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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니

by 징계
cn_0599(grain) copy.jpg 둥지를 짓는다는 것은

미국에서 꽤나 오랜 시간 신세를 진 미국 할머니가 있었다. 이름은 커니(Connie) 다. 홈스테이를 운영하는 커니는 20년 넘게 유학생들과 생활해 왔다. 나는 유학 초기부터 알고 지냈기 때문에 8년 이상 추억을 쌓았고, 커니 집에서는 3년 정도 지냈던 것 같다. 내 기억 속 커니는 당시 60세가 넘은 나이에도 굉장히 에너지가 넘쳤으며, 유머와 재치가 있었다. 우리 유학생들에게 미국의 격식과 매너를 가르쳐 주면서도 같이 맞담배를 피우곤 했다. 식사 후 커니가 들려주는 19금 농담들은 저녁 시간의 즐거움이었다.


커니는 결혼을 하고, 자신이 요리에 소질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신혼 시절 요리하는 것을 피하기 위해 남편이 퇴근 후 집에 들어오면,


“나랑 잘래? 아니면 내가 한 라쟈냐 먹을래?”


라고 묻곤 했다. 커니의 요리 실력을 알았던 남편은 언제나 주방보다는 침대를 택했다고 한다. 그렇게 뜨거운 결혼 생활을 이어 나갔고, 커니는 행복의 선물을 받게 되었다. 아들, 더글라스가 태어난 것이다.


하지만 더글라스가 태어난 후로 커니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다. 더글라스가 다운증후군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이다. 무책임한 남편은 더글라스가 다운증후군이라는 이유로 가족 곁을 떠났고, 커니는 홀로 더글라스를 키우게 되었다. 커니는 자신의 삶의 모든 것을 아들의 건강과 교육을 위해 쏟아부었다. 더글라스는 유, 초년기 특수 교육 과정을 모두 마치고, 일반 학교로 진학했다. 커니는 일반 학교에 진학한 더글라스의 사회성을 높이기 위해 홈스테이를 운영하며 유학생들을 받게 된 것이다.


커니의 모성애는 더글라스를 키우는 데에만 그치지 않았다. 커니는 보살핌이나 보호가 필요한 유학생들의 엄마가 되어 주었다. 특히나 내게는 잠자고 있던 모성애가 되살아 난다는 표현까지 써가며 아들처럼 대해 주었다. 여느 엄마들처럼 내가 늦을 때면 어디 있는지, 언제 들어오는지, 뭘 하고 있는지 꼭 확인을 했다. 내가 법적인 문제에 놓여있을 때도 아는 인맥을 총 동원해서 나를 도와주었다. 그리고 형편이 그리 넉넉지 않았던 내가 식비를 아껴야 한 다는 걸 알고서는 점심 도시락을 싸 주기 시작했다. 내가 간간히 도시락을 깜빡하고 챙기지 못할 때면 여지없이 도시락을 들고 내가 있는 곳으로 나타나곤 했다. 학교 건, 일하는 곳이건 간에 말이다.

처음엔 직업의식이겠거니 했다. 하지만 내가 4년제 대학으로 편입하기 전, 2년제 대학 졸업식에서 커니의 우는 모습을 보고, 나는 그 의심은 접었다. 유학생이 2년제를 3년 반 만에 졸업했으니 한심해서 눈물이 났을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이사를 나갈 때에도 이사 가서 밥 굶지 말라고 식기, 주방 용품, 주방 가전 등을 살뜰히 챙겨 주었다. 이사 후에도 명절 때면 집으로 초대해서, 이것저것 먹을 것을 챙겨 주었다. 정말이지 커니는 내게 친부모 같은 다정함을 보여 주었다. 하루는 커니에게 조용히 물었다.


“Connie, why are you taking care of me so well?”


그러자 커니가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다 웃으며 말했다.


“You just came into us.”


우리라고 말한 것은 아마도 더글라스도 함께 포함한 표현 일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때론 서술적 언어로 표현이 되지 않는 감정들이 있다. 그래서 시가 존재하고 예술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커니의 그 짧은 한마디 말은 내게 충분한 설명이 되었고, 내 마음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부모가 되어보니 그때 커니의 마음을 더욱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커니의 엄마로서 의 삶은 커니가 나에게 보였던 모성애 짙은 태도를 충분히 설명해 준다.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되고, 행동이 습관이 되고, 습관이 성격이 되어 결국 운명이 된다고 한다. 마가렛 대처가 한 이 말은 자기 계발을 위한 삶의 지침으로 쓰이긴 한다. 하지만 나는 조금 다른 의미로 이 문장을 떠올렸다. 커니를 통해 이 문장의 의미를 역순으로 느낄 수 있었다. 더글라스를 건강하고 바르게 키워낸 삶이 있었기에 남을 보살 필 줄 아는 성격을 가졌고, 그 성격에서 나오는 따뜻한 태도가 있었으며, 본인의 친절의 이유를 나에게 양보하는 말을 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돌이켜보면 표현 방식의 차이만 있을 뿐, 내 삶 속엔 커니와 나 같은 관계가 많이 있었다. 선생님, 선후배, 누나, 형, 동생, 친구들, 가족, 이웃사촌. 수많은 관계 속에 내가 커니의 입장이 되기도, 또다시 내가 나의 입장이 되기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나는 누군가의 마음속에 있다. 그리고 또 누군가는 내 마음속에 있다. 그들에게 내 삶이 어떻게 기억될지는 내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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