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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년기 앨리스 Mar 25. 2024

서툰 혼자만의 시간, 나는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아

남편의 화이어족 선언으로 남편과 나는 평일 함께 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래서 나에게 자유시간은 이제 흔하지 않은 소중한 시간이다. 아이는 여느 때와 같이 학교가고, 남편이 약속이 있는 내일, 나는 내일 어디를 갈까 마음속으로 계획을 세워본다. 약속이 있으면 좋겠지만 약속이 없어도 혼자 노트북 들고 아침 일찍 커피솦에 가야지. 혼자 아이쇼핑도 다녀볼까. 혼자 여기도 가고 저기도 가고 바쁘다.


그런데 막상 내일이 되면, 극I의 내가 슬그머니 나타난다.

가족이 모두 나간 집에서 나는, 일단 쇼파에 눕고, 핸드폰 좀 보다가, 커피가 마시고 싶어진다. 그런데 커피를 마시려고 보니 집꼬라지가 맘에 안든다. 먼저 정리하고 청소기 돌리고, 설겆이하고, 그리고 깨끗한 집에서 커피를 내려 마신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11:30, 곧 점심시간인데 혼자 나가 밥먹기도 싫고 지금 나가면 사람들도 많이 붐빌테고, 집에서 간단히 점심을 해결하기로 한다. 점심을 준비하며 드라마를 튼다. 점심을 다 먹도록 드라마는 끝나지 않는다. 계속 본다. 그러다 남편이 귀가했다.....


나의 자유시간은 이렇게 솜사탕 녹아버리듯 사라져버렸다.


나는 내가 싱글이어도 혼자 잘 살거라 생각했다. 무한한 자유시간을 멋지게 잘 활용하며 말이다. 그런데 요즘 나를 보면 나는 혼자는 절대 못살 것 같다. 성공한 멋진 독신여성? 정확히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이다. 남편과 아이가 없을 때 마음은 가볍지만 나는 혼자 밥도 잘 챙겨먹지 않는다. 아이가 있을 땐 아이를 위해서 집밥을 먹이려고 식사시간 전에 바쁘게 움직이고 내일 입을 학교 유니폼도 바로바로 세탁기 돌리고, 늦지 않은 저녁시간을 지켜 공부할 시간도 확보하게 계획적으로 움직인다. 그런데 아이가 친구집에 슬립오버를 가고 공교롭게 남편도 저녁 약속으로 늦는 날, 나는 혼자 독거노인인냥, 잘 챙겨먹지도 않고 흘러가는 시간만 보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혼자만의 자유시간. 난 뭐가 제일 하고 싶었던 걸까. 무엇때문에 그렇게 매번 설레고 기다리는걸까.

그냥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던 건 아닐까. 엄마도 아내도 아닌 내 모습으로 밥도 빨래도 집안일도 다 내려 놓고 그냥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나면, 사실 허무하고 무모하고 내가 왜이렇게 시간을 보냈을까 원망스럽기도하다. 그리곤 또 생각한다. 나란 인간은 진짜 혼자살면 완전 망가지겠구나.


내가 나로 살게 하는 것, 나를 부지런히 움직이게 하는 것은 가족이었다. 가족이 있어 다행이다.


아들이 더 커서 내 품을 떠날 때의 순간을 가끔 상상할 때가 있다. 사실 지금은 어디 기숙사 넣을 학교 없나 서로 이를 바득바득 갈며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하지만, 아들이 군입대할 순간, 결혼할 순간을 떠올리면 딸 엄마 못지않은 상실감이 닥쳐오기도 한다. 쿨한 엄마가 되어야지. 지금부터라도 가족으로부터 심리적 독립을 결심해야겠다. 우리 모두를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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