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을 병들게 하는 최악의 습관
회사를 그만두고 아이를 키우고 집에서 살림을 하며 제일 좋았던 건, 나와 맞지 않는 사람과 이야기할 필요도 밥을 먹을 필요도 없고 매일 얼굴을 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주부라는 사회생활 속에서 나와 맞지 않다고 느끼는 이웃이나 새로 사귀게 된 엄마들과는 잘 만나지 않았다.
"회사도 아닌데 내가 왜 굳이 안 맞는 사람을 만나서 스트레스를 받아" 스스로를 차단하며 나와 잘 맞는 사람들만 만나려 노력했다. 그 결과 인간관계는 점점 좁아졌다. 다행히 친언니가 항상 근처에 있었기에, 사실 언니만 있어도 친구에 대한 미련이나 외로움은 전혀 없었고 그저 모든 걸 서로 알고 이해해 주는 언니라는 존재가 있음에 감사했다.
그러다 나의 두 번째 해외살이. 언니가 없는 해외살이가 시작되었다.
다행히 마음 맞는 한두 명의 엄마들을 만나 지금 유쾌하고 재미있게 지내고 있다. 그런데 그 둘을 제외하곤 모두 나에게 적대적이다. 교민 사회도 좁은데, 아니 교민사회는 아직 발도 들이지 않았는데 그저 나에게 학교 엄마들이 나의 사회생활의 전부인데 말이다.
아이를 국제 학교에 보내고 내가 처음 친하게 된 엄마 H는 아이를 엄마표로 영어책도 꾸준히 읽히고 공부도 잘 가르치는 야무진 엄마였다. 아이도 엄마를 잘 따라 영어 실력은 물론이고 모든 과목에서 눈에 띄게 성장했다. H엄마의 아이는 2-3년 먼저 온 아이들보다도 영어 실력이 월등해졌다. 말 그대로 눈부신 성장이었다. 나는 내 아이가 다니는 국제 학교에서 한국 아이가 이렇게 성장하다니 국가 자존심을 걸고 정말 대견하고 기특했다. (비록 내 아이는 공부가 그닥이지만ㅋ) 난 H엄마의 교육관과 지속성 있는 끈기에 박수를 보냈고 서로 해외살이 경험도 있어 이야기가 잘 통했다. 그렇게 난 H엄마와 친하게 되었고, H엄마는 얼마지않아 한국으로 돌어갔다. 그리고 주위를 돌아보니 내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알게 모르게 H엄마를 다들 시기하고 있었던 것 같다.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H엄마의 아이가 3년이나 먼저 온 자기 자식들보다 영어를 잘하니 곱게 보이지 않았을테다. 그리고 H엄마와 친했던 나는 공부 잘하는 아이 엄마 옆에 붙어 H엄마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한 엄마로 통하고 있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났고 난 여전히 아들 학교의 한국 엄마 무리에 끼지 못하고 있다.
학교 엄마들을 외부에서 만나면 인사하는 것조차 유쾌하지 못하다. 사실 나는 그들에게 아무 감정도 없고 겪은 일도 없는데 나는 왜 이렇게 미운털이 박힌 걸까. 살아오며 이렇게 제대로 미운털이 박힌 적이 없었던 터라 정말 난감하고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그중 한 명을 엘레베이터에서 만났다. 짧은 대화가 오고 갔다. 집에 와서 내내 잘 때까지 그리고 다음날 눈 뜰 때도 불쾌했다. 한마디 한마디에 비웃음이 섞여 있는 느낌.
그러다 아차 싶었다. 그냥 물어볼걸.
그 사람의 얼굴만 봐도 표정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안다고 생각한 내가 오만했고 자만했다. 그리고 지레 날 싫어할 거라 생각하고 내내 스트레스 받은 내가 바보 같았다. 정신과 의사의 유튜브를 보았다. 내 마음을 병들게 하는 최악의 습관 중 하나가 바로 독심술이었다. 좋게 말하면 상대방에 대한 배려, 나쁘게 말하면 눈치 보느라 미리 상대방의 얼굴과 표정 말투에서 그 사람의 마음을 짐작해 내는 소극적이며 찌질한 습관이었다. 회사 그만두고 싫은 사람 안 만나도 돼서 좋다더니 나는 그렇게 독심술이라는 이름하에 눈치를 보며 살고 있었다.
독심술에서 벗어나고자 선언은 했지만, 아직도 힘든 건 사실이다. 이것은 그들과의 싸움이 아니다. 나 스스로와의 싸움이다. 진심은 언제나 통한다고 믿었다. 그런데 진심이 통하지 않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통하지 않는 사람에게 굳이 노력할 필요는 없다. 진심은 진심을 알아주는 사람에게 통하게 되어 있으니까.
다시 일 년 전으로 돌아간대도
나는 나와 처음 친했던 H엄마와 똑같이 친하게 지낼 것이다. 왕따의 결말을 알면서도..
그리고 진심으로 박수 치고 응원할 것이다. 나는 나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