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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low김정숙 Oct 01. 2024

위선자가 아닌 삶을 추구하며

학교폭력의 경험

 상담사로 일을 하면서 학교폭력 관련하여 청소년을 만날 때가 많이 있다.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고 했던가? 아이들은 할 말이 있다. 자신의 탓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대부분은 검지손가락을 펴서 상대를 가리킨다. 그리고 억울하다고 소리를 높인다. 보호자들은 자녀가 겪었을 일에 대해 상상을 한다. 그리고 눈물을 글썽인다. 그리고 감정을 실어서 말한다. 억울함을 호소한다.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한다. 부모니까 아이의 말을 믿는 것이 당연하다고 한다. 상황이 일어날 당시에 함께 하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을 탓하기도 한다. 그리고 어쩌면 그럴 수 있느냐고 상대의 아이를 비난하다. 모두 상대방 탓이라고 말한다. 

 상담자는 아이들의 말을 경청한다. 중립적인 입장이 되도록 정 중앙에 서서. 

앞에서 말하고 있는 아이들의 입장을 잘 들으려 집중한다.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음~, 그랬구나~, 마음이 많이 아프겠다. 화가 많이 나겠는데, 나라도 그랬을 거야, ’등등 응대를 해준다. 그리고 마음이 풀려서 객관화되는 상황도 있고 서로 용서하고 이해하며 해결되는 상황도 있다. 

 언젠가 아이들의 상황을 듣고 있다가 올라오는 것이 있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그리고 그때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벙어리 냉가슴 앓이를 했던 일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나도 학교폭력 피해자였다구!’

아이들은 무슨 일인 있었는지 쫑긋 귀를 세운다. 그리고 나는 그때를 회상하며 실감 나게 말을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 다녀온 후였다. 책상 위에 놓인 책을 펴는 순간 작은 쪽지가 보였다. 

‘뭐지?’궁금해서 펴보았다. 

쪽지글을 본 순간 얼른 책 속에 쪽지를 가두어 버렸다. 반사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무도 나의 놀람을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얼굴은 붉어졌다. 

러브레터는 아니었다. 

너무 당황스러운 내용이었다. 

쪽지에는 한 줄로 ‘너는 위선자야!’라고 쓰여 있었다. 

‘누구지?’ 

누가 나에게 이런 쪽지를 보낸 것일까? 

그 후로는 수업에 집중하기가 힘들었다. 눈물이 났다.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행동을 했는데 이런 내용의 글을 받아야 할까? 누굴까???’

너무 궁금했고 내가 그런 나쁜 사람이었다니 나의 모든 삶을 부정하게 되었고 부끄러움이 온몸을 꼼짝 못 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도 그 쪽지를 쓴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른다. 미스터리로 미해결과제로 남아있다.

자존감은 흔들렸으며 슬프고 괴로웠다. 그리고 자책했다. 

어떤 행동을 할 때마다 그 쪽지 내용이 제동을 걸고 있었다. 나의 거울이 되었다.      

심증은 가나 물증이 없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한 친구를 의심했다. 왜냐면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다.



  1학년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쪽지 사건 이후 나를 외면했다. 친구와는 집으로 가는 방향이 같아서 1년 이상을 등하굣길을 같이 했다. 시골에서 와서 혼자 자취를 하고 있어서 외롭지 않도록 늘 함께 했다. 엄마께 부탁해서 반찬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밥도 먹고 도서관에도 같이 다니면서 공부도 같이 하는 친구였다. 서로의 고민을 나누었고 가족사까지 다 알고 지내는 사이라서 나는 절친사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이유 없이 나를 외면했다. 

  나는 이유 없이 말도 없이 나에게서 멀어져 가고 있는 친구의 마음을 몰라서 억울함과 속상함과 답답함으로 한 달가량을 방황했으며 뭔지 모를 것에 대해 자책하며 친구를 잃어버린 아픔을 견뎌내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친구는 이사를 갔다. 얽힌 문제를 풀 기회마저 잃어버린 상황이 된 것이었다. 이사를 한 곳까지 찾아갔으나 만나주지 않았다. 그때는 너무 답답해서 죽고 싶을 정도였다. 울면서 걷다가 차도로 뛰어들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오해를 풀지 못한 채 우린 절교 상태로 지냈다.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치면 서로 외면하는 어색한 사이가 되었고 그때마다 고통스러웠지만 어쩔 수 없이 견뎌야만 했다. 시간이 약이 되어 점점 무뎌지고 있었다. 이유 없는 따돌림에 해당되는 학교폭력이었다. 그때는 모두 견디는 것이 방책이었다.          

 


3학년이 되는 어느 날 그 친구가 찾아왔다. 학교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고 자기 집에 놀러 오라고 했다. 

‘뭐지????’ 

나는 힘들었던 상황을 까맣게 잊어버렸을까??  친구가 말을 걸어준 것만으로 감에 남아서 괴롭히던 쳇증이 내려가 버렸다. 약속한 날 친구 집으로 갔다. 그리고 친구와 나는 서로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었다. 웃고 말았다. 그것이 관계회복이었다. 

 끊어진 친구 관계가 이어진 것이었다. 실제로는 아니었지만. 

 고3이라는 큰 과업이 이해하지 못한 일로 힘들었던 시간까지 무의식 근처까지 묻어주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픈 상처를 드러내지 못하고 후시딘과 마데카솔로 막아버렸다. 

크게 웃는 그 친구를 나는 용서하고 말았다.           



 친구는 서울로 진학을 했고 나는 고향의 제자리에 있었다. 친구는 졸업 후 다시 연락이 없었다. 스무 살 여름방학 때 한 번 찾아왔다. 나중에 한두 번 전화 통화를 한 후 소식이 끊겼다. 지금까지 소식을 모르는 사이가 되었다. 아주 가끔 친구가 생각난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순간처럼.           



 학폭 가해 관련 또는 피해 관련 친구들을 만나면 나도 학폭피해를 당했었구나라고 생각을 한다. 그리고 청소년들에게 피해자의 입장이 얼마나 힘든지를 100% 공감 가게 이야기를 한다. 

피해를 당하고 특별한 증거가 없다면 피해자라고 소리를 내지도 못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는 친구가 있다는 것을 알아달라고 말한다. 가해 청소년들은 가해 행동이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한다. 안타깝게도 마음을 내주는 쪽은 약한 자가 된다.           


 때로는 그 쪽지가 내가 어떤 삶을 살지를 알려준 메신저였다고 생각한다. 위선자의 누명을 쓰지 않으려 착하게 살려고 노력했다. ‘최선을 다하자’는 나의 좌우명이다. 위선자의 반대가 되는 삶을 살아내려 애썼다. 나에게 큰 교훈이 된 쪽지글을 묵묵히 바라본다. 

‘너는 위선자야!’라는 쪽지를 쓴 범인은 그 누구도 아닌 바로 ‘나’가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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