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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틴 Jul 01. 2024

03. 정신병원을 다니려 합니다.

나의 에너지 스위치는 아이를 만날 때 가장 신나게 자주 켜졌다.

아이는 부모의 얼굴을 보며 표정을 배운다고 했기에 나의 우울의 그림자가 아이에게 드리워지는걸 극도로 경계했다.


나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 아이들과 어울려 노는 게 어렵지 않았다.

대학시절부터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꾸준히 했고 그것은 나의 업이었다.

교회에서는 선생님으로 봉사했고 친구의 아이들을 봐주는 것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나와 남편을 닮은 아이를 바라게 되었을 때

나는 누구보다 아이를 사랑하고 잘 키울 자신이 있었다.

기다리던 아이는 몇 년이 지나도 오지 않았지만 나는 태명도 미리 지으면서까지 아이를 기다렸다.


아이가 찾아온 후, 임신과 함께 갑상선기능저하증 약을 먹게 되었다.

난 원래 갑상선이 약하니 그럴 수 있지 생각하며 자라날 아이를 생각했다.

갑상선이 약하면 아이가 어떻게 되지?, 뭘 어떻게 해줘야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지?

내 온 우주는 아이로 가득 차 있었다.

(지나고 생각해 보니 갑상선 기능 저하로 인해 식욕도 없고 의욕도 없고 항상 피곤한 상태였다.)


그런 내가 아이를 낳고 산후우울증이 왔다는 건 큰 충격이었다.


그렇게 소원하던 아이를 내 품에 안았는데 왜 내가 힘들어하지?

나는 나쁜 엄마인가? 엄마의 자격이 없나?

나는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건가?

스스로를 자책했다.


그게 내 문제였다.

나는 나를 돌아보지 않았다.


아이를 낳고 힘들어지고 약한 내 몸이 먼저였고,

내가 회복하고 내가 건강해야 아이가 자라날 수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아이는 행복하게 키워야지라고 아니 그럴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었다.


내가 행복하지 않고는 아이는 행복할 수 없었다.

내가 건강하지 않고는 아이를 챙겨줄 수 없었다.


거기다 나의 다른 브런치 글을 읽은 독자들은 알겠지만

남편의 도박사건은 나를 깊은 우울증으로 빠지게 했다.


남편이 도박에 빠져 그 뒷수습을 진두지휘 할 동안,

아이가 두 돌이 되기까지 나는 사실 우울증의 얼굴을 마주할 시간이 없었다.


아이가 깨어있을 때는 아이를 챙기고

아이가 잠이 들었을 때에 맞춰 남편의 일들을 처리했다.

(아이라 모를 수 있지만 티 내고 싶지 않았다.)


내가 이 정도면 되었다고 생각한 그 시기에 우울증은 까꿍. 하고 나에게 얼굴을 디밀었다.


남편이 도박중독 치료센터에 다니기 시작하고 카지노 출입이 멈춘 지 일 년이 훌쩍 넘어가고

아이가 어린이집 대기가 드디어 끝나 입소가 가능해지면서 뭔가 숨통이 트이는 느낌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분유를 잘 먹지 않아 새벽부터 젖을 물여야 했던 아이는 단유를 했고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였고 적응도 마쳤다.

도박으로 정신이 빠져있던 남편은 어느샌가 정상적인 사람처럼 노력하는 듯이 보였다.


이제 내가 없어도 뭔가 정상적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니

굳이 내가 이 세상에 더 필요한가?

이 정도면 내 할 일을 다 하지 않았나?라고 생각했다.


사려 깊은 우울은 그제야 나에게 사실은 너 아파라고 말해주었다.

더 이상 나만 해야 될 일은 없다고 생각해서인지 켜져야 할 사회적 스위치도 켜지지 않았다.


딸깍딸깍 딸깍딸깍.


"어? 왜 불이 안 켜지지. 고장이네." 남편은 나에게 불이 들어오지 않는 걸 알았다.

끌려가다시피 병원에 가 병원에서 우울증으로 진단도 받았다.


의사는 너무 늦게 온 감이 없지 않아 있다 했다.

검사 결과가 다 나오지 않았음에도 약을 먹는 것을 권했다.

다른 이보다 우울이 지속되어 온 기간이 길어 약을 먹는 기간도 길 것이라 했다.

(긴 시간 나누었던 상담이지만 그 시절의 기억이 뿌옇게 가리어져 사실 잘 기억나지 않는다.)


다음 진료 약속을 잡지 않고 나와 남편은 병원을 나섰다.

우리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의사가 당부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깊은 우울증 환자에게 자신이 무언가 해야 하는 양 운동해라, 열심히 해라, 먹어라, 사람들을 만나라 등등의 조언들을 하지 말라는 당부였다.


긴 진료 끝 아이가 하원해야 하는 시간이 되어 아이를 만나러 갔다.

아이는 아빠보다 나에게 매달렸다.

"어부바 어부바."


아이를 업고 집으로 터덜터덜 돌아오는 길

업혀있는 아이가 내 귀언저리에서 조잘거리며 두서없고 맥락 없는 옹알이를 하는 것을 듣다 갑자기 말했다.


"병원을 잘. 다녀볼게."


이제 다른 사람부터가 아닌 나부터 돌아보겠다는 다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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