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19년 차, 사나운 여자가 되었다
나의 반백 살 인생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지난 19년 동안 많은 경험을 하게 되었다. 내 부모가 아닌 또 다른 부모가 생기고, 우리 언니가 아닌 또 다른 언니가 생겼다. 여기서 문제는 다른, 또 다른 이다. 신혼 초부터 잘해 보고 싶고 잘 보이고 싶어 나 역시 최선을 다했다. 그런 나의 최선이 한 번에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왜 이렇게 사나워졌냐는 남편의 한마디.
나는 싸우는 걸 싫어했다.
그래서 피해 왔다. 싸움의 최고 피해자는 아이들임을 알기에 아이를 생각해서도 참았고 싸우는 것보다 싸운 후의 지옥으로 치닫는 내 성향을 잘 알기 때문이기도 했다. 결혼 10년 차가 되었을 때, 이제 내가 이 집안사람임을 인정받는 것 같다며 안도했었다. 내가 어떤 아이인지 시댁 식구들에게도 파악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이제 나에 대한 오해나 불신은 십 년이 지나면서 사라지고 드디어 내가 나로서 인정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20년을 채워가며 새삼 느끼는 건 며느리는 그저 며느리다.
이번 이야기의 시작은 이혼 한 시누이이다.
부자 시댁을 갖고 있던 시누이는 몇 년 전 이혼을 했다. 가족이기에 힘든 시간을 함께 나누고 싶어 변호사 비용 하시라고 천만 원도 드렸다.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 이후로 모든 경조사는 아들 며느리가 하는 것이 법인 양 언젠가부터 시누이는 돌아가신 나의 시아버지 자리에 앉아있다. 명절이나 어머니 생신날 만나면, 본인의 딸을 나에게 맡기고 본인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기도 한다. 엄밀히 말하면, 시누이가 어머님과 둘이 있을 땐 어머님이 아이를 전담하고, 내가 있을 때 아이는 내 차지가 된다. 약육강식 정글의 법칙이다. 우리 시댁에서 최강자는 시누이다.
당한 만큼 똑같이 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는 건 들었다. 심한 시집살이를 겪은 시어머니가 더 심하게 며느리 시집살이 시킨다는 이야기처럼 말이다. 시누이는 이혼 전, 그녀의 시댁에서 가장 약자였음이 분명하다. 외국에 사는 시누이의 시누이는 한국 친정만 오면 누워 쉬고 본인이 시누이의 세 아이를 모두 챙긴다며 온갖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다. 그런데 이혼 후, 본인이 당한 대로 우리 집에서 며느리라는 타이틀로 가장 약자인 나에게 똑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일 년에 명절 때만 만나고 어머님 생신 때만 보니 사실상 일 년에 몇 번 참을 만하다.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다 하며 남편은 꼭 함께 여행도 계획하곤 했다. 그러나 언제나 또 다른 마지막이 또 생기고 마지막은 영영 마지막이 아니다.
남편이 마지막이라고 했지만, 결코 마지막이 아니었던 어머니 팔순 여행 때의 일이다. 이번에도 시누이는 제일 비싼 호텔을 원했고, 한 단계 낮은 호텔이나 뷔페를 제안하면, 얼마 한다고 그러냐는 식으로 그 차액 본인이 줄 테니 제일 좋은 호텔과 뷔페로 예약하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시누이와 식사나 숙박비를 함께 분담한 적은 없다. 만남 후, 우리 아이에게 용돈 봉투를 내미는 것으로 본인 마음의 짐을 덜 뿐이었다. 만났을 때 커피도 한 잔 산적 없고, 한 번 본인이 사겠다고 했던 카페에선 6인 식구인데 달랑 두 잔만 주문하는 센스를 발휘해 남편이 다시 가서 추가 주문을 해야 하기도 했다. 저녁 먹고 들어가는 길엔, 나에게 "지갑 있니?" 본인 위생용품을 사야 하는데 지갑을 두고 왔다는 것이다. 결국엔 그것도 남편이 샀다. 고급 호텔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먹으며 내일 돌아가는 차 안에서 먹겠다고 호텔 샌드위치까지 포장해 갔다. 같이 먹을 것을 권하지도 않고 욕심 채우기에 급급해 보였고 정말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물론 그 레스토랑도 우리가 계산했다. 모든 계획과 비용 지불은 남편의 몫이었고, 하다못해 케이크 하나도 준비하지 않았다. 시어머니는 모두 아들 며느리가 챙겨야 한다고 어디 가서 세뇌라도 당하고 온 듯했다. 그렇게 시누이는 언젠가부터 돌아가신 시아버님 자리에 앉아있다.
남편이 안쓰러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비정상적인 시누이를 챙기는 남편이 안쓰러웠다. 그런 딸 옆에서 나 몰라라 하고 계신 어머님도 야속했다. 어머님과 시누이는 동맹을 맺은 듯 보였다. 정말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상황과 아무렇지도 않은 공기 흐름 속에 나는 내내 내가 이상한 건가를 수없이 생각했다. 매번 만날 때마다 이런 상황과 기류는 계속되었다. 그러다 이번에 우리가 외국에 나가 살게 되었다. 우리의 해외살이가 결정되고 곧 다가온 크리스마스 시즌에 또 마지막이란 심정으로 시누이가 픽한 호텔로 브런치를 예약했다. 약속을 정하며 남편이 누나인 시누이에게 우리의 해외살이를 미리 이야기했다, 그런데 시누이는 마치 우리가 어머님을 본인에게 떠맡기고 무책임하게 떠난다는 식으로 화를 내고 끝내는 식사 장소에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출국 날 나는 또 마지막이라는 심정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시누이는 끝내 전화를 받지 않았다. 우리의 해외살이 결정도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인생에 큰 결정을 한 후, 난 주위로부터 어려운 결정과 용기 있는 결단에 박수와 응원을 받았다. 시누이의 이런 태도는 생각도 하지 못한 바였다. 그렇게 떠나오며 불편한 마음은 늘 밑바닥 어딘가에 박혀있었다.
그렇게 일 년이 지났고, 한국과 그리 멀지 않은 나라이기에 그사이 우린 아이 방학에 맞추어 벌써 한국도 두어 번 다녀왔으며 어머님도 뵙고 왔다. 그리곤 얼마 전, 어머님이 시누이가 해외여행으로 우리에게 오고 싶어 한다며 먼저 전화를 해보라는 이야기를 하셨다. 그래 해외에 우리가 있으니 언제라도 누나가 어머님 모시고 오셔야지 싶어, 또 마지막이다 생각하며 남편과 전화를 먼저 걸었다. 이번엔 전화를 받았고, 내가 먼저 손 내미는 것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생각하며 한번 놀러 오시겠냐고 먼저 말을 꺼냈다. 그렇게 매정하게 식사 장소에 나오지도 공항에서의 전화도 받지 않았던 시누이의 다음 말은, "우리 호텔 잡아 줘"였다. 최소한의 미안함과 배려는 없는 것일까. 아니 내가 사과해야 했던 일이라 생각하고 있는 걸까. 도무지 알 수 없다.
앞서 말했듯, 시댁에서 최대 강자인 시누이는 오기도 전부터 본인은 혼자 돌아다닐 거라고 선포했다. 어머님과 본인의 딸은 우리와 시간을 보낼 것이다. 강자인 시누이는 그렇게 또 나에게 아이를 맡길 심보를 이미 장착하고 있었다. 그리곤 나의 취미생활이었던 뜨개질을 딸이 외숙모에게 배우고 싶어 하니 가르쳐 주라며 미션까지 주었다는 것이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이 순간조차도 이 상황이 정상인 건가? 내가 이상한 건가? 왜 남편은 그런 말을 듣고 아무렇지 않게 나에게 전하는 건가, 갑자기 멍해졌다. 그리고 남편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냐며 이야기하다 답답했던 남편도 함께 폭발해 버렸다. 남편의 요지는 일 년에 몇 번이라고 이번이 마지막…. 일 거라고 그거 한번 못 참고 옛날얘기부터 했던 이야기를 몇 번을 반복하냐는 거였다. 우린 크게 싸웠다. 나도 헤어질 결심이라도 한 여자처럼 눈 똥그랗게 뜨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리고 나는 그날로부터 사나운 여자라는 타이틀을 갖게 되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사납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못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나는 반백 살 살면서 제일 상처가 되고 지워지지 않는 말을 시댁으로부터 들었다. 정말 이상하게도 시댁의 상처는 절대 아물지 않는다.
그런 그녀들이 이제 곧 온다. 오늘이 D-23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