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많은 이들이 학교 필독도서 중 하나였던 톨스토이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책을 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도 그 소설을 언제 읽었는지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읽고 독후감을 써서 낸 기억은 있다.
사실, 시켜서 읽은 책이기에 그 주제가 무엇인지 줄거리가 무엇인지도 희미해 장성한 후 다시 읽게 되었을 때에야 그 책의 주제를 알 수 있었다.
잠깐 다른 얘기를 해보자면 나의 인생에 몇 가지 터닝 포인트가 있는데,
대학시절 중국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게 된 일도 그중 하나였다.
대학시절 교환학생과 해외봉사, 인턴십은 취업이력서에 한 줄 넣었을 때 면접관의 호감과 가산점을 얻을 수 있는 제도라 생각했기에 교환학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중국어의 간단한 인사도 몰랐지만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나는 호기롭게 지원했다.
다행히 중국 학교 중 중국어뿐 아니라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학교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그쪽으로 지원했고 2006년 나는 중국 땅을 밟았다.
내가 다녔던 학교는 기독교정신을 바탕으로 설립된 학교였기에 해외 교환학생들을 보낼 때 마치 선교사를 파송하는 것처럼 생각했고 그곳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길 원했다.
천방지축 20대의 학생들 무리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는데 해당 학교에서 치과의사로 봉사하고 계시는 교수님이 그 일을 도맡아 하고 계셨다.
우리는 매주 그 가정에 찾아가 밥을 먹고 성경공부를 하기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선교사님 부부의 삶의 슬로건은 "사랑하며 전도하는 삶"으로 삼고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원하셨다.
중국 학생들이건 만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며, 그것의 근본인 복음도 전하는 삶이 삶의 기본이라는 것을 말로 행동으로 삶으로 보여주셨다.
나는 사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교회에 다녔지만 나는 꽤나 효율성을 따지는 이기적인 사람이었다.
시간이 돈이 낭비되는 것을 싫어해 아침에 일어나면 오늘의 할 일을 쭈욱 적고 시간순서를 정해 그것을 지키는 재미로 사는 사람이었다.
연애 관계 속에서도 최선의 관계를 만들기 위해 내가 가진 것을 나누고 퍼주지만 그것이 그대로 돌아오지 않을 때의 실망으로 관계를 망치기도 했다.
(혹, 이전의 관계 맺었던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면 교만하고 서툴고 어리석었던 나의 말과 행동을 사과하고 싶다.)
내가 받은 만큼 돌려주고 내가 준만큼 받는 것이 관계의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계산적인 관계 속에서 거리를 두며 가면 속에서 관계하는 것은 어쩌면 나에게는 쉬운 일이었기에 나는 사랑도 잘하고 관계도 잘하는 사람이라 자만했었다.
그런데, 사랑은 그런 것이 아니라니.. 그때부터 나는 사랑이 어려워졌다.
사랑이 어떤 것인지 몰라서가 아니라 다 아는데 내 마음이 그러기가 싫어서. 내 행동이 그렇게 행동하기 싫어서 주춤거렸다.
결혼을 하고 나의 감정의 민낯을 모두 드러내니 마음의 나무는 나뭇가지만 앙상했다.
30여 년을 살아왔지만 나에게 이렇다 할 열매는 나타나지 않았다.
그때 나에게 아이가 찾아왔다.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아이이건만, 아이를 키우며 산후우울증과 중증우울증이라는 병을 얻은 동시에 많은 것을 얻었다.
부하거나 빈함이 나의 감정을 컨트롤하지 않게 되었으며
나의 의지와 욕구를 버리고 타인을 돌보는 삶을 배웠다.
내가 정해놓은 한계를 넘어 한번 더를 요구할 때 수용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내가 가고 싶지 않은 곳, 내가 보고 싶지 않은 것들도 아이를 통해 경험하며 지경이 넓어졌다.
무엇보다 내가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으며 나는 자라났다.
아이 때문에 이혼하지 못하고 산다.
아이 때문에 죽지 못해 산다 등의 말들이 드라마나 옛 어른들의 한탄으로 들릴 때 나는 그것이 사실이라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나를 살아갈 수 있게 붙잡은 건 나의 아이의 사랑이었다.
나의 무표정을 받아도 웃음으로 돌려주며
무너진 나를 일으켜 세워 함께 맛있는 것을 나누어 먹자는 아이의 마음
눈물이 마르지 않는 밤, 잠에서 깬 아이가 손을 잡아주며 눈물을 닦아주며 안아준 그날들이 모여
나는 지금. 여기. 살아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나는 사랑으로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