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코미디 영화의 제왕으로 불려 온 주성치는 홍콩 영화를 보았거나 좋아했던 사람이라면 당연히 알 수밖에 없는 이름이다. 주성치는 엑스트라나 단역 배우로 연기 생활을 시작하였으며 <430천사기>라는 어린이 교양 프로그램의 사회를 맡아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1988년, 영화 <벽력선봉>을 통해 본격적으로 배우로 주목받기 시작한다.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주성치는 홍콩을 대표하는 배우로 성장했으며 현재는 감독이자 제작자로서 활발히 활동하는 중이다.
주성치의 대표작으로 많이 언급되는 <쿵푸 허슬(2004)>은 개봉한 지 20년이 훌쩍 지났지만 여전한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2023년 12월 13일 OTT 플랫폼 넷플릭스가 발표한 인게이지먼트(시청 현황)에 따르면 <쿵푸 허슬>의 누적 시청 시간은 5,900,000시간에 달한다. 비영어권 영화인 데다 전 세계 스트리밍을 지원하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2023년 1월부터 6월 사이, 6개월 동안 약 600만 시간 가까이 시청된 것이다. 또한 2024년 12월 기준 IMDb 7.7로 높은 평점을 유지하고 있다.
주성치 영화는 매번 순박하다 못해 찌질하기까지 한 주인공이 성장하는 스토리로 위안을 주기도 했으며, 홍콩이 혼란스럽던 시기에도 홍콩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었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는 사실은 틀림없다. 하지만 이러한 요인은 홍콩 내국인들 사이에 더 크게 작용하는 것이므로 이러한 요인만으로 세계에서의, 나아가 한국에서의 주성치 인기를 설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주성치가 홍콩을 넘어 세계에서, 특히 한국에서 여전히 인기가 많을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국에서의 홍콩 영화의 인기가 여전하다는 것이 큰 요인일 수 있다. 누구에게나 홍콩 영화를 사랑하는 시기가 있다는 말처럼 홍콩 영화는 2~30대 청년을 저격하기에 충분한 매력을 가졌다. 영국령 홍콩의 중국 반환을 앞두고 불안정하던 심리가 홍콩 영화에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점, 끊임없이 방황하면서도 자신이 지켜내고자 하는 의리나 사랑에 목숨을 거는 주인공들, 홍콩 영화라는 이미지 자체가 만족시키는 예술병 같은 것은 국적을 초월해 한국 청년들의 심리를 자극하기 충분하기 때문이다.
이는 왕가위 감독의 영화가 홍콩 영화의 대부분인 것처럼 부풀려져서 한국에 소개된 탓도 있을 것이다. 최근 들어 한국에서는 ‘홍콩 영화=왕가위’라는 공식으로 인식될 만큼 왕가위의 영화가 과대표되어진 경향이 있다. 아마 왕가위 영화로 홍콩 영화를 접하고 다른 홍콩 영화를 찾아본 관객이라면 홍콩 영화는 무궁무진한 무협과 코미디의 세계에 더 가깝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홍콩 영화를 모르던 세대 또한 홍콩 영화를 접하고 주성치의 존재를 알게 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홍콩 영화의 꾸준한 인기가 주성치에 대한 관심에도 영향을 미쳤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주성치의 후기 작품인 <소림축구(2001)>나 <쿵푸 허슬>은 케이블 TV에 방영되는 경우가 많다. 주성치를 모르던 이들도 명절 특선 영화로 한 번쯤 주성치의 이름과 얼굴을 접할 수 있게 된다. 또 비디오로 영화를 찾아봐야 하던 시절에서 이제는 OTT 플랫폼에서 클릭 몇 번으로도 주성치 월드로 떠날 수 있는 시대가 된 것도 주성치의 인기 형성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만으로 주성치 영화와 ‘사랑에 빠지는’ 사람이 생기는 이유를 설명하기는 충분하지 않다. 오히려 주성치 영화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으며 이 특징이 왜 지금의 한국 관객에도 통하는 특징인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주성치의 코미디 영화의 특징 중 하나는 모레이타우 개그에 있다. 모레이타우란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며,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나 행동을 의미하는 것으로 한국 정서에 맞는 표현으로는 뜬금포 개그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모레이타우 개그는 맥락이 부족하거나, 과도하거나, 뜬금없어서 어이없게 웃긴 상황을 연출하여 웃음을 유발한다. 이러한 개그는 일상성보다는 비일상성에 더 가깝다.
담력 시험으로 폭탄을 사용하다 폭탄이 실제로 터지는 바람에 응급실에 실려가는 장면을 3번이나 반복하여 보여 준다거나(<홍콩 레옹(1997)>), 원영의가 주성치를 암살하려 총을 쐈다가 총알이 반대로 발사되자(일명 ‘청개구리 총’) 당혹스러워하는 장면이나 피 흘리는 원영의에게 주성치가 조그만 반창고를 건네는 장면(<007 북경특급(1994)>)처럼 말이다.
관객들로 하여금 터무니없어서 웃어 버리게 만드는 모레이타우 개그는 주성치 영화를 희비극(tragic comedy)으로 만든다. 희비극이란 희극도 아니고 비극도 아닌 것을 의미한다. 마냥 웃기다가도 어느 순간 웃기지만도 않고, 웃으면서도 씁쓸함이 남는 경우다.
귀여운 외계 생명체의 존재에 기뻐하다 아버지의 죽음을 겪고 절망한 뒤, 아버지가 기적적으로 살아나는 전개(<장강 7호(2008)>), 각종 패러디를 보여 주며 유쾌하게 진행하다 어느 순간 이룰 수 없는 사랑을 속세에 두고 오는 고통을 체험하게 만드는 전개(<서유쌍기 - 월광보합/선리기연(1994)>)처럼, 희극 같기도 비극 같기도 한 전개에 관객들은 마냥 웃을 수도, 마냥 슬퍼할 수도 없다.
당장 내일이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현실에서 주성치의 모레이타우 개그는 더욱 빛을 발한다. 이는 대중문화의 현실도피(escapism)적인 특성과도 연결 지어 이해할 수 있다. 대중문화를 통한 현실도피란 대중문화에 빠져드는 과정에서 현실을 잠시나마 잊고 허구 속 세계에 빠져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실도피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존재하지만, 현실도피는 오히려 허구 세계에서 일상의 부조리함을 명확히 깨닫게 만들고 개인에게 위안을 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성치 영화 속에 녹아 있는 모레이타우 개그는 관객으로 하여금 현실이 아닌 허구 속 세계로 쉽게 진입하게 만든다. 관객들은 일상과는 동떨어진 엽기적이거나 황당무계한 상황에 빠져든다.
주성치의 모레이타우 개그가 그 당시 홍콩인들이나 한국인에게 준 위안을 객관적인 지표로 증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홍콩의 경우 현실이 주는 불안감이 극에 달했을 시기가 1990년대였고, 우리나라의 경우 주성치 영화가 한창 인기를 끌던 시기와 1997년 IMF라는 큰 위기가 일부 겹치기 때문에, 주성치의 모레이타우 개그가 어느 정도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한 위안은 단순히 1990년대의 홍콩인이나 한국인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주성치 영화 속 모레이타우 개그는 지금의 한국 관객에게도 치열한 일상과 비일상을 분리하게 만들어 주는 기능을 한다. 주성치가 개척하고 일군 코미디가 현대에서도 그 빛이 바래지 않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