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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증인데 우울할 수 없는, 엄마

by 열대나무



처음으로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한 2주간은 더할 나위 없이 홀가분하고 자유로웠다. 내게 주어진 공백의 시간들이 선물 같고 휴식 같았다.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 뭐든 할 수 있을 것처럼 생기가 반짝이기도 했다.


2주가 지나갈 무렵 어느 날,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머리 위로 떨어지는 따뜻한 봄 햇살을 맞으며 빈 유모차를 끌고 가는데 문득 울음이 터져 나왔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눈물에 당황할 새도 없었다. 그 후로도 눈물은 아이가 없는 시간이면 불현듯 수시로 나타났다. 그뿐 아니라 아무것도 못하겠는 무기력과,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 아이가 없을 때의 내 시간을 점령했다. 숨이 가빠지는 과호흡 증상은 점점 심해져서 남편과 일상 대화를 할 때에도 나는 다시 숨을 고르며 이야기해야 했다.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었다.


3년간의 가정보육이 끝났으니 그저 이 시간을 즐기기만 해도 모자랄 것 같았는데, 나는 다시 나를 찾아온 우울증과 공황 증상 앞에 어찌해야 할지 몰라 허둥댔다.


나는 1년 6개월여 만에 다시 정신과를 찾았다.


동생이 스스로 세상을 등진 그날 이후 나는 다급한 마음으로 정신과를 간 적이 있었다. 내 히스토리가 아무래도 범상치 않은지 의사는 내게 고용량의 약을 처방했다. 상황이 그랬지만, 그때 나는 채 20개월도 안 된 아기를 돌봐야 하는 양육자의 처지였다. 병원을 다녀온 주말에 약을 한 두 번 먹고는 나는 잠에 빠져 종일 몽롱해하고, 아기를 봐도 웃지 않았다. 그런 내 모습에 나는 스스로가 놀라 더 이상 약을 먹지 않았다. 약의 무서움을 깨닫고, 어떻게든 정신력으로 이겨내겠노라 다짐했었다.


그 후로 심한 증상을 느껴본 일이 없어서 이제 나는 다 괜찮은 줄만 알았다. 아이를 키우는 행복이 내 인생에 흐르듯 넘치는 통에 그 일의 슬픔이 모두 희석된 줄 알았다.


그런데 아이가 없는 공백의 시간이 생기자 어디선가 숨어 있던 그리움과 슬픔이 때를 만난 듯 다시 태어났다. 슬픔은 결코 행복에 희석되지 않았다. 행복의 기세에 눌려 눈치 보며 그저 마음 구석 어딘가에 숨어있었던 것뿐이었다.


동네에 새로 생긴 정신과에 갔다. 초진이기에 진료에 앞서 간호사가 내게 몇 가지 테스트를 위한 종이를 주었다. 요 며칠간 내 기분에 대한 질문들이 빼곡했다. 이런 검사들은 이미 좀 익숙해서 나는 크게 고민하지 않고 빠르게 체크해 나갔다.


진료실에 들어가니 온화한 인상을 가진 젊은 남자 의사가 계셨다. 이런저런 불편을 겪는 증상들에 대해 설명하고, 동생 이야기를 했다. 갑자기 우울이 찾아올만한 계기는 아무것도 없었다고 말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공백의 시간이 생기니 그간 풀어내지 못했던 슬픔이 솟아오르는 것 같다고 나는 차분히 말했다. 그리고 아이를 돌봐야 하니 절대 일상생활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약은 안 된다고 당부했다.


의사는 항우울제만 처방하겠다고 했다. 신경안정제를 처방해야 할지 고민이 된다고 했는데, 나는 안된다고 했다. 밤에 자꾸 깨는 것은 어떻게든 스스로 극복해 보겠다고 제법 다부지게 말했다. 의사는 일주일치 약을 처방해 줄 테니 다 먹고 일주일 뒤 다시 내원하라고 했다. 적어도 3개월은 약을 먹어야 치료가 된다고 했다.


한 이틀 약을 먹었더니 나는 이내 눈물을 그치고 제법 차분해졌다. 목소리 톤도 일정하리만큼 기분이 안정되는 것 같았다. 그러나 부작용이 속출했다.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저녁 식사 후에 설거지도 못할 정도였다. 아이를 씻기고, 책 읽히며 재워야 하는데 그것도 버거워졌다. 그리고 속이 계속 메슥거리고, 오한들 듯 몸이 춥고, 몸에 힘이 없고, 미미한 두통이 계속됐다. 작은 약 한 알이 내게는 꽤나 강력했다.


더 이상 약을 먹을 수가 없다 생각해서 약을 끊었다. 이번에도 역시 정신과 약의 무서움을 몸소 깨닫고 나니 정신이 확 차려지는 느낌이었다. 약 기운이 다 내려가고 나니 나는 예전처럼 아이 앞에서 솔 톤으로 칭찬하고 또 화내기도 하는 엄마가 되었다. 혼자 있는 시간에 여전히 무기력하고, 우울해했지만 길거리에서 울음이 터져 나올 정도는 아니었기에 천천히 치유해 가보자 마음먹었다.


나는 매일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지만, 37개월 아이를 키우는 엄마는 내 마음 내키는 대로만 살 수는 없다.


어린이집에 처음 다녀서 그런지 아이 코감기가 한 달 이상 지속되고 있었다. 아이 걱정에 나는 우울해도 깊이 우울할 수 없었다. 괜찮다는 병원을 수소문해서 데리고 다니고, 행여나 집안 환경이 영향을 미치는 건 아닐까 싶어 온갖 이불을 다 빨았다. 구석구석 먼지 제거를 위해 청소기 돌리고 물걸레질 하며 부지런히 청소했다. 코감기가 떨어지질 않는데 오늘은 어린이집에 보내지 말아야 하나 매일 고민하고, 행여나 항생제를 오래 먹어 설사를 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아이를 주의 깊게 지켜보았다.


장을 보고 요리하는 일 역시 내가 안 하고 싶다고 안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남편은 하기 싫으면 하지 말라고 말하지만 내 입장에서는 그럴 수가 없다. 가족을 위해 성실히 출근해 주는 남편과 아직은 너무 작기만 한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건강한 음식, 맛있는 음식을 먹이고 싶은 건 엄마의 의지이기도 하고, 책임이기도 했다. 그걸 하지 않았을 때 내가 느낄 죄책감이 우울보다 더 무서웠다. 아이를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에 식사재 마트에 들러 장을 한 보따리 봐 와서 오전 내내 요리를 했다. 장조림도 만들고, 숙주나물, 시금치나물도 무쳤다. 냉장고에서 오래된 식재료들을 꺼내 국을 끓이기도 했다. 남편이 좋아할 빵을 사두고, 아침으로 내어줄 샐러드와 샌드위치 재료도 모두 손질해 두었다.


그러고 나면 오전 시간이 후루룩 지나갔다.

불안함, 외로움, 두려움, 그리움, 슬픔... 그 마음들이 매일매일 버거웠지만 나는 되려 집안일에 의지하며 시간을 보냈다. 뭐라도 의지할 것이 있어서, 내가 할 일이 있어서 다행스럽기까지 했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얼마만큼의 밝음이 필요할까. 어느 정도의 우울은 해로울까. 내 우울이 아이에게 어떤 영향을 얼마만큼 끼칠까.


나는 끝까지 아이에게 우울을 들키지 않고 아이를 잘 키워낼 수 있을까.


나는 우울해하면서도 사실 온통 이 걱정뿐이다. 그래서 마음껏 우울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우울증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의사가 치료를 요할 정도의 우울이 긴 시간을 텀으로 반복되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우울을 오늘 조금 밀어내고, 내일 조금 감추며 산다. 이게 정답이 될지는 알 수 없다. 이러다 또 어느 순간 슬픔이 피어날 적당한 온도와 습도가 갖춰지면 속수무책으로 우울이 터져 나올 수도 있겠지. 언제까지 반복되더라도... 아이에게 들키지 않도록, 아이에게 영향 주지 않도록 나는 매일 우울을 감추며 웃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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