에서도 생각해 본 일 없이 매일 깊고 깊은 양질의 잠을 자며 성장했다. 몇 번의 아르바이트로 대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친척 어른의 소개로 적당한 회사에 금방 취직했다. 그는 적은 월급 같은 건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집과 가깝고 야근이 거의 없고 월급이 밀리지 않는, 직원을 크게 학대하지 않는 회사라는 게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회사원이 되어서는 본격적으로 게임에 취미를 붙였다. 매일 성실히 출근하고, 매일 빠짐없이 게임하는 것으로 안정된 삶의 루틴을 만들어 낸 그런 사람이었다.
나는 평생 외로움을 친구 삼아 살아온 사람이었다. 그런 내게 그의 그 말은 가히 혁명과도 같았다. 나는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가 놀랍고, 신기했다. 한편으로는 매력적이기까지 했다. 한 번도 외로움이란 감정에 녹아내려본 적 없는 심장은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졌다.
그렇게 우리는 나름 혁명처럼 사랑에 빠졌고 결혼을 했다.
외로움으로 가득한 마음과 외로움이 하나도 없는 마음이 서로를 사랑하는 일 자체가 어쩌면 서로에게는 일생일대의 개혁이나 다름 아니었다.
우리의 혁명은 붉은 깃발과 우렁찬 고함, 강렬한 음악과 매캐한 먼지 같은 것으로 이뤄지지 않았다. 우리의 혁명은 나의 작은 투정과 귀여운 토라짐, 맑은 눈물 같은 것으로 잔잔하게 이뤄졌다. 나는 그를 닮고 싶기도 하면서, 그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도 바랐다. 외로움이 가득한 마음으로 그의 마음을 계속 두드렸다. 어떤 날은 똑똑 두드리고, 어떤 날은 쾅쾅 두드리고, 또 어떤 날은 문 앞에 꽃 한 송이 살포시 놓고 가기도 하고, 어떤 날은 노란 풍선을 살포시 달아놓고 오기도 했다. 어떻게든 그의 마음을 열고 들여다보고도 싶었다. 그의 마음이 내 마음과 일정 부분 같은 색으로 물들면 좋겠다고 욕심부리기도 했다.
이제 우리는 결혼 5년 차 부부가 되었다.
우리는 여전히 평생을 걸쳐도 알 수 없을 것만 같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노력하며 산다. 그의 마음이 얼마만큼 말랑해졌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 마음이 얼마만큼 단단해졌는지도 말이다.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갇혀 살다 보니 서로의 마음 모양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찬찬히 느낄 틈이 아직은 없었다.
그런데 얼마 전 남편이 외롭다는 말을 했다. 설핏 웃음이 날법한 아주 사소한 상황에서 말이다.
펜션에 여행을 갔을 때였다. 저녁으로는 바비큐를 먹을 생각이었다. 거실 창을 열고 나가면 바로 바베큐장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어린아이를 데리고 좁은 바베큐장에서 밥을 먹기는 힘들 것 같았다. 저녁을 거실에서 먹기로 하고, 남편에게는 내가 식사 준비를 하는 동안 바베큐장에 가서 고기를 좀 구워오라고 했다. 그랬더니 남편이 "나 혼자? 너무 외로운데?"라고 말하는 게 아니겠는가.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대체 이 상황에서 어느 부분이 외롭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날이 좋아 거실 문은 방충망만 닫아놓고 다 열어둔 채였다. 겨우 몇 발자국 앞에 있는 바비큐 장이었다. 조금만 큰소리로 말하면 몇 시간이고 대화도 할 수 있을 것 같은 그런 거리였다. 내가 뭐가 외롭냐고 핀잔을 줬는데도 남편은 혼자 구시렁거렸다. 나는 외로움이란 단어를 이럴 때 쓰는 건가 싶어 어이가 없다가도 웃음이 터져 나왔다. 결국에는 그의 옆에 가서 같이 고기를 구웠다. 그 봄날 저녁, 아이는 거실 놀이기구에서 노느라 정신이 없었고 우리는 도란도란 같이 숯불 연기를 마셔가며 맛있게 고기를 구웠다. 다 굽고 나자 남편이 말했다. "어우, 혼자 구웠으면 절~대 이렇게 맛있게 못 구웠을 거야."
그날 밤 음료와 물이 더 필요해서 남편이 혼자 차를 몰고 편의점에 다녀왔다. 깊은 산속에 가로등 하나 없는 구불구불한 길을 따라 30분 넘게 다녀오는 길이었다. 현관에 들어서며 남편은 "아, 나 너무 외로웠어~!!" 하며 몸서리를 쳤다. 앞 뒤로 차가 한 대도 없고, 빛도 한 줌 없어서 새삼 외로웠다고 한다. 이럴 때는 무섭다는 말을 쓰지 않나 싶은 의구심이 들었지만, 자꾸만 외롭다고 투덜대는 그 모습이 웃기고 귀여워서 나는 또 한참이나 웃었다.
이제 그도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 된 걸까?
그간 내가 그에게 건넨 건 사랑밖에 없는 것 같은데, 그는 어느새 외로움을 아는 사람이 되었다. 엄밀히 따지면 내가 평생 느껴온 외로움과는 질적으로 많이 다르지만, 그 본질은 다를 것 없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없는 것, 그래서 느끼는 홀로 된 쓸쓸한 심정 말이다. 혼자 자기 루틴대로만 살면 세상 불만이라고는 없었던 사람이 이제는 혼자 고기 굽는 것도 적적해하고, 혼자 밤길 운전하는 것도 적막해한다. 우리의 함께하는 세월이 깊어지니 어느새 그는 나를 좀 더 깊은 눈으로 바라봐주는 시선을 갖게 된 듯하다. 잘 이해 안 되는 내 감정의 말들을 다시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라도 헤아리려고 노력한다.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나와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한다. 곁에 있어주는 게 가장 큰 사랑 표현이라는 사실을 점차 깨달아가는 듯하다.
아마 그 시절 그가 몰랐던 건 외로움이 아니라 사랑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