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4일, 37개월 아이를 첫 어린이집에 보내면서 나는 마침내 학부모가 되었다.
출산 후 3년 동안 아이를 가정보육한 엄마가 경험하는 '학부모'의 의미는 단순했다. 공식적인 절차에 따라 아이를 맡기고, 공식적인 내 시간을 가지는 것.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등원 첫날 나는 내 인생에서 아이를 뺀 무게가 이렇게나 가볍다는 사실을 온 감각으로 느꼈다. 땅바닥에 고개를 처박고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빠른 걸음으로 걸어도 되는 삶, 카페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조용히 앉아 있을 수 있으며 내 책을 쉼 없이 읽거나 노트북으로 글을 쓸 수 있는 삶, 그리고 언제든지 홀가분하게 일어나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는 삶.
인생이 이렇게 가뿐한 것이었나 싶은 해사한 깨달음이 자꾸만 번져 나오는 미소 끝에 총총 내려앉았다.
아직은 적응기간이라서 아이는 11시 30분에 하원을 했다. 하원 하러 가기 전 나는 바쁜 걸음으로 동네 떡볶이 맛집에 들렀다. 오픈과 동시에 입장해서 첫 번째 손님으로 떡볶이를 시켰다. 그리고 한쪽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아 귀에 이어폰을 꽂고 드라마를 보며 떡볶이를 먹었다. 매번 포장해서 먹었었는데, 금방 나온 몰랑몰랑한 떡볶이를 입안에 넣으니 정말이지 너무 맛있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떡볶이지만 오늘따라 특별히 더 사랑스러웠다. 떡볶이와 드라마와 함께하는 평일 오전이라니!!! 정말이지 달콤하고 행복했다. 학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런 거구나 싶은 환호성이 온 마음에 폭죽처럼 터지는 듯했다.
이런 순진하고 철없는 내 생각과 달리 요즘 우리 사회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 대한민국에서 학부모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생각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것 같다.
<라이딩 인생>이라는 7세 고시 문화를 다룬 드라마가 시작했고, 유튜브에는 연예인 엄마들이 아이를 라이딩하는 영상이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런 7세 고시와 라이딩 문화를 풍자하는 개그도 등장했다. 이 사태(?)들은 급기야 뉴스 기사에도 오르며 전 국민의 관심거리가 되고 있다.
유튜브로 삶의 낙을 채우는 나 역시 유튜브를 통해 '라이딩', '7세 고시'와 같은 단어를 알게 되었다. '라이딩'은 부모가 차로 태워가 아이들을 학원에 보내고, 데려오는 것을 뜻한다. '7세 고시'는 영어 유치원을 졸업한 7세 전후의 아이가 초등 영어학원 레벨테스트를 준비하는 것을 뜻한다.
4살 아이를 키우며 이제 막 학부모가 된 내게 이런 단어들은 당연히 자극적이다. 처음에는 대한민국 학부모라면 당연히 알아야 할 문화인가 싶어 그 내용을 열심히 들여다봤다. 하지만 보면 볼수록 이건 딴 세상 이야기였다. 분명 나는 그들과 같은 대한민국 하늘 아래 살고 있는데 말이다. (남편 차는 있지만) 따로 몰고 다닐 내 차도 없고, 벌써부터 아이를 학원에 보내거나 학습지를 시킬 충분한 경제력이 없는 내게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올 겨울 아파트 관리비가 많이 나와서 여기서 어떻게 더 난방을 줄여야 하나 고민하고, 한 달 동안 배달음식을 얼마나 줄였는가를 문제 삼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정말 입이 딱 벌어질만한 이야기였다. 그런 영상을 볼수록 괜한 걱정만 느는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그런 영상을 찾아보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내가 보지 않는다고 대한민국 사교육 열풍이 나만 비껴가는 건 아니었다.
얼마 전 주말 낮에 아이와 함께 동네 홈플러스에 갔다. 킥보드 타는 아이를 쫓아다니느라 체력이 다 떨어진 나는 마트 내 벤치에 앉아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모 브랜드의 학습지 홍보 매대가 차려져 있었는데, 한 분이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아이는 몇 살인지, 책은 많이 읽어주는지 등의 질문을 하시며 매대로 와서 학습지 체험을 권했다. 나는 딱 잘라 말했다.
"저는 그거 안 해요."
그분은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아이를 공략했다. 아이에게 풍선을 주며 저기 자리로 가서 함께 스티커 붙이기를 하자고 제안했다. 평소 스티커라면 환장을 하는 아이는 마치 뭐에 홀리기라도 한 듯 그분을 따라갔다. 그리고 자연스레 의자에 앉아 선생님이 지도해 주는 학습지를 집중해서 풀었다.(스티커를 붙였다.) 나는 기가 막혀서 그 상황을 넋 놓고 보고 있었다. 그분은 이를 놓칠세라 어머니도 이쪽으로 오시라며 아이 옆에 날 앉히더니 자연스럽게 내 휴대폰 번호를 물었다. 그리고 설명을 시작했다. "4살은 한글 떼기 적기예요!!"라는 말과 함께 한 달에 4만 원 대인 학습지를 할인해서 3만 원 대로 신청할 수 있다며 본격적인 영업을 시작하셨다.
다행히 나는 풍선만 날름 받아 들고 그 자리를 빠져나왔다. 비록 휴대폰 번호를 뺏기는 바람에 다음 날 걸려오는 영업 전화를 피해야 했지만, 이 정도면 내 방어력이 참 괜찮지 않은가 싶었다.
동네 친한 아이 엄마와 이야기를 하다 그 엄마도 홈플러스에서 학습지 영업을 받았다고 했다. 그이도 역시 처음 학부모가 되는 아주 순진한 엄마였는데, 설명을 듣고 보니 한 달에 3만 원 정도면 내가 치킨 두 번만 안 시켜 먹으면 되겠다 싶어 학습지를 해야겠다는 아주 적극적인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그런데 집에 와서 인터넷에 그 브랜드 학습지에 대한 정보를 검색해 보니 평이 좋지 않았단다. 처음에만 그 가격으로 시작할 뿐 갈수록 계속 돈이 되는 영업을 엄청하고, 나중에는 계약을 해지하기도 아주 어려우며 위약금까지 있더라는 평이었다고 했다. 그래서 다음날 걸려오는 영업 전화를 차단하며 피했지만, 다른 번호로 계속 전화가 와서 골치가 아팠다고 했다.
언제부터 4살이 한글 떼기 적기인 나이가 되었는지, 언제부터 4살에게 방문 학습지를 시키는 시대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나만 느린 걸까. 요즘 알게 된 이런 일련의 정보들에 나는 여전히 어안이 벙벙하고 갈피를 제대로 못 잡겠다. 주변에는 이미 4, 5살 아이를 이런저런 학원에 보내는 분들이 있고, 전혀 그렇지 않은 분들도 있다. 자연스레 남편과 나는 아이 사교육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누게 되었고, 새삼 우리는 어떤 태도로 아이를 키워나가야 할지 고민하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학부모가 된다는 건 생각할 것이 많아지는 일인 것 같다. 경제력이 되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양질의 교육을 시키기 위한 사교육을 고민하고, 바쁜 맞벌이 부모들은 어떻게든 아이를 혼자 두지 않기 위해 사교육을 고민하기도 한다. 또 경력단절로 집에 있는 엄마들은 내가 나가서 알바라도 해서 몇 푼이라도 벌어 아이 사교육을 시켜야만 하는 것인지 고민한다. 그리고 사교육을 하지 않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아이를 교육시키는 부모들도 분명 많다. 그 속에서 나 같은 초보 학부모들은 사교육을 어디까지 얼마나 시켜야 하는지, 그러기 위해 돈과 부모의 희생은 얼마나 필요한지 고민하고, 궁극적으로는 정말 사교육을 꼭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나는 아직 이 모든 고민에 대해 명확한 내 기준을 갖지 못했다. 당연히 나의 아이는 아직 너무 어리기 때문이다. 다만 내가 확실히 느끼는 것 하나는 대한민국에서 학부모가 되려면 자기중심을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라이딩 인생이 일상인 사람들의 영상을 보며 내가 가 닿지 못할 현실을 막연히 부러워하고 걱정만 하며 앞으로를 살 수는 없다. 그렇다고 내게 아이를 잘 교육시키고 싶은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그 욕심과 욕망을 내 현실과 아이의 수준에 맞추어 내 방식대로 다듬어나가야 하지 않을까. 그러려면 매일 들리는 이런저런 사교육 정보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가짐이 가장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우리 부부가 막연히 그런 흐름에 휩쓸리지 않길 바란다. 아이를 단순히 공부만 잘하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지 않다는 나의 가치를 잃지 않으며 앞으로의 험난한 학부모 생활을 살아내고 싶다.
(에필로그 : 그나저나 개그우먼 이수지의 <휴먼다큐 자식이 좋다> 영상은 정말 재밌다. 제이미와 또래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도무지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영상이었다. 웃으면서 봤지만 한 편으로 나는 아이에게 어떤 엄마인지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엄마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든지 쉽게 극성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영상을 보며 항상 그 마음을 경계하자고 다짐했다. 여튼... 개그우먼 이수지 파이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