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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년기 앨리스 Mar 11. 2024

극E와 극I의 해외살이

20년을 살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한창 시절,

나는 E와 I를 넘나드는 조용하지만 밝고 외향적인 성격이었다. 집에 있는 것도 좋아했지만 활동적으로 집 밖에서 사람을 만나거나 쇼핑을 하거나 문화활동을 하는 것도 좋아했다. 그런데 점점 나이도 들고 이 번 두 번째 해외살이를 시작하며 나는 나 스스로 영락없는 I 성향임을 인지하게 되었다. 해외에서 산다고 하면 다들 부러워한다. 시댁으로부터, 명절로부터 자유로워 좋겠다고. 나의 첫 번째 해외살이일 때는 그 말이 딱 맞았다. 축복이었다. 웬만한 의욕으로는 오기 힘든 나라 인도였기 때문이다. 십 년 전에는 더더욱 그랬다. 손님이라곤 4년 동안 양가 직계가족뿐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동안 우리 가족끼리 똘똘 뭉쳐 지냈고 주변 국가 여행도 많이 다녔다. 살기 힘든 나라였지만 난 요즘 그때 그 시절이 그립다. 나의 두 번째 해외살이는 첫 번째와는 정 반대다. 한국과 가까워 맘만 먹으면 언제든 올 수 있는 나라이고 맛있고 저렴하고 겨울에도 따뜻한 나라다. 누구나 한 번쯤 와봤고 가고 싶은 만만한 나라이기도 한 태국이다. 그리고 지금이 딱 성수기다.


나는 약 1년 동안 이곳에서 지내며 한국에 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법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남편의 친한 회사 후배네 가족, 남편의 외삼촌 아들의 가족, 남편의 어린 시절 함께 자란 친구의 부모님, 남편의 중동 주재 홍콩 친구의 가족. 남편은 내가 보기엔 극 E 성향의 사람이다. 사람도 좋아하고 술도 좋아하고 베푸는 것도 좋아한다. 그래서 누군가 태국에 왔다고 연락이 오면 꼭 가족을 동반하여 식사 약속을 잡는다. 물론 좋은 의미인 건 알고 있다. 그리고 아들을 매우 사랑하는 남편이기에 우리 아들을 친구나 동료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는 마음도 안다. 또한, 남편이 아끼고 좋아하는 사람들이니 남편은 나에게 소개해 주고 싶은 마음일 것이다. 그런데 극 I인 나는 조금씩 점점 힘들다. 그리고 앞으로 이런 일이 많을 거란 추측에 더 마음이 무겁고 버겁다. 내가 만약 지금 한국에 있었어도 저 사람들을 만났을까. 만나기 싫은 건 아닌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자리, 거기다 식사하는 자리는 더더욱 불편하다. 남편이 나의 이 성향을 알아주었으면 좋겠지만 극 E 남편은 전혀 알 길이 없어 보인다.


아래 캡처 내용은 나와 같은 성향인 ISFJ 동지들의 글이다

  출처 https://www.82cook.com/entiz/read.php?bn=15&num=3110256


몰랐다.

우리의 성향 차이가 이렇게 큰 지. 20년을 산 지금도 새삼 놀라울 만큼 우린 다른 성향의 소유자들이다. 이렇게 두 번째 해외살이를 하며 나는 이제야 알아가고 있다. 겉으로 내색하지 않으니 남편은 내가 이리 예민한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또한 남편은 태국에서의 삶을 굉장히 만족하는 눈치다. 하지만 나는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다. 이곳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한국에선 볼 수 없었던 유형의 학부모들을 만나 호되게 인간관계에 대한 성찰을 다시 하게 되었고,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교민사회에 나는 더더욱 폐쇄적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열심히 남편과 골프를 치며 지내려고 노력하지만 치는 횟수만큼 잘 치지도 못하고 그까짓 거 안 치면 그만이다. 그리고 예상했던 만큼 생활비도 싸지 않으며 렌트비도 만만치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알든 모르든 누군가가 방문한다는 소식과 식사 약속은 특히 이곳 성수기인 겨울에 극에 달한다.


남편은 너무도 쉽게 집을 내어주고 식사도 대접하고 픽-드롭 서비스도 서슴없이 해주는 정말 좋은 사람이다. 직계가족은 당연하지만, 친척의 경우라도 남편은 입 출국 전, 비행시간이 늦거나 혹은 너무 이르면 우리 집에서 쉬다 갈 것을 권하기도 한다. 그런데 식사도 힘든 나인데 집까지 오픈하려니 맘이 복잡하다. 남편이 쉽게 하는 말들이 있다. 맨날 오는 것도 아닌데, 일 년에 몇 번이라고, 이제 마지막이다. 이런 말들을 방어할 말들은 매 순간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거절하기엔 너무 야박하고 예민하고 정 없는 사람으로 치부되는 느낌이라 또 수긍하고 만다. 남편의 파이어족 선언으로 인해 우리는 집에서 함께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다. 서로 많이 배려하는 성격이기에 사실 불편함은 전혀 없고 오래전부터 프리랜서로 같이 오랜 시간 머문 듯 서로의 영역도 잘 나눠져있다. 그런데 이건 우리 가족만 있을 때의 '평화로움' 이라는 전제하에서다. 2주간의 친정 부모님 방문 후 바로 이어진 2주간의 시외삼촌 아들네 가족 그리고 3주 후 시댁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아직 시댁 식구들이 오기 3주 전인데, 내 머릿속은 청소부터 오시는 날 아침 메뉴까지 틈나는 대로 시뮬레이션이 돌아간다. 하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장롱문을 열어보는 것도 아닌데 나는 왜 장롱부터 냉장고 속까지 정리를 하려고 하는 건지 나도 나를 잘 모르겠다. 성공적인 해외살이의 롱-런을 위해서라도 무언가 규칙과 조율이 시급해 보인다. 그리고 서로에 대한 이해도 필요해 보인다. 극 E와 극 I는 잘 타협할 수 있을까. 요즘 같아선 저 멀리 북극에 가서 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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