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영사관 해외안전팀 사건수첩

by 윤랑

필리핀에선 온갖 종류의 사건사고와 더불어 자연재해도 자주 일어난다.

지진, 홍수, 산사태, 태풍으로 인한 피해는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치안이 불안하고 카지노도 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서는 흔히 보기 어려운

금전관계로 인한 납치, 감금 등도 자주 일어난다.


말 그대로 모든 사건사고의 유형을 볼 수 있는 백화점 같은 곳이라

외교부의 재외국민보호과나 안전과에는 한때는 아예 필리핀 전담직원이 있기도 했다.

그 당시는 전 세계에서 재외 한국인 피살사건의 40%가 필리핀에서 벌어졌던 시기였다.


이런 곳에서 사건사고 담당직원으로 몇 년을 근무하면 정말로 웬만한 사건에는

눈하나 깜짝하지 않는 멘탈을 가지게 되고 전화만 받아도 상황이 자동으로 그려지는데

아무리 그래도 해적 사건까지 경험하게 될지는 솔직히 몰랐다.


우리 국적의 화물선 동방자이언트 2호가 말레이시아 보르네오섬 남동쪽을 항해하다가

해적의 습격을 받아 한국인 선장과 필리핀인 선원이 납치되었다.

스피드보트로 접근한 무장한 해적이 느리게 항해하는 배에 접근해서 사다리를 걸어 승선했다.

(배가 마닐라항 인근에 정박했을 때 필자도 같은 방법으로 승선해서 조사를 했다)

다행히 다른 선원들은 습격당시에 방호시설로 신속히 대피해서 위기를 모면했다.


이 배를 습격한 범인은 필리핀 민다나오와 말레이시아 인근 술루제도를 베이스로 활동하는

악명 높은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아부 사야프'로 예전에도 잠보앙가에서 한국인을

납치해서 1년 여의 긴 협상 끝에 몸값을 지불했음에도 석방되자마자 사망한 사례가 있었고

외국인들을 납치해서 몸값이 지불되지 않으면 참수까지 하는 엽기적인 범죄조직이라

관계당국이 초긴장 상태가 되었고 즉시 본부차원의 대책위원회가 차려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피랍되었던 선장과 선원은 석 달 후에 무사히 풀려났다.

예전처럼 개인이 당한 사건이 아니라서 선사도 협상에 적극적으로 임했고 보험에도 가입이 되어

협상이 전보다는 어느 정도는 순조로운 부분도 있었다고 전해 들었다.


되돌아보면 아찔했던 순간이다.

여행금지구역에 절대로 허가 없이 함부로 들어가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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