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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법정

by 징계
lu_0373_1.jpg 어떻게 풀것인가?

유치장에 8시간 정도 있었던 것 같다. 식사라고는 경찰이 철창 사이로 던져 준 빵과 우유가 전부였다. 배도 고프고, 정신적으로 지쳐갔다. 그러던 중, 정복을 입은 경찰 두 명이 철창 문을 열고 들어와서 나에게 말없이 족쇄와 수갑을 채웠다. 태어나서 처음 차보는 족쇄는 내 마음만큼이나 무겁고 차가웠다. 나는 그 경찰들을 따라 족쇄소리를 스그렁 스그렁 내며 걸었다. 엘리베이터 앞에 멈춰 선 그들은 올라가는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나를 먼저 태워 엘리베이터 안쪽에 서게 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문 쪽을 바라보고 섰다. 한 경찰이 곤봉으로 나를 툭툭 치며 말했다.


“Turn around.”


나는 문을 등지고 돌아섰다. 눈물이 왈칵 나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경찰이 또 곤봉으로 나를 툭 쳤다. 내리라는 뜻이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고 나는 눈물을 질질 흘리며 PUBLIC ATTORNEY라고 적혀 있는 국선 변호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그 국선 변호사는 꽤나 친절하게 내 눈높이에 맞춘 영어를 써가며 상황을 물었다. 나는 짧은 영어 실력으로 힘겹게 설명을 했다. 나는 긴장하고 당황해서 Tuesday가 화요일인지 목요일인지도 헷갈렸다. 아마도 그 변호사는 상황을 100%는 이해하지 못한 것 같지만 알았다고 하며, 자기가 판사 앞에서 나를 어떻게 변호하고 상황을 어떻게 끌어 갈 지에 대해 설명했다. 나 역시 100%는 이해하지 못했지만, 알았다고 했다. 나의 고맙고 감사하고 사랑스러운 국선 변호사는 나를 법정으로 데려갔다.


법정 안에는 흑인 한 명이 판사 앞에 서 있었다. 고등학교 고학년쯤으로 보이는 그 흑인 아이는 고개를 푹 숙인 채 판사의 말을 들으며 그저 알겠다는 대답만 반복했다. 이어서 판사가 판결을 내렸다. 범죄 내용은 대마초 소지죄였다. 대충 알아듣기로는 소지한 대마초가 소량이고 반성의 태도가 보여 벌금형을 준다는 내용이었다. 벌금은 170불, 한국 원화로 18만 원 정도 되는 돈이었다. 대마초 소지죄가 18만 원의 벌금형이라니! 나도 희망이 있다!


내 차례가 되어 변호사와 나는 판사 앞에 섰다. 판사석은 정말 높은 곳에 있었다. 안 그래도 영어도 짧은데 높은 곳에서 권위적인 어투로 내뱉는 판사의 말을 나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내 고충을 이해한 변호사는 판사에게 내가 어학 연수생 신분임을 설명하고 십여분 정도 이야기를 나눴다. 긴장감에 온몸은 땀으로 젖었고, 젖은 미역처럼 흐물흐물 고개 숙이고 있던 나를 변호사가 툭툭 쳤다. 고개를 들자 판사가 꽤나 온화한 표정으로 나에게 물었다.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할 수 있겠냐?”


“네, 판사님.”


나는 힘주어 대답했다.


“너는 음주 운전을 했기 때문에 여기에 왔고, 음주 운전은 미국에서 중범죄에 들어간다. 나는 너를 수개월간 구금할 수도 있지만, 유학생의 신분이고 공부를 하러 왔기에 기회를 주려고 한다. 먼저 네가 해야 할 일은 뉴욕 주 운전면허를 취득하는 일이다. 수감형이 아니라 벌금형을 받으려면 너는 뉴욕 주 면허 소지자여야 한다. 면허를 딴 후, 법정으로 와서 벌금을 내라. 벌금은 700불로 책정한다. 그 후 4주간 음주운전자 갱생 교육에 참여해라. 이 모든 과정을 이행하고 앞으로는 음주운전을 하지 마라. 지금까지 내가 하는 말을 모두 이해했고, 그대로 이행하겠나?”


판사는 또박또박 천천히 설명을 해 주었다.


“네, 판사님. 감사합니다. 판사님.”


나는 법정을 나오며 변호사에게도 연신 감사 인사를 했다. 나의 사랑스럽고 고마운 국선 변호사님은 웃으며 나에게 또 보지 말자는 인사로 나를 보냈다.


구금되기 전 빼앗겼던 소지품들을 경찰에게 받아서 터덜터덜 건물 밖으로 나오면서 생각했다. 대마초 벌금이 170불, 음주운전이 700불. 뭔가 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은 1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반면 대마초 소지죄에 대한 처벌은 5년 이하의 징역형 또는 5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다. 그래도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다. 아니 나이가 들고 이제와 다시 생각해 보면, 처벌 수준을 떠나서 음주 운전은 인명 피해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대마초 역시 우리나라에선 심각한 범죄지만 직접적인 인명 피해는 입히기 쉽지 않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음주운전 교통사고는 2022년 한 해 기준 15,059건이다. 이 사고로 인한 사망자는 214명이었다고 한다. 코로나 시기를 겪으며 교통사고율이 낮아지긴 했지만 역시나 많은 수치이다.


이 1박 2일간의 서슬이 퍼런 교육적 시간은 나에게 많은 걸 느끼고 깨닫게 해 주었다. 한 없이 나약한 나 자신에 대한 자각. 내 삶의 뿌리였던 가족에 대한 그리움. 두려움에 대한 진통제 같았던 친구들의 소중함. 법은 냉정하고 날카로운 면과 이해심 깊고 온화한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사실. 이 많은 깨달음을 아주 짧은 시간에 가슴 깊이 새겨 넣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역시나 내 인생은 실수와 과오의 연속이고, 내 삶은 나란 놈의 좋은 스승이 되어주는 것 같다. 문제는 나는 아직도 깨달음이 부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그랬다. 인생은 불완전한 인간이 평생을 완성을 향해 지랄하다가 죽는 것이라고. 나도 계속 지랄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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