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와 둘이 아파트에서 방을 나누어 살았었다. 미국은 아파트를 평수의 개념보다는 방의 개수로 구별 짓는다. 우리는 2 베드 룸 아파트에서 같이 살았다. 친구가 화장실이 달린 더 큰 방을 썼고, 나는 작은 방을 쓰는 대신 거실에 있는 팬트리를 사용했다. 남자 둘이 거주하는데 거실 화장실 이용하는 것은 크게 불편하지 않았다. 나름 공평히 집을 분배했고, 우리는 집세를 정확히 반씩 냈다. 같이 살았던 친구는 중학교 때부터 친구로, 강동 중학교(현 송파 중학교) 일진 출신이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어 버지니아에서 어학연수만 2년 넘게 하고 있는 친구를 내가 있는 알바니로 불러 대학교에 입학할 수 있게 도와주었다.
유학 당시 나도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이 친구 역시 사업을 하시던 홀어머니께서 몸이 안 좋아지셔서 유학 생활이 녹록지 않았다. 그나마 나는 옷 가게에서 일을 계속하고 있었기 때문에 집세에 대한 문제는 없었지만, 그저 한국에서 돈을 기다려야 하는 친구는 달랐다. 어머니가 사업체를 정리하시고 작은 건물로 임대업을 하셨는데, 임대 상황이나 임차인들의 여건에 따라 수입이 달라졌다. 그러다 보니, 친구에게 생활비는 물론이거니와 집세도 보내주시지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겼다.
친구와 생활한 지 7개월 동안 우리는 집세 연체에 대한 경고장을 3~4번 받았다. 몇 달치를 계속 연체한 상황은 아니었지만, 매달 10일에서 15일 정도 늦게 입금을 하게 되었다. 친구는 이런 일이 잦아지자 상황에 무뎌졌는지 경고장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이었다. 내가 유학했던 알바니의 겨울은 무척이나 춥고 눈이 많이 온다. 한번 눈이 오면 무릎 위 높이까지 쌓이는 것은 기본이었고, 난방비를 아끼기 위해 거실 히터를 켜지 않은 날은 집 안쪽으로 창틀에 고드름이 생겼다. 그런 혹독한 겨울을 지나가던 어느 날, 현관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문을 열자 아파트 관리자 점퍼를 입은 백인 아주머니가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 나를 보고 물었다.
“Jay Choi is here?”
“It’s me, ma’am”
내가 대답하자 그녀는 노란 서류 봉투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This is a final demand.”
방으로 들어와 서류를 열어보니, 정말 최후의 통첩장이 들어 있었다. 이번 달 말일까지 밀린 월세를 내지 않을 경우, 다음 달 5일에 강제 퇴거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이었다. 여러 차례 경고를 주었지만 연체가 재차 삼차 일어났고, 한 달치 월세 선 입금인 보증금은 이미 밀린 월세로 빠져있는 상태라는 이유였다. 그날 저녁, 친구와 얘기를 했지만, 친구도 방법이 없었다. 결국 친구는 내게 집세를 빌리려 했다. 사실 내가 월세 반을 대신 내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나는 대단한 철학 까지는 아니지만 내 나름대로의 철칙이 있었다. 돈은 빌리지도 빌려 주지도 말자. 나는 아무리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돈을 빌려 본 적이 없다. 그 말인즉슨, 사업의 경우나 심각한 건강 상의 문제가 아니라면 누구라도 그럴 수 있다는 것이다. 형편에 맞는 삶을 살고, 상황에 맞는 소비를 한다면 충분히 가능하다. 세상에는 한 달에 16만 원을 버는 사람부터 16억을 버는 사람까지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존재한다. 돈을 적게 버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가 빚을 지고 살지는 않는다.
서른이 훌쩍 넘었을 때의 일이다. 친한 친구가 여자친구 선물을 사야 한다며 백화점을 가자고 했다. 그 친구는 5만 원짜리 모자를 고르며 내게 3만 원만 빌려달라고 했다. 서른 넘은 나이에 5만원도 없나 싶은 상황에 황당했지만, 나는 친구와의 채무 관계보다는 친구를 위한 소비를 선택했다. 내가 모자는 살 테니 너는 밥을 사라 말하고 5만 원을 지불했다. 빌려 준 돈을 받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특히 친한 사이라면 적은 액수는 속 좁아 보일까, 큰 액수는 상대방이 아직 형편이 좋지 않을까 돈 이야기를 꺼내기가 쉽지 않다. 돈을 빌려줘도 불편한 상황이고, 빌려주지 않아도 불편한 상황이라면 나는 빌려주지 않는 쪽을 택하겠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집세를 해결 못한 그 친구는 결국 다른 친구들에게 돈을 빌리려 했다. 나는 그러지 말라고 단호히 막아섰다. 그 대신 다른 해결 방안을 제시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으니, 방을 빼서 내가 예전에 있던 홈스테이로 같이 들어가자고 했다. 친구의 생활 형편에 맞지 않는 곳에 머물면서 서로 마음 고생하지 말고 집세와 생활비를 줄일 수 있는 방향으로 가자는 제안이었다. 그리고 일자리를 소개해 줄 테니 일을 해서 생활비라도 벌라고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본인의 노력이나 변화는 없이 문제가 해결되는 것보다는 당사자가 느끼고 깨달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는 끝까지 돈을 빌려주지 않는 내게 섭섭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내 친구가 내 마음을 알아 주리라 믿었다. 그래서 나 역시 다른 룸메이트를 구하는 대신 친구와 같이 나갈 선택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걱정과는 다르게 친구 어머님이 말일 전에 돈을 보내주셔서 집세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친구와 나는 렌탈 오피스에 직접 찾아가서 사과를 하며 집세를 냈다. 그리고 친구는 내가 소개해준 운동화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 뒤로는 집세에 대해 걱정할 일은 없었다. 그리고 그 친구와는 지금도 티격태격하며 매일 통화하는 사이다. 돈으로 떠날 사이라면 언젠가는 떠난다. 돈과 사람은 장기전으로 생각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