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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갱년기 앨리스 Apr 29. 2024

이럴 거면 금발의 제니로 태어나지 그랬니

언제까지 하얘질 건데...

우리 아들이 처음 초등학교 입학을 했을 때의 일이다. 친정언니와 친한 친구 한두 명만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던 내가 1학년 6반 엄마모임에 나가게 되었다. 무려 20명이 넘는 대(大) 모임이었다. "안녕하세요? OO엄마예요, 반갑습니다." 조금씩 서로를 경계하며 소극적인 자기소개로 첫 만남을 이어갔다. 


나는 여고 졸업 후 정말 오랜만에 이렇게 많은 여성들과 밝고 환한 날 마주 앉게 되었다. 그런데 유독 얼굴이 하얀 엄마, 잡티하나 없는 엄마, 주름하나 없이 피부가 탱탱한 엄마, 그리고 그렇지 않은 엄마의 얼굴들이 자기 소개하듯 나에게 비쳤다.


그렇지 않은 엄마라고 함은, 나를 포함 피부과에 다니지 않은 엄마들이라고 하는 편이 낫겠다. 지극히 평범한 얼굴임에도 피부과의 손길이 닿은 뽀얗고 하얀 엄마들 옆에 있자니 나와 나의 동족 엄마들의 얼굴은 한없이 칙칙해 보였다. 지금으로부터 7~8년 전이라 피부과 출입이 지금처럼 쉽지 않았던 때이기도 했는데 그중에 몇몇은 이미 피부과 시술에 익숙해 보였다.


순간, 내 얼굴은 어떨까 (말해 뭐 해)


그날 이후, 나는 피부과에 발을 들이게 되었다. 화이트닝부터 시작했다. 레이저 토닝, 점 빼기, 아쿠아필링 마사지 등등으로 한결 피부톤이 환해졌고 잡티도 많이 없어졌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새로운 피부과를 소개받았다. 그곳의 실장님은 정말 모델 뺨치게 늘씬하고 예쁘고 이마부터 동글동글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한 실장님이었다. 실장님 그녀는 나에게 리쥬란을 처음에 권했고, 쥬베룩, 엑소좀 등 이름 그래로 스킨부스터 시술로 나의 얼굴을 점차적으로 더 환하고 빛나게 해 주었다. 스카이 캐슬에 쓰앵님을 맹신하며 찾아가듯 나는 조금만 내 얼굴이 칙칙하다 싶으면 실장님을 찾았고, 뭔가에 홀린 듯 피부과 베드에 누워있었다. 주사라면 무서워 벌벌 떨던 나였는데 얼굴에 주사로 하는 시술을 모두 잘 받고 또 받고 또 받고 있으니 정말 기가 찰 노릇이다. 


40대 중반, 슬프게도 늙는 게 확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외모도 외모지만 내 인생이 점점 쓸모없이 느껴지고 아들과 대화도 잘 되지 않고 뒷방 늙은이가 된 것만 같은 느낌말이다.


그런 시기에 본 영화, [아델라인: 멈춰진 시간] 

사고와 함께 맞은 벼락으로 주인공 아델라인은 그날 이후로 늙지 않는다. 시간이 흘러 딸은 할머니가 되었지만 아델라인은 백세가 넘은 나이임에도 여전히 예쁜 청춘, 29세에 멈춰있다. 십 년마다 신분증을 위조해서 살아야 하는 인생.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가정을 꾸리고 함께 늙어가고 싶지만 늙지 않는 여자. 그래서 그녀는 사랑을 피해 늘 도망쳐야 했다. 


시간의 흐름대로 자연스레 늙어감이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었다. 

(사실 지금도 나는 저 벼락 맞고 싶지만..ㅋ)


늙고 싶지 않지만 늙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냥 조금 더 천천히 예쁘게 늙고 싶다. 요즘은 한국이 아닌 곳에 있어 우리 실장님을 자주 만날 수 없다.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다음 한국 방문 때 꼭 가서 관리받을 거라고 남편에게 이미 선포해 놓은 상태다. 이제는 스킨 부스터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아마 적어도 6cc의 필러도 맞아야 할 수도 있다. 


도대체 언제까지 하얘질 건데..

언제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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