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시절의 연애는 참 어려웠다. 사랑은 행복한 서론과 그렇지 못한 결론의 반복이라고 했던가. 나 역시 정형화가 되어버린 그 반복을 겪어야만 했다.
대학교 1학년 때 만났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그녀는 내 친한 동네 친구의 소개팅 상대였지만, 우연한 기회로 몇 차례 같이 만나다 보니 우린 서로에게 끌리게 되었다. 그 사실을 모르는 내 친구는 그녀와 좀 더 진지한 관계로 이어나가고 싶어 했다. 그런 그의 태도에 초조해진 그녀는 내게 먼저 고백을 했고, 나는 친구와의 관계 때문에 망설였다. 그래도 남자인 내가 이 상황을 정리해야 하는 게 맞겠다 싶어서 나는 친구에게 전화해 우리 관계를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친구는 한 시간 후에 우리가 자주 가던 술집에서 보자고 했다. 한 성격 하던 친구의 무거운 말투에 나는 여차하면 몸싸움까지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약속 장소로 갔다. 자리에는 다른 친구들도 있었다. 심각한 표정의 다른 친구들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 친구는 나를 천천히 올려다보더니 의자를 뒤로 걷어차며 일어났다. 나는 결국 사단이 벌어지는구나 싶어 싸울 태세를 갖췄다. 그 모습에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있던 한 친구가 킥킥대며 웃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를 제외한 모두가 낄낄대고 웃으며 먼저 웃기 시작한 친구를 나무랐다. 친구들은 나에게 장난을 치려고 했던 거였고, 나는 보기 좋게 당한 것이다. 친구들은 웃으며 우리 사이를 응원해 주었다.
그렇게 조금은 어렵게 시작한 사랑이었지만, 그 사랑은 오래가지 않았다. 바쁜 대학 생활과 잦은 술자리에 나는 그녀에게 조금씩 소원해졌고, 그녀는 내게 서운함을 감추지 못했다. 딱히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녀를 향한 마음이 식은 것도 아니었다. 남자라는 동물은 그런 것 같다. 운전할 때를 제외하고는 멀티 플레이가 잘 되지 않는 그런. 나 역시 여타 남자들과 다를 바 없었고, 그녀는 그런 내게 실망감을 그대로 표현했다.
“너의 매력이 뭔지 알아? 무관심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녀는 나를 떠났다. 이상은은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질 않았네’ 라 노래했다. 젊었고, 사랑을 했지만 그땐 몰랐다. 젊음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사랑이 사랑인 줄 몰랐다. 그래서였을까? 친구마저 저버리려 했던 그 사랑의 표현은 고작 무관심이었다.
이후에도 많은 이성들과 연애를 했지만, 행복한 서론으로 시작해 행복하지 못한 결론으로 끝이 났다. 여전히 나는 사랑에 무관심했다. 사랑할 땐 사랑이 흔해만 보이기도 했고, 다른 사랑에 흔들리기도 했다. 현재 진행형이었던 사랑의 소중함을 몰랐다. 그렇게 지나간 사랑은 이제 과거형이 되어 영원할 것 같았던 젊은 날의 추억 속에 남아 있다.
우리는 슬픈 사랑 노래에 빠져들고, 슬픈 로맨스 영화를 보며 눈물 흘린다. 누구나 슬픈 사랑 이야기 하나쯤은 가슴속에 품고 있기 때문이다. 무관심으로 점철되었던 과거를 바꿀 수는 없다. 하지만 우리에겐 항상 현재가 주어진다. 현재는 내게 남은 시간의 가장 젊은 순간이다. 그리고 그 가장 젊은 순간에 우리는 여전히 사랑을 하고 있다. 이 젊음과 사랑을 또다시 슬픈 사랑 이야기로 채워나갈 것인가? 사랑하는 가족, 사랑하는 친구, 사랑하는 연인이 지금 현재 우리 곁에 있다. 이제는 행복한 서론으로 시작해 행복한 결론으로 끝맺음되는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젊음도 사랑도 아주 소중한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