띠띠띠띠.
알람이 울리면, 매일매일 정해진 시각, 아침과 저녁, 취침 전 총 세 번을 약을 먹어야 했다.
나는 그동안 비타민과 같은 영양제를 챙겨 먹는 사람이 아니었기에 정해진 시간에 매일 약을 챙겨 먹는 것은 고역이었다.
처음에는 약을 먹는 것이 적응이 안 돼 빼먹기 일쑤였고,
먹는 약 자체도 나에게 바로 딱 맞는 약을 바로 찾긴 어렵기에 어떨 때는 약을 먹어도 증세가 나아지지 않거나 구토와 설사, 어지럼증, 피부소양증 등의 부작용을 겪었다.
처음에는 약을 먹는 것이 나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 순순히(?) 타온 약을 먹다가도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날이 길어지다 응급실에 몇 번 신세를 지니 이게 무슨 소용이 있나 싶어 슬그머니 약 먹는 것을 멈추기도 했다.
초반에는 약 먹는 것 자체를 부끄럽게 여겨 숨기기도 했는데
지인들이 약뭉치를 볼 때마다
"무슨 약이 이렇게 많니?"라고 물으면
다행스럽게도 아픈 곳이 많아 "응, 허리 약." 또는 "응, 갑상선 약."으로 둘러댔다.
두려웠다.
내가 정신과 약, 우울증 약을 먹고 있다는 것을 말하는 순간
나는 사회에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사람 또는 엄마와 아내로서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정의 내려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맞는 약 정하기, 복용량 정하는 등의 약 두 달여간의 실험시간이 지나자
한 달 치 복용량을 받을 수 있었다.
(처음에는 삼사일치, 일주일치, 이주일치 등으로 기간이 점점 늘어납니다.)
구역감과 설사의 부작용은 있었지만 복용량을 조절하였고
부작용을 감안하더라도 그 약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말에 참아보기로 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점점 나의 삶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사람의 기본욕구 중에도 하나인 수면욕구가 해결되기 시작했다.
여러 잡생각으로 잠이 들기 어려웠던 것이 잠에 들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눈을 감고 누우면 스위치가 딱 하고 꺼지듯 잠이 들었다. 새벽에 불현듯 일어나 몇 시간씩 멍하게 앉아있던 시간이 없어지고 통잠을 자기 시작했다.
(아, 자기 전에 핸드폰을 들고는 스위치가 꺼지지 않는 점 참고하세요.)
통잠, 통잠이라니!
아이를 키우다 보면 100일의 기적이라는 말을 하게 된다.
1-2시간마다 깨서 빽빽 울던 아기가 100일 정도가 지나면 8-9시간 정도 쭉 잠을 자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말이다.
나의 아기에게도 찾아오지 않았던 그 기적이 나에게 찾아오다니!
사람이 잠을 푹 잘 잔다는 것이 얼마나 삶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지 삼십 대 중반에서야 알게 되었다.
잠을 잘 자니 아침이 좀 개운했다.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생각하며 좀비처럼 일어나 아이를 챙기는 것이 아니라 새하루, 새 아침이 밝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약을 먹으며 좋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좀 더 먹어봐야지.'하는 의지가 생겼다.
약을 먹고 낫고자 하는 마음이 드니 약 먹는걸 잊을때마다 아차싶었다.
약을 먹는 시간을 자꾸 잊어 알람을 맞춰두었다.
아침에는 활력을 주는 약,
저녁에는 짜증을 줄이고 세르토닌을 나오게 하는 약,
자기 전에는 불안을 줄이고 잠을 잘 수 있도록 하는 약.
각각의 약들이 톱니바퀴처럼 맞아떨어지며 나를 돌아가게 만들었다.
알람은 나에게 약을 먹게 했고 그 약들은 내 정신의 영양제였다.
의사는 항상 우울증이 나의 탓이 아니라고 말했었다.
감기에 잘 걸리거나 잘 체하는 사람이 있듯, 나는 마음에 감기가 잘 걸릴 수 있는 사람이고 지금은 감기가 오래되었기에 다른 부분도 아픈 것일 뿐 약을 끊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버리고 비타민처럼 약을 먹으면 된다라고 가볍게 말했다.
처음엔 이걸 평생 먹어야 하나 고민했던 우울증 약도 마음의 감기가 찾아온 나에겐 좋은 음식처럼 느껴졌다.
흔히 석류는 여자에게 좋고 장어꼬리는 남자에게 좋다는 말을 하듯이.
더 이상 우울증으로 병원에 다니는 것도, 약을 먹는 것도 그다지 나에게 중요하지 않았다.
지인들과 약속을 잡을 때, 부모님에게도 스치듯 말해주었다.
"그날은 안돼. 약 타러 병원에 가."
"무슨 약?"
"나 우울증 약 타러 가는 날이야."
걱정하는 반응은 여러 가지였다.
안타까워하거나, 놀라거나, 자신만의 조언으로 잔소리를 늘어놓거나, 못 먹을 것을 먹고 있네 같은 반응과 동시에 또 다른 반응도 있었다.
"아, 나도 먹은 지 좀 됐어."
그때 생각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이 혼자 아파하며 살고 있나. 내가 아플 때에도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볼지를 걱정하다니.'
내가 말하기 전까지 혼자서 끙끙 앓았을 친구의 아픔을 생각하니 속이 상했다.
그래서 외쳐 주었다.
"야, 너두? 야, 나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