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집 반별 간담회를 다녀왔다. 담임선생님 말씀은 만 2세(4세) 아이들은 이제 유아반으로 올라가기 바로 전 단계이기 때문에 일상의 여러 가지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배워야 한다고 했다. 어린이집에서도 등원 후 가방 걸기, 놀이 후 장난감 정리하기 등 간단한 것부터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도하고 있으니 가정에서도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격려해 주면 좋겠다고 당부하셨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엄마들은 그 이야기에 웃으며 난감해하는 듯했다. 의욕은 넘치지만 신체 능력이 그 의욕만큼 충분히 발달하진 못한 4세 아이들을 돌보는 엄마들에게 이 문제는 어쩌면 요즘 가장 큰 고민거리일 수도 있었다. 아이의 행동을 어디까지 도와줘야 하고, 어디까지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둬야 하는지 고민되는 순간이 정말 많기 때문이다.
몇몇 엄마는 하소연을 하기도 했다. 어떤 여자아이는 집에서 모든 일들에 대해 "엄마가 해."라고 한다고 했다. 화장실에서 바지와 속옷 내리기 조차도 "엄마가 해."라고 해서 긴 실랑이 끝에 결국 복장 터지기 직전의 엄마가 해준다고 했다. 또 어떤 남자아이 엄마는 집에서 모든 걸 엄마가 다 해줘 버릇해서 자조활동이 거의 되지 않는다고 했다. 특히나 어린이집 가방을 스스로 매고 들어가질 않는데 어떻게 아이가 스스로 가방을 걸게 하느냐고 답답해했다.
담임선생님은 엄마들의 이야기들을 모두 듣고는 차분히 말씀하셨다. 실랑이 끝에 결국 엄마가 해주는 걸 하지 말아야 하고, 가방 거는 자리를 마련해 두고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끔 자꾸 가르치고 기회를 주라고 하셨다. 너무나 현명한 답이지만 아이와 하루에도 몇 번씩 그런 실랑이를 벌이는 엄마들에게는 결코 쉽지 않은 일이기도 했다. 아이에게 스스로 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그 과정을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일이 무엇보다 어렵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이를 키우면서 내가 느낀 가장 어려운 점도 바로 기다림이었다.
엄마의 시간과 아이의 시간은 철저히 다르게 흐른다. 엄마에게는 지켜야 할 시간이 많고, 이 일 뒤에는 또 다른 할 일이 줄줄이 사탕처럼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아이에게는 늘 지금 이 순간 밖에 없다. 그러니 신발 신기, 양치하기, 밥 먹기 등의 사소한 일상 행동을 대하는 자세가 확연히 다를 수밖에 없다. 물론 엄마도 아이가 스스로 하길 누구보다 원한다. 하지만 엄마에게는 느긋하게 기다려줄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부족하다. 내가 하면 효율적으로 빨리 끝내버릴 수 있는 일을 아이가 비효율적으로 천천히 하는 것을 그저 바라만 보다간 정말이지 몸에서 사리가 나올 것이다.
엄마들은 어린아이를 키우는 긴 시간 동안 비효율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동동거린다. 알다시피 아이와 함께 하는 삶은 비효율로 가득하다. 어떤 잘 재단된 효율도 아이 앞에서는 무용하다. 아이의 모든 행동은 시간과 상관없다. 천천히 걷고, 천천히 씻고, 천천히 옷을 입고, 천천히 신발을 신는다. 오늘 새벽 미화원들이 쓸어놓은 거리의 낙엽 구덩이에 폴짝 뛰어들기를 서슴지 않는다. 어질러진 거리를 또 누가 치울지 걱정하고, 먼지 가득한 아이의 옷과 신발을 어떻게 세탁할지 걱정하는 건 엄마뿐이다. 아이는 손을 씻을 때마다 물놀이를 하고 싶어 한다. 내복을 하루에 몇 번이고 갈아입어도 본인은 상관없다. 그 밖에도 현관 비밀번호 누르기, 엘리베이터 버튼 누리기, 식빵에 쨈 바르기, 마트 셀프 계산대에서 바코드 찍기, 빨래 개고 널기 등등. 어른이 하면 몇 배는 더 빨리는 해낼 수 있는 일들에 대해서 엄마는 계속해서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고, 기다려줘야 한다. 결국은 그 비효율이 아이를 성장시키기 때문이다.
효율을 최고로 따지는 세상이지만 엄마들은 아이를 위해 거꾸로 흘러야 하는 법이다. 연어가 번식기가 되면 강의 하류에서 상류로 물살을 거슬러 오르는 상황이 비유가 될진 모르겠지만, 늘 효율을 추구하며 살던 여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되었다고 해서 비효율을 추구하게 되는 건 연어의 회귀만큼이나 쉽지 않다. 하지만 연어는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거꾸로 흐르는 빠른 물살을 거스르는 과정이 무척이나 어렵지만, 번식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우리네 엄마들도 마찬가지다. 지켜야 할 시간과 다음 할 일을 미루며 내 시간의 효율이 계속해서 떨어지더라도 아이를 위해 천천히, 기다려주는 일을 하고 또 해야 한다. 내 아이의 올바른 성장을 위해서 모름지기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