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약을 복용한 지 일 년은 훌쩍 지나 2년 여가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부작용은 남아 있었지만 내 마음은 좀 잠잠해졌다.
약의 도움으로 잠을 좀 자고 먹는 것도 먹기 시작하니 간사하게도 약은 언제까지 먹는 거야 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처음 병원에 다니기 시작할 때 의사는 나에게 오랜 기간 앓아왔던 것과 충격의 정도를 감안하여 복용기간이 평균보다는 다소 길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의사는 최소 일 년은 먹어야 할 것이라 예상했었고 나도 그 정도는 뭐 당연하겠지라고 받아들였다.
2년 여가 되어가자 꼬박꼬박 챙겨 먹는 약이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아니 뭐 약을 언제까지 먹는 거야 하는 생각이 나서 다시 병원 가는 게 귀찮아졌다.
병원에 다니기 중반으로 들어서니 한 달에 한번 병원에 방문해도 진료 시에 사실 별 할 말이 없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그냥 똑같이 지냈어요."
"잠 못 자거나 힘든 일은 없었고요? 남편은 사고 안 치고?"
"네."
"요즘 뭐 하며 지내세요?"
"그냥 똑같이.."
그간 나의 삶을 앞서 다 말하기도 했고, 달라지지 않은 삶의 환경 속에서 쳇바퀴 돌듯 살아가니
정신과진료도 일반 병원 진료처럼 간단한 문답 후 약 용량이 살짝 늘어나거나 다시 원래대로 줄거나 등의 간단한 처방변화 외에는 별다를 것이 없었다.
나는 항상 별다를 것 없이 가장 평범하게 눈에 띄지 않는 삶을 살고 싶었다.
눈에 너무 띄거나 너무 많은 경험을 하며 살고 싶지 않았다.
보통의 삶을 산다는 것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어릴 때부터 생각해서인지 항상 평범한 보통의 삶을 살고 싶었다.
그런데 그 보통의 삶 속에서의 내가, 지루해졌다.
쳇바퀴처럼 사는 삶의 연속이 너무 갑갑했다.
약을 먹어 분명히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약을 먹으면 모든 것이 예전보다 더 좋아질 것이라고 믿었었다.
그런데 약은 기적의 치료제가 아니었다.
약을 먹어 불안한 마음이 진정되고 잠을 잘 수 있게 만들 순 있지만
삶의 의욕까지 찾게 해 줄 순 없었다.
우울하지 않게 만들 순 있지만 웃을 수 있게 만들 순 없었던 것이다.
행복하고자 하는 것에는 나의 의지가 필요했다.
중증 우울증 환자가 그간 격려를 들어도 힘을 낼 수 없었던 이유는 힘을 내고 싶어도 힘을 낼 수 있는 에너지가 하나도 남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 해답이 무엇인지도 어떻게 하면 가정과 내 아이와의 관계가 더 좋아질지 알고 있지만 그 길로 발걸음을 뗄 힘이 없었다.
그런데 비어있던 내 마음의 항아리에 2년여의 시간 동안 무심하게 똑똑 채워진 나의 에너지들이 '지금이야'라고 말해주었다.
이제는 나의 행복을 위해 무언가를 해보라고 말이다.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 몰라 이것저것 해보기 시작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나서 산책을 나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집 앞 카페로, 집 근처 백화점으로 점점 그 거리가 멀어졌다.
그간 연락이 왔지만 애써 무시해 왔던 친구에게 답장을 하기 시작했다.
다음에라는 말로 약속을 미루지 않고 "내일 어때?"라고 물어보았다.
기분이 답답한 날이면 아이를 재우고 남편과 아이를 집에 둔 채 코인노래방에 갔다.
꼭 노래를 잘 부르지 않아도 내가 모르는 노래라도 그냥 틀어놓고 듣기도 하고 중고등학교 때 불렀던 노래들을 불러보기도 했다.
나하고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사지 않던 옷을 사보기도 했다.
비싸다고 들어가지 않던 매장에 들어가 맘에 드는 가방을 턱 하니 사보기도 했다.
매일 오늘 저녁을 뭐하지, 오늘 아이랑 뭐하며 놀지 고민하는 것을 멈추고
오늘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을까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보니 내가 누구인지 조금씩 보였다.
그렇게 한 걸음씩 나는 우울증에게서 멀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