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우울증이라는 진단을 받던 날, 함께 있던 남편은 물었다.
우울증은 성격 탓이에요? 환경 탓이에요?
의사는 둘 다라고 말했다.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너는 앞으로 우울한 사람이 되어라라고 지정하여 창조한 사람이 있을까?
정답은 당연히 NO.
현재 후속작이 나와 인기를 얻고 있는 인사이드 아웃의 슬픔이가 살면서 느낄 수 있는 당연한 감정이듯이 '우울'자체는 지극히 정상적인 감정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과 우울증은 다르다.
충격적인 사건, 힘든 상황, 질병 등으로 인해 사람은 슬퍼질 수 있고 우울해질 수 있다.
여러 요소들로 인해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 행동의 양상이 2주 이상 지속된다면 우울증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인데 사람들은 슬프거나 조용하고 무기력한 상황을 우울하다와 혼돈하는 경향이 있지 않나라고 조심스럽게 말해보고 싶다.
드라마 또는 영화의 주인공이 "나 우울해."라는 감정을 내뱉는 상황을 떠올려 그 원인을 생각해 보자면
자신이 바라는 것 원하는 것을 갖거나 이루지 못해 많이 아쉽다의 강한 표현,
의지가 없고 되는 일이 없어 속상할 때의 약간의 불만을 표할 때 그런 대사가 나오는 건 아니었을까.
또는 내성적이고 조용하고 약간의 어두움(?)을 가진 사람을 보아도 "너 요즘 우울하냐?"라고 말하기도 한다.
우울증은 단순히 슬픔, 불안, 무기력, 상실, 회피 등의 감정이 휘몰아치는 경험을 넘어 그 감정이 오랜 시간(최소 2주) 지속되어 불가항력적으로 감정을 이기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고 생각한다.
우울증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고 돌아오던 날.
오히려 난 더 우울해졌다.
암환자가 그전까지는 일상생활을 살다, "암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갑자기 약한 환자가 되어버리는 것처럼
나도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라는 사실이 나를 더 우울할 수 있게 만들었다.
'난 우울증에 걸린 사람이니까 우울한 게 당연해.' 이렇게 면죄부를 주면서.
그러다 나라는 사람을 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사회적 생활(학교, 학원, 회사 등)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밥이나 간식은 고사하고 진이 빠져 잠에 들기 일 수였다.
돌아보면 선천적으로 갑상선기능이 저하되었기 때문에 에너지를 쓰고 나서 충전의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나 싶다.
한참을 자다 일어나 내일 챙겨야 할 가방을 챙겨 문 앞에 놓고, 해야 할 숙제를 하고
책장에서 책을 꺼내 읽거나 멍하게 앉아있곤 했다.
엄마는 집에만 있는 날 걱정해 매일 저녁 "집 앞놀이터에서 30분 놀고 와."라고 명령을 내릴 정도였다.
사춘기 시절에 나와 달랐던 오빠는 엄마에게 심각하게 "엄마, 쟤 왕따 아니야?"라고 묻기까지 했다고 한다.
가족의 걱정과는 다르게 사회에서의 나는 꽤 괜찮게 평가되었다.
선생님의 말씀을 잘 듣는 학생이었고(학습성취도와 별개로)
친구들에게는 그다지 기억에 남지 않는 무난한 학생이었다.
그들의 생일파티에 초대되기도 했고 생일이라고 선물을 주고받는 친구들도 있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오히려 더 사회성이 발달했다.
직장에서는 에너지를 끓어올려 웃는 것이 오히려 나를 활기차게 만든다 생각했다.
하지만 그 모든 시간 동안 나는 내 안의 우울과 싸우고 있었다.
우울증 환자는 혼자 있으면 위험했다.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멍하게 있기도 하고
가만히 집에 앉아 멍하게 있다가 부엌에 있는 칼로 손목을 그으면 아플까. 그어볼까. 생각이 들기도 하고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죽는 방법은 거의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사회적 인간이라는 책임감과 남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은 마음들이 날 버티게 했으며
혼자 있지 않는 시간에는 사회적인 인간으로 변할 수 있는 스위치가 생겼다.
딸깍.
스위치가 꺼지면 기능은 사라졌다.
차분하고 조용하며 혼자 있기를 선호하고 혼자 있으며 에너지를 채우는 나만 남을 뿐이었다.
나는 시끄러운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학창 시절 친구들은 라디오에 MP3에 노래를 들으며 흥얼거렸지만 티브이조차도 좋아하지 않았던 나는 그 모든 것이 소음처럼 느껴졌다.(지금도 티브이는 보지 않는다.)
나는 사람들 사이에 있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고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라는 말이 있었는데 나는 항상 혼자 가는 것을 선택하는 게 낫지 않나라고 조용히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여럿이 모였을 때 나타나는 의견 충돌, 조율등의 과정들이 너무 피곤하고 힘들었다.
그게 나였다.
어렸을 때부터 쭉. 난 우울한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