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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리스틴 Jun 17. 2024

01. 성격은 명랑한데 우울증 약을 먹어요.

한창 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더글로리에서 매를 맞고 사는 한 여인이 활짝 웃는 것을 의아하게 쳐다보는 주인공을 향해 말했다.

"맞고 사는 년은 웃지도 않고 사는 줄 알았어요? 나는 매 맞지만 명랑한 년이에요."


그 대사를 들었을 때, 나 스스로에게도 항상 의문이었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은 것 같았다.

'아, 나는 명랑한 우울증 환자구나!'라고.


우울증에 걸린 것은 나의 질병일 뿐, 그것이 나의 성격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우울증에 걸린 사람은 항상 우울할 거라 혹은 기력이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사실 많은 이들이 자신의 아픔을 누른 채 일상을 살아간다.

사회성이라는 이름으로 훈련된 자신만의 기술을 뽐내면서 말이다.


허리가 아프다고 항상 죽상으로 살지 않듯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도 사회에서는 사실 크게 티가 나지 않는다.

아니 티를 내려고 노력하지 않는다.

오히려 좀 더 웃으려 하고 좀 더 밝으려 노력한다.


나는 갑상선기능저하증을 앓았었고, 산후우울증을 경험했으며 결국은 여러 가지 이유로 우울증 약을 먹게 되었다.

그 십 년여의 시간 동안 나는 아이를 낳았고 회사에 다녔으며 가정을 지켰다.

그 사이 나를 본 사람들은 말했다.


"참, 세상근심걱정 없이 사는 사람 같아."

"참 인상이 좋아."

"참 밝아."


그게 나였다. 밝고 걱정 없는 성격.

나는 미래에 대한 걱정이 그다지 많은 사람도, 지나간 일에 대해 후회가 많은 사람도 아니었다.

그저 생각이 많고, 몸이 좀 약한 사람이었다.


20대 중반 갑상선암을 앓은 엄마의 영향인지 나도 갑상선 기능저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 영향으로 인지 우울감이 밀려오거나 쳐지는 시간들이 있었다.

임신하며 갑상선기능 저하는 더 심해졌고 약을 먹기도 했다.

아이를 낳고 첫 아이를 낳았을 때 너무 예쁜 아이를 안은 기쁨과 동시에 홀로 아이를 육아하며 산후우울증을 겪게 되었다.


홀로 극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 상담을 받을 때 처음에는 남편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지금과는 다르게 마음을 돌보는 중요성에 대해 알지 못하는 시대였고

산후우울증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시대였다.

정신과를 다니거나 약을 먹는 것이 의료기록으로 남는 것을 두려워하는 시대.

나 또한 그런 편견과 두려움이 있었고

종교를 가지고 있던 나는 종교심으로 나의 병이 나아지리라 또는 상담으로 좋아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무난하게 이어지던 상담을 어느 날 갑자기 난 종료해 버렸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상담사의 어떤 말 한마디에 '아니, 난 할 수 없어.'라고 생각하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약속을 미루고 취소해 버렸다.


상담을 그만두었지만 아이를 사랑하는 나란 존재는 남았기에

아이와 있을 때는 항상 웃으려 노력했다.

내 모든 살과 피를 갈아 놀아주려 노력했다.

그동안 몸이 축나고 나의 에너지도 고갈되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등원시키고 나면 돌아오는 그 걸음부터 이미 너무 무거웠고 집에 돌아와 이불 덮을 힘도 없이 현관 앞에 드러누워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날들이었다.

밥을 먹지 않으니 살이 빠졌다.

힘이 없어 어지럽고 휘청거렸다.

아이와 놀아주다가 자꾸 멍하게 있어서 사람이 나를 불러도 알아채지 못하게 되었다.

평안하게 있다가도 갑자기 작은 일에도 아이에게 화를 냈다.


아이를 너무 사랑하지만 아이가 있어 죽을 수 없다는 사실에 슬펐다.

삶을 살아가는 게 너무 고단하고 지쳐

잠이 들 때 내일이면 눈을 뜨지 않았으면,

지나가는 차를 보며 차사고로 죽었으면,

길거리 건물을 보면 간판이 떨어져 사고사로 죽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사태가 이 정도로 심각했을 때서야, 남편이 알아챘다. 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가고 싶지 않았다.

나아지고 싶지 않았다.

나아지려면 또 노력을 해야 하니까.

난 노력할 힘이 한 방울도 남아있지 않은 상태인데 왜 나아지라고 하지.

원망의 마음이 생겼다.


남편이 어르고 달래서 들어간 정신과에 들어가는 그 순간. 그 공기. 그 적막이 아직도 기억난다.


밝고 친절한 간호사들,

환자라 하기엔 너무나 멀쩡해 보이는 사람들 사이에 앉아서 진료를 기다렸다.


의사 선생님은 천천히 이야기를 듣고 몇 가지 검사를 해보자 했고


결국 진단은 우울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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