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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rganicmum Mar 05. 2024

[심플라이프] #03 작은 냉장고가 풍성하다

소비를 줄여주는 작은 냉장고

엄마의 냉장고


나는 늦둥이라 우리 어머니는 친구 엄마들보다

10살 정도 더 많으셨다.

즉 곧 80을 바라보는 옛날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아이들은 심심하면 냉장고를 열어본다.


'맛있는 거 없나?'


내가 어릴 때 냉장고는 맛있는 음식이 별로 안 보이는 식품저장창고였다.


요즘 엄마들처럼 아이들의 간식거리를 냉장고에 사서 넣어두는 문화가 아니었고 할머니와 함께 살아서 그런지 할머니의 반찬재료들이 가득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친정에 가 보면 냉장고에 음식이 그득하다.

냉동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검은 비닐봉지가 가득하고 냉장실은 반찬통이 가득가득하다.

반찬통을 열어보면 이것도 저것도 비슷해 보이는 김치통이 여러 개 있다.


친정에 가면 밥상 차리는 것을 도와드리려 해도 뭘 꺼내야 할지 몰라서 손을 놓고 주방을 외면한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한테 잔소리하기 싫어서.



셰어하우스의 냉장고


내가 처음 유학을 떠났을 때 학교 기숙사에 살았는데 각 방에 침대 3개, 옷 행거 3개, 냉장고가 1대가 있었다.

한국의 조금 큰 원룸 같은 공간에 침대와 행거, 싱크, 그리고 냉장고가 있었다.

먼저 그 방에 살던 한국유학생이 나에게 '냉장고규칙'을 알려주었다.

제일 위쪽 선반은 저 사람 음식, 두 번째 선반은 냉장고규칙을 설명하는 사람의 음식, 세 번째 선반은 비어있으니 그곳을 사용해라는 것이다.

별로 크지도 않은 냉장고에 규칙을 만들어서 나눠서 사용하고 있었다.


함께 살기는 했지만 음식은 각자 해 먹고 각자 정리했다.

나는 아침엔 학교 가는 길에 빵 같은 것을 사 먹고 오전 수업이 끝나면 슈퍼에 들러서 점심 반찬거리를 사 와서 만들어 먹었다.  저녁에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는데 아르바이트하는 곳에서 저녁을 주었다.

쉬는 날엔 친구들과 장을 봐 와서 음식을 만들어 먹었다.


한인마트에 가서 떡볶이 떡과 고추장을 사 와서 떡볶이를 만들면 기숙사 친구들이 모여와서 함께 먹는 떡볶이파티가 시작된다.

어느 날은 불고기, 어느 날은 샤부샤부, 어느 날은 스파게티..

다양한 요리를 만들어가며 친구들이 모여서 함께 먹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나에게 주어진 냉장고는 한 칸 밖에 안 되는 작은 공간이었지만 부족하지 않았다.

나는 그 공간을 잘 사용하기 위해 식재료는 항상 필요할 때 사서 먹었던 것이다.



먹을 것이 더 많은 작은 냉장고


우리 집에 있는 작은 냉장고에는 오늘 또는 이번 주에 먹을 식재료나 음식이 들어있다.

다음 주에 먹을 음식이나 식재료는 거의 없다.

나중에 먹을 음식까지 넣으면 지금 먹어야 할 재료가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다.

샐러드드레싱이나 , 간장 같은 것들은 냉장고 문에 있다.

냉장고 문의 공간도 한정적이기에 양념류를 많이 넣어두지 않는다.


작은 냉장고가 있으면 요리를 잘 안 하는 1인가구처럼 느끼는 사람도 있는데 사실 예전에 큰 냉장고를 사용할 때보다 집에서 요리를 더 잘해 먹는다.


큰 냉장고에는 지금 먹을 것과 나중에 먹을 것이 함께 들어있었다.


가득 찬 옷장에 옷이 많아도 늘 입을 옷이 없어 보이는 것처럼 큰 냉장고가 가득 차도 먹을 것이 없어 보이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같은 이유이다.

지금 필요로 하는 것이 잘 안 보이기 때문이다.


옷을 입으려고 옷장을 열면 뭘 입어야 할지 모를 때가 있다.

날씨에도 안 맞는 것 같고 분위기에 안 맞는 것 같고 왠지 어색하고 안 어울리게 느껴진다.

분명히 예쁘다고 생각한 옷인데 어느 날 이 옷이 안 예뻐질까?


음식도 마찬가지다.

먹을 것이라고 샀고 맛있겠다고 생각하고 샀는데 막상 큰 냉장고를 열어보면 지금 먹고 싶은 음식이 눈에 안 들어온다. 뭘 만들어 먹어야 할지 고민이다.


작은 냉장고에 들어있는 음식은 대부분 일주일 이내에 산 음식과 식재료들이다.

즉, 옷으로 따지면 신상이다.


신상 옷을 사고 나면 그 계절을 아주 잘 입는다.

다음 해 같은 계절이 되면 사용빈도가 떨어지지만 산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아주 마음에 드는 옷이기 때문에 자주 입게 된다.


음식도 마찬가지다.

내가 산 지 얼마 안 된 식재료는 구매할 때 분명히 목적이 있다.

무엇을 만들지 생각하고 언제 먹을지도 생각하고 산 식품들이다.


'우리 집에 감자가 없네'라고 생각하고 감자를 사 두면 파란 싹이 올라올 때까지 못 먹고 버리기 일쑤다.

나의 과거 경험이다.


'오늘 아이들 감자튀김 만들어줘야겠다'라고 생각하고 감자를 사면 그날 저녁에 감자를 사용하기 때문에 냉장고에 몇 개 남지 않는다.

다음날 된장찌개를 끓일 때 사용하면 감자라는 식재료는 나의 작은 냉장고에서 사라진다.


다음 날은 '새우랑 애호박을 볶아서 반찬을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하고 애호박을 사면 애호박을 산 날 냉장고에서 애호박을 꺼내서 요리한다. 먹고 남은 새우애호박볶음이 반찬의 형태로으로 남아있거나 작은 냉장고에서는 애호박이 남아있지 않는다.


매일 장을 보는 것은 아니다.


격주로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일주일 분의 장을 보고 나서 다음 주는 남은 식재료와 함께 먹을 식재료만 추가로 구매한다. 된장국을 끓이려는데 두부가 없으면 두부를 하나 사고 무가 필요한 요리를 할 때면 무 하나를 산다. 이런 식으로 2주 차에는 소량으로 필요한 것만 구매를 하기 때문에 2주에 한번 정도는 냉장고를 비워낸다. 3주 차는 마트에 가는 주로 새로운 식재료들로 냉장고가 채워지고 4주 차에는 소량 구매하는 주간으로 냉장고가 비워지는 주간이다.


특히 4주 차에는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모두 소진하기 위한 노력을 하는 주간으로 일명 '냉털 (냉장고 털기)'를 한다. 냉장고에 있는 식재료를 90% 이상 비우고 나서 돌아오는 1주 차에 새로운 식재료를 넣기 때문에 늘 신선한 음식이 냉장고에 있다. 이렇게 사용하니 냉장고가 작아도 별로 불편하지 않다.


우리 집 냉장고의 제일 윗 선반에는 냉장고 문에 들어가지 않는 고추장, 된장등의 양념류와  김치가 있다.  그 아래 2,3개의 선반에는 만들어 놓은 반찬과 남은 밥, 국 들이 통에 담겨 있다.

선반 아래에 서랍이 2개 있는데 첫 번째 서랍에는 요구르트, 푸딩, 주스, 우유, 치즈 등의 아이들 간식과 과일이 있다.  그 아래 서랍에는 반찬을 만들기 위한 식재료와 채소 등을 보관한다.


냉동실도 이런 식으로 칸마다 들어가는 음식을 정해두었다.

첫 번째 서랍은 핫도그, 치킨너겟 같은 냉동식품, 두 번째 서랍은 육고기와 생선, 오징어, 새우 등의 어류, 세 번째 서랍은  빵, 아이스크림, 떡 같은 간식류와 떡국떡, 고춧가루 등 비교적 오래 보관하는 식재료이다.


냉장고에 써 놓지는 않았지만 넣는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아이들은 냉장고 문을 열면 첫 번째 서랍만 열어서 보면 되고,

남편은 요리를 할 때는 두 번째 서랍을 열어서 보면 된다.

그리고 간단하게 있는 반찬으로 밥을 먹을 때는 두 번째 세 번째 선반의 반찬과 밥, 국 등을 꺼내서 데워서 먹으면 된다.

작은 냉장고에도 규칙이 있고 자리가 정해져 있는 것이다.


우리 엄마의 큰 냉장고도 분명히 규칙이 정해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 규칙은 엄마만 아는 규칙이라 다른 가족들은 냉장고를 열면 음식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게 문제였다.



<우리 집 냉장고>






냉장고에 대한 고정관념


내가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겠다고 작은 냉장고를 선택한 것은 아니었다.

집이 30년 된 구축아파트로 구조가 안 좋아서 큰 냉장고를 집에 들이면 공간효율이 떨어졌고 굳이 큰 냉장고가 필요 없을 것 같아서 작은 냉장고를 선택했다. 보통의 가정집에서 사용하는 양문형 냉장고가 들어갈 자리가 주방에 있었다면 별다른 고민 없이 큰 냉장고를 샀을 것 같다.


한국사람들의 생활양식을 보면 냉장고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는 것 같다.

1인가구, 자취생들은 작은 냉장고를 사용하고 가족이 함께 사는 집에는 큰 양문형 냉장고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냉장고 광고를 보면 신혼부부 같은 예쁜 커플이 등장하고 아내가 양문형 냉장고를 여는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인지 혼수목록에는 양문형 냉장고가 꼭 들어있다. 신축아파트에는 대부분 냉장고 자리가 있고 그 냉장고 자리에는 양문형 냉장고가 들어갈 수 있도록 크게 만들어져 있다.


우리 가족이 한국에서 처음 살았던 집은 구축아파트였고 두 번째로 이사 간 집은 신축아파트였는데 주방에 냉장고 자리가 있었다. 대부분의 신축아파트처럼 양문형 냉장고가 들어가는 큰 사이즈의 냉장고자리가 가벽으로 만들어져 있어서 나처럼 작은 냉장고를 사용하는 사람에게는 냉장고자리가 거추장스러웠다. 예쁜 홈카페를 만들고 싶었는데 정해져 있는 냉장고 자리 때문에 홈카페 바를 들이기에는 공간이 좁아서 포기했다.

그런데 더 놀랐던 건 어떤 사람이 우리 집을 보더니 김치냉장고자리가 없는 게 아쉽다는 것이었다.


어머나!

여기에 냉장고 자리를 하나 더 만들어라고?


김장도 하지 않는데 김치냉장고가 왜 필요한가.

김치냉장고가 있으면 식재료를 보관하기 좋다는데 나는 보관할 식재료도 별로 없다.


친척이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서 신선한 채소와 쌀을 보내주는 것도 아니고 우리 어머니가 김장을 하는 것도 아니다.

나 역시 김치를 만들어서 먹지 않는다.


가족이 사는 집에는 양문형 냉장고, 김치냉장고, 대용량의 세탁기와 건조기가 있어야 한다는 통념이 있는 것 같고 결혼할 때 혼수로 많이 구매한다.



소비를 줄여주는 작은 냉장고


미니멀라이프를 추구하는 분들을 보면 큰 냉장고에 음식이 조금 들어있다.

냉장고 교체시기가 오면 작은 냉장고를 사 보는 걸 추천한다.


냉장고가 작아지면 주방에 공간이 많아진다.

그리고 그때그때 필요한 것만 구매하는 소비습관이 생겨서 큰 냉장고를 가지고 있을 때보다 식재료를 적게 구입하게 된다. 상해서 버리는 식재료도 없어지고 먹다 남은 음식물쓰레기도 거의 없다. 그래서 식비가 절약된다.


그리고 전기요금이 적게 나온다.

우리 집에는 작은 냉장고와 9kg의 세탁기가 있고 TV건조기, 식기세척기는 없다.

에어컨은 인버터형으로 전기요금이 적게 나오는 제품이다.

비 오는 날에는 건조기 대신 제습기를 사용해서 옷을 말리는데 잠자는 동안 거의 다 말라있다.

가전제품들이 작은 용량이고 가지 수가 적어서 그런지 전기요금은 같은 아파트의 다른 집들보다 절반정도만 나온다.


미니멀라이프를 하게 되면 소비가 줄어들게 되고 자연스레 생활비 지출이 줄어든다. 냉장고 안을 정리하는데 시간이 적게 들고 청소도 간단하다. 냉장고를 비울 때마다 한 번씩 쓱 닦아주면 끝나기에 늘 청결한 냉장고를 유지할 수 있다.

보다 더 적은 소유로 풍요로운 삶을 산다는 게 이런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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