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성치가 연 大코미디 시대

<도성> <도협> <도협 2: 상해탄도성>

by 일영
©네이버 영화, 구글플레이 영화

<도성(1990)>은 주성치 코미디의 시초이자 주성치를 스타덤에 올린 영화다. 1990년대에 개봉한 <도신> 시리즈(1989~)의 스핀오프 같은 작품으로, 시리즈는 <도신(1989)>-<도성>-<도협(1990)>-<도협 2: 상해탄도성(1991)>으로 이어지며 이후에도 꾸준히 작품이 개봉했다. 2010년대에는 그 명맥을 이어 <도성풍운> 시리즈(2013~2016)가 개봉하기도 했다.


사실 <도신>은 왕정 감독의 작품이며, <도성>은 유진위 감독이 <도신>의 패러디로 제작한 영화였다. 그러나 왕정 감독이 후속 작품인 <도협>에서 <도성> 속 캐릭터였던 아성을 그대로 데리고 오면서 <도성> 시리즈 역시 <도신> 시리즈의 일부가 되었다.


©왓챠

<도성>은 투시나 손에 쥔 것을 원하는 것으로 바꾸는 능력 등 초능력을 가진 주성치가 홍콩에 사는 삼촌인 오맹달을 만나 도박을 하는 이야기다. 주성치가 도박판에서 초능력으로 유명해지자, 여러 조직들은 주성치를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한다. 홍 사장은 주성치가 장민을 보고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알고 이를 이용해 계약을 하려고 하지만, 주성치는 다른 조직과 계약을 맺게 된다. 그 와중에 주성치는 장민에 대한 사랑을 이루지 못해 점점 초능력을 잃어가는 등 어려움을 겪지만, 후에 장민과 재회하여 초능력을 다시 되찾아 세계도박사 대회에서 승리한다.


<도성>의 주성치는 순박하다 못해 찌질하게 느껴지기까지 하는 남성이다. 초능력이라는 훌륭한 능력은 있지만 그 능력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지 몰랐던 주성치는 삼촌을 따라다니며 도박의 세계에 눈을 뜨게 된다. 그러던 중 신묘한 여성인 장민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상사병에 걸려 초능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할 위기를 맞기도 한다. 다른 것도 아닌 사랑의 힘을 얻지 못하면 초능력을 잃게 된다니 참으로 지독한 설정이다. 어쩌다 오군여의 겨드랑이 점을 장민이라고 생각하며 겨드랑이에서 장민을 찾는 모습은 말 그대로 정말 ‘과해서’, 순수함 그 자체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영화 <도성>

비디오 속 도신의 모습을 흉내내기 위해 자체 슬로모션을 거는 개그는 주성치의 코미디를 설명할 때 회자되는 명장면이다. 처음 <도성>을 보는 관객들에게 웅장한 음악과 주성치의 진지한 표정은 이 슬로모션을 영화 자체의 연출로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나 쇼트가 전환되고 주성치의 움직임이 다른 인물들의 움직임과 명확히 다르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앞서 보았던 주성치의 진지한 표정은 이전 쇼트와 달리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가 되어 버린다.


일상과 괴리된 성격을 띠는 주성치의 개그는 주성치식 코미디를 완성하는 요소 중 하나다. 이는 시대를 초월하여 관객들에게 언제 보아도 ‘세련되고 코믹한 개그’로 받아들여진다.


©영화 <도성>

이 영화에 등장하는 또 다른 특별한 인물은 장민이 연기한 이몽(기몽)이다. 홍 사장의 보디가드인 줄 알았지만 사실 다른 조직에서 심어 놓은 첩자였던 장민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매력을 백분 발휘한다. 화려한 액션이나 총격전을 이끌어가는 모습부터, 비록 첩자였지만 자신과 함께 오래 일한 동료에게 옛정을 발휘하는 마음까지. 주성치는 보디가드 장민을 만나 첫눈에 반해 버린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 장민과의 사랑이 진정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이 영화의 장민은 세계도박사 대회에서 이기고 나면 자연히 따라올 것 같은 부수적인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들은 쿨하게 "밥이나 한 번 먹자"라는 말을 남기는 것으로 관계를 마무리한다.


이후 후속 작품인 <도협>이나 <도협 2: 상해탄도성>에서도 동일한 얼굴을 가진 다른 캐릭터 등으로 장민이라는 배우를 꾸준히 활용하는데, 여전히 장민은 주성치가 얻을 수 없는 대상이나 이루어지지 않는 첫사랑으로 그려진다.


©왓챠

<도성>의 주성치가 속이 다 보여 귀여웠다면, <도협>의 주성치는 더욱 뻔뻔해졌다. 자신을 도신의 제자로 받아들여 달라며 다소 도발적인 영상을 보내는가 하면 도신의 제자인 도협(유덕화)의 집에 잠입하기도 한다. 그러다 우연히 위기에 빠진 유덕화와 가까워진다. 주성치는 도협을 사칭하려는 존재를 물리치고 자신이 도협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내야 하는 위기에 빠진 유덕화를 돕게 된다. 이 과정에서 주성치는 도협을 사형으로, 도신을 스승으로 모실 기회를 얻는다.


<도성>에 등장했던 장민은 이몽과 같은 얼굴을 가진 몽라라는 캐릭터로 등장한다. 장민은 빚 때문에 주성치를 속여 초능력을 잃게 만들지만, 이후에는 주성치에게 사랑의 힘을 불어넣어 초능력을 회복하게 만드는 역할을 맡는다. 몽라는 주성치의 진정한 첫사랑 이몽은 아니지만, 영화의 결말에서는 주성치와 사랑하는 사이가 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마지막 장면에서 유덕화와 주성치가 옆구리에 트로피처럼 여성을 한 명씩 끼고 등장한다. <도협>에서의 장민은 유덕화와 주성치가 도신과 도협의 명예를 되찾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부수적인 산물처럼 여겨지는 것이다.


©영화 <도협>

이러한 차이는 어쩌면 <도성>과 <도협>의 감독이 다르다는 사실에서 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왕정 감독의 여러 작품에서 그가 여성 캐릭터를 다루는 모습을 보면, 여성 캐릭터는 주로 남성이 무수한 고난 끝에 성취를 얻으면 함께 따라오는 존재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았다. 이 과정에서 성공한 남성의 목소리는 재현되지만 남성 옆의 여성의 목소리는 재현되지 않으며 남성의 옆에 아무 말 없이 예쁘게 서 있는 것으로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다. 현대 관객의 입장에서, <도성>과 <도협>의 차이는 이러한 디테일에서 드러난다.


왕정 감독은 <도협> 외에도 여러 영화에서 주성치와 호흡을 맞추었으며, <정고전가(1991)>, <도학위룡> 시리즈(1991~1993), <녹정기> 시리즈(1992), <구품지마관(1994)> 등 주성치의 여러 대표작을 함께 만들기도 했다. 왕정 감독의 영화에 대한 개인적 호불호는 잠시 접어두고, 그가 주성치 코미디 영화 세계의 일부를 지탱하고 있는 감독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왓챠

<도협 2: 상해탄도성>은 말만 도협이지 도협(유덕화)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주성치가 도신의 두 번째 제자가 되어 전수받았다는 발마사지를 숨 넘어가게 설명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도협 2: 상해탄도성>은 주성치가 우연히 시간 여행을 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1930년대 상해에 떨어져 버린 상황에서 주성치는 공리를 만나 첫눈에 반해 그를 쫓아다닌다.


영화의 시대상이 1930년대인 만큼, 당시 중국과 적대관계였던 일본과의 갈등이 영화에서도 나타난다. 주성치 역시 이 문제에 휘말리게 되며,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초능력을 발휘해 도박을 하는 모습은 아주 잠깐 그려진다. 도박 영화보다는 주성치의 색다른 모험기에 더 가까운 작품이다.




액션, 모험, 복수, 멜로 등 여러 장르를 융합한 <도성>과 <도협>, 도박과 시대극, 코미디가 섞인 실험적인 작품 <도협 2: 상해탄도성>은 주성치의 코미디 세계관에서 큰 줄기와 같은 작품들이다. 도박의 ‘도’자도 모르던 순진한 청년이 도박판에서 자신의 초능력을 발휘하며 겪는 모험을 다루는 가운데, 초능력을 활용해 위기 상황을 모면하거나 적수를 만났을 때 재치 있게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을 보인다.


이 영화들은 단순히 <도신> 시리즈의 일부가 아니라, 주성치라는 독창적인 장르와 세계관을 만드는 데 일조했다. 어딘가 조금씩 허술하고 모자라 보이지만 언제나 기발한 재치로 악당을 물리치고 웃음을 주는 인간적 매력 속에서 주성치라는 배우가 가진 연기적 재능도 함께 엿볼 수 있을 것이다.

keyword
이전 01화주성치 신드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