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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랑 Mar 12. 2024

셋업 당한 남자

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클락 공항에서 출국을 시도하던 한국 관광객의 가방 안에서 권총, 실탄에 마약까지 발견되어 즉시 체포되었다. 사안이 중대하여 담당영사와 곧바로 현장에 출동하였고 마약단속국 PDEA 조사와 검사 신문 시에 통역으로 참여하였다.


이 남자는 필리핀에 3일 전에 들어왔고 앙헬레스에 친구가 있어서 같이 지내다가 오늘 귀국하는 짧은 일정이었는데 아무리 필리핀이라지만 영어도 한마디 못 하는 외국인이 마약이나 권총을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원래 그 친구와 같은 비행기로 출국할 예정이었는데 공항에 가던 도중에 망고 말린 것을 사준다고 슈퍼마켓에 들렀다가 차 트렁크에 있는 본인의 가방에 집어넣었을 거라고 했다. 그 친구는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먼저 공항에 들어가라고 하고 사라졌다.


본인의 짐을 본인이 챙기지 않은 것은 잘못이지만 공항 직원들조차 권총과 마약을 동시에 발견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한 기색이었다. 게다가 당시에는 타님발라 tanim bala라고 공항 직원들이 외국인 관광객의 짐 안에 총알을 심어 두고 벌금을 뜯어내는 황당한 사기극인 소위 셋업사건이 자주 일어나고 방송에도 보도되어 직원들이 파면되는 사건이 있어서 우리도 그런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긴장하면서 사건 자료들을 요청했다 


그를 필리핀에 초대한 친구는 한국에서 같이 사업을 하던 동업자였는데 받을 돈이 있어서 돈 달라고 몇 번을 독촉하니 필리핀으로 오라고 했다고 한다. 


상황을 보니 셋업 사건 임에는 분명 하지만 어쨌거나 명확한 증거나 있는터라 처벌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였다. 게다가 적발된 마약의 양이 적지 않아 단순소지가 아닌 판매 목적으로 기소가 되면 장기형이나 종신형도 가능한 상황이고 보석 신청도 불가능한 상태였다.


이 남자는 재판 도중에 마약과 권총 같은 증거가 분실되어 법정에 제출되지 않아서 체포 후 육 개월 만에 기각으로 석방되었다. 필리핀의 부실한 사법 시스템이 오히려 운이 좋게 적용된 경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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