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연

영사관 해외안전팀 사건수첩

by 윤랑

악연이라는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것일 것이다.


남자는 어렸을 때 마약에 손을 댔다가 중독자 치료시설에서 간호사로 근무하던 여자를 만났다.

처가의 극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을 하고 필리핀에 넘어왔다.


남자도 초반에는 나름 성실하고 약도 멀리 했지만 카지노 롤링 일을 하면서

본인도 도박에 중독되어 회사 공금에까지 손을 댔다가 회사 측에서 건달까지 동원해서

협박을 하자 불안해서인지 다시 술과 약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말리는 아내와 다툼이 잦아지고 가정폭력도 시작되자 점점 더 많은 약이 필요했다.


이 남자는 이웃에서 악취가 난다고 신고를 해서 출동한 경찰에 의해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되었는데 마약에 의한 환각상태에서 범행을 저지른 그는

체포당시에도 마약에 취해서 아내의 부패한 시신을 며칠 동안이나 그대로 집안에 방치하고 있었다.


구치소에서는 약물에 의한 심신 미약 상태를 주장하며 가석방 청원을 내기도 했으나

동료 한인 수감자들에게 물어보면 평소에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다가

진료를 받을 때나 대사관 관계자를 만날 때만 유독 벽에 머리를 쿵쿵 부딪친다던지

소변을 바지에 싼다던지 돌출행동을 한다는데 자기들이 보기엔 연기 같다는 것이다.


정신감정도 주기적으로 받는 중인데 통역까지 쓰면서도 의사가 묻는 말에 딴소리만 하는지라

감정결과가 제대로 나오지 않아서 앞으로도 감형이나 가석방은 요원해 보인다.


사실 백번 양보해서 약물에 의한 심신 미약 상태라고 해도 약을 누가 억지로 먹인 것도 아닌데

감형이 이루어지는 것도 형평성의 법칙에 어긋난다고 생각한다.

피해자나 유족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정말 분통 터지는 일일 것이다.


약물중독은 개인의 의지만으로 조절하거나 해결할 수 없다.

본인의 인생만 망가지는 것으로 끝나지도 않고 반드시 2차, 3차 피해를 발생시킨다.

정말로 패가망신한다. 아예 호기심 자체를 가지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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