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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랑 Mar 05. 2024

아이를 필리핀에 버린 부부

대사관 긴급전화입니다

국민신문고에 민원이 접수가 됐는데 코피노로 보이는 아이가 현지 고아원에서 생활하고 있는데 아무리 봐도 한국아이 같다는 것이다.

고아원에 연락하니 아이는 한국인 선교사에 의해서 고아원에 맡겨졌다고 했다. 고아원 원장은 필리핀에서 오래 산 캐나다인 이었는데 BCG 접종자국 등으로 보아 한국인이 분명하다는 거다.


아이는 지적 발달장애가 있어서 본인의 이름만 기억할 뿐 생년월일도 정확히 모르고 아직 지문도 등록이 되어 있지 않은 소년이었다. 담당 영사는 교육부. 외교부. 경찰청 등에 협조 공문을 보내서 실종신고가 되었거나 미취학 아동 데이터베이스 등에서 신원을 확인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원장은 담당 교사와 함께 대사관에 아이를 데려왔는데 처음엔 무척이나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고 한국말을 잘 못 해도 느리게 이야기하면 알아들었다.


 나는 당시에 한국에서 걸그룹을 데뷔시키는 TV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는데 거기에 뽑힌 연습생 중에 그 아이의 또래인 2004년생이 있었는데 170cm의 장신이었던 것에 비하여 이 아이는 남자임에도 체격도 왜소하고 키도 작아서 나이 보다도 어리게 보였다. 과자도 주고 대사관 구경도 시켜주고 하니 긴장이 조금 풀렸는지 몇 가지 질문을 하면 더듬더듬 우리말로 대답했다. 그리고 어눌하지만 분명한 의사표현을 했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다고.


본인의 생일이 언제인지 물어보니 9월이라고 했다. 외교부 여권발급 조회 시스템에 이름을 입력하고. 9월 1일부터 30일까지 생년월일을 입력하여 조회를 시도하려고 했는데 불과 몇 번 만에 여권 발급 기록이 조회되었다. 이미 말소된 여권이었고 개명을 한 후에 새로 여권이 나와 있었다. 아이는 본인의 이름이 바뀐 걸 몰랐지만 어쨌거나 그의 부모를 찾은 것이다.

그의 아버지는 아이를 데리고 입국하여 아이가 코피노인데 한국에서 키울 여력이 안된다며 사례금을 주고 한국인 선교사에게 맡기고 다음 날 아이 여권을 가지고 혼자 귀국했다. 그게 벌써 4년 전이었다.


긴급연락처인 아이 엄마에게 전화를 하니 받지 않다가 나중에는 외국에서 온 전화는 아예 차단한 것 같았다. 새로 발급된 여권에는 아버지의 연락처가 있었는데 이것 또한 연결이 안 됐다. 번갈아서 부모에게 계속 연락을 시도하였고 외교전화를 이용하여 계속 연락을 시도하고 문자도 남기니 이틀 후에야 아버지에게서 연락이 왔다.

아이 엄마에게 연락을 그만하라고 하는 그는 와서 아이를 데려가라고 하니 본인이 일용직이라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사는 상황인 데다 다리를 다쳐서 당장 오기 어렵다고 하길래 그러면 언제쯤 올 수 있는지 물어보니 이메일로 답변을 주겠다고 했다. 


아이를 찾은 부모의 기쁜 기색은 없고 좀 당황한 듯한 반응이었다.

본인이 대사관에 오게 되면 조사를 받거나 처벌이 있을 수 있냐 물어봤다. 대사관에 오지 않고 공항에서 아이만 인계받아서 가면 안 되냐고 물었다. 담당 영사에게 보고했더니 그냥 아이만 인계해 주면 안 될 것 같다고 한국에 수사를 의뢰하였다. 그리고 연락을 한지 한 달 만에 마닐라에 등산복 차림으로 아버지가 들어왔다. 

아이는 불안해했고 한국에 돌아가면 아버지가 자기를 또 버릴 거라고 했다. 고아원 원장도 그냥 아버지에게 인계해 주고 끝내지 말라고 사정하듯 부탁했다.


귀국 항공편에 우리 팀 남자 직원을 동행시켜서 입국을 했는데 인천공항에는 아버지의 변호사가 나와있었고 나중에 보도를 통하여 알게 된 놀라운 사실은 부모는 부부 한의사였다. 

이 사건은 한국에도 크게 보도가 되어 널리 알려졌고 그 부부도 아동학대 등의 혐의로 구속되어 이미 실형을 살고 출소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마도 엘리트 인생을 살았던 그 부부에게는 아이가 감추고 싶은 오점이었던 것 같다. 나중에 한국 방송을 통해서 아이가 시설에 인계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모쪼록 한국으로 돌아간 게 좋은 결정이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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