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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틴 Jul 29. 2024

07. 내 핸드폰 메모장에는 유서가 적혀있다.

어릴 적 나의 어머니는 항상 아버지가 출퇴근하는 길을 지키셨다.

오늘 내가 보는 이 사람의 얼굴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셨다고 했다.

죽음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멀고 아득하게 느껴졌던 그때의 나는 어머니의 마음을 잘 알 수 없었다.


대학 새내기 시절 특별할 일이 없어도 기숙사를 떠나 주말마다 집으로 돌아와 있는 것을 좋아했다.

막상 집에 와서는 뭘 먹지도 뭘 하지도 않지만 집이 주는 고요한 안식이 좋았다.


저녁약속이 있어 잠시 외출하시는 부모님을 배웅하고 집에 있는데 한두 시간 뒤쯤, 집전화가 울렸다.

부모님 친구분의 전화였다. 줄 것이 있으니 잠시 내려오라는.

반가이 인사드리니 차 문에서 커다란 봉지를 나에게 주시고는 사실 엄마아빠가 차사고를 당했다고 한다.

부모님은 모임을 마치시고 혼자 있을 나에게 이것저것 먹을 것을 사서 학교 갈 때 가져가게 하고 싶으셨나 보다.

집으로 돌아오려는 길 언덕길 아래에서 신호를 대기하고 있을 때, 언덕 위쪽에서 신호를 제대로 보지 않은 차가 뒤에서 박은 것이었다.

지인분들이 사고 현장을 보았고 부모님은 앰뷸런스에 실려가면서 지인분에게 차에 아이가 먹을 음식이 있으니 좀 전해달라 말해주셨다고 했다. 놀랄 테니 많이 다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시면서.


내가 놀라지 않게 담담히 전해주셨던 친구분의 의도와는 다르게 나는 상당히 당황했다.


한두 시간 전에 봤던 부모님 두 분이 함께 앰뷸런스에 실려갈 정도로 다치셨다는 것도 충격인데 차 뒷부분이 1/3이 찌그러지며 차 여러 대가 파손되었던 그 경황없는 중에서 다 큰 아이의 간식을 챙기는 부모의 모습이라니..

삶과 죽음의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흘러간다고 생각이 든 첫 번째 사건이었다.


20대 초반, 출근하려는 나를 미쳐 보지 못한 마음 급한 운전자는 신호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나를 차로 치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지만 그 일로 병원에 한 달여 입원하면서 죽음은 생각보다 나에게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다.


염세적인 성향이 있었는지 아님 삶을 초월하는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

나는 생각보다 죽음이 언제나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였다.

“삶이 언제든 끝날수 있다고? 그래 좋아! 하지만 후회하고 싶지 않아!”


하루가 주어지면, 최선을 다해 살았다.

사람을 만나면, 마음을 다해 사랑하려 했다.

일이 주어지면, 최고의 결과를 내고 싶었다.


결혼을 하게 되니, 나도 아침마다 남편을 배웅하게 되었다.

오늘 내가 나누는 인사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가 생기니, 나의 귀찮음을 한 번만 더 이겨보자 생각했다.

언제 이 아이를 더 안아보고 더 사랑할 수 있을까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나에게 우울증이 찾아온 것은 절호의 기회였다.

죽음에 대해 열심히 생각하고 열심히 찾아보았다.

어떤 방법으로 죽으면 가장 빠르고 편리하며 주위의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을까.

최선을 다해 살았던 고단한 삶을 재빨리 끊어내고 싶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에 대해 찾아보고 방법을 고민할 수도록 그 일은 쉽지 않은 것임을 알게 되었다.

죽음에 대해 알아가면 알아갈수록 죽음은 나에게서 멀어졌다.


우울증으로 인해 약을 복용하는 중간중간에도 혼자 있는 동안 위험한 순간이 없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약을 복용하며 죽음의 방법을 고민하는 것을 의지적으로 멈추려 노력했다.


대신 내가 그동안 살아오며 만난 이들과 나만의 방식으로 작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자살하기를 그만두기로 마음먹으며 나는 유서를 적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만족했고

최고는 아니었지만 최선으로 살았던 나의 삶의 마지막에 웃으며 안녕이란 마침표를 미리 찍고 싶었다.




안녕 모두들

특히 내가 사랑했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특히 내가 가장 빛나는 순간에 만나 가장 오랜 시간 사랑하고 서로를 위해 더 사랑하려 분투했던 내 남편.


내가 살아있던 날동안

우리가 함께했던 그 순간들이

앞으로 혼자 남겨질 이들에게 작게나마 생각하면 웃음 지어질 날들이 되어주길

그리고 앞으로도 울음보다 웃음이 더 많은 날이길

나의 부재로 인해 조금은 슬퍼하되

슬픔보다는 감사함이, 후회나 미련보다는 추억의 날들이 되길.

적당히 그리워하다 적당히 잊어 그저 편안해지길

행복을 찾고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길


그리고 별과 같이 빛나는 내 딸.

안녕?!

네가 오기 전 엄마의 세상은 암흑과 같았는데 엄마의 세상에 네가 와줘서

너와 함께 한 엄마의 삶은 별처럼 빛나고 반짝였어.

너와 내가 함께한 발자국, 걸음들과 이젠 네가 홀로 경험할 조각들이 모이고 모여 언젠가 멋진 너만의 그림을 완성하길.


나도 처음 해보는 엄마였고 부족한 사람이었기에

살며 사랑하며 주었던 상처가 있다면 부디 새살이 돋아 아물길..


언젠가 너도 어른이 되었을 때,

엄마라는 존재도 그저 하나의 부족한 어른이었구나 하며 이해해 주길.


먼저 떠나 미안해.

먼저 더 사랑해주지 못해 미안해.


내가 존재했던 당신들의 삶의 한 구석에

내가 있음으로 한 번쯤 미소 지었던 순간이 있다면,

슬퍼하는 나의 가족을 위해 한번쯤 손잡아 주고 떠나 주길.


모두 고마웠어.

모두 사랑했어.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노력했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해 사랑했다는 걸 알아주길.


잠시동안 슬픔이 함께 있더라도

곧 더 좋아질 거야.

곧 더 행복해질 거야.


항상 행복해지는 길을 선택하렴.

모두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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