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다니면서 나는 대학생이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왜냐면 우리 집은 너무 가난했다. 우리 아버지는 살아있지만 죽은 사람이 기사회생한 힘없는 사람, 엄마는 10명의 가족을 위해 어떤 일이든지 해야 하는 사람, 할머니는 천식으로 기침을 달고 계신 분, 오빠는 청각장애인, 언니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는 사람, 동생들은 줄줄이 4명... 이 상황에서 대학생을 꿈꾸는 것은 욕먹어도 싼 일이었다. 그런데 나는 욕심을 부렸다. 선생님이 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재수라는 것을 했다. 시립도서관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었다. 등록금을 내가 구할 테니 대학입학을 허락해 주시라고 울면서 애원했다. 아버지는 나의 행동에 할 말을 잃었고 엄마는 한숨으로 대신했고 할머니는 나를 응원했다. 나는 선생님이 될 수 있다는 교육학과에 합격을 했다.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공장에서 일을 했다. 위장취업으로 한 달 일하고 쫓겨났지만. 섬에 사시는 외삼촌을 찾아갔다. 사정을 말씀드리고 도움을 요청했다. 20만 원을 주셨다.
아버지는 등을 돌리며 너는 왜 불가능한 것을 하려고 하느냐? 아버지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일도 있어요. 담대하게 말했다. 아버지와 나는 처음으로 가난을 두고 소리 없이 울었다. 나는 공장에서 받은 돈과 외삼촌이 주신 돈을 합해보았다. 등록금으로도 부족했다. 대학에 가려면 등록금만 있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다. 부수적으로 돈들이 필요했다. 나는 현실에 절망했다. 집을 나와서 울며 걷고 있었다.
아르바이트를 했던 서점에 들렀다. 울음이 터졌다. 사장님은 대학 학자금 융자제도가 있다는 정보를 주셨다. 아버지께 전화로 말씀드렸더니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하셨다. 대학진학 허락을 해 주신 것이었다. 나는 너무나 기뻤다. 희망에 차 올랐다. 대학교 입학처에 가서 추천서를 달라고 했다. 그런데.... 추천서가 다 떨어졌다고 했다. 그 순간 다시 내가 꿈꾸었던 일들이 사라지고 있었다. 힘이 빠졌다. 그리고 그 사무실에서 나는 아버지께 전화를 했다. 전화를 받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듣자 눈물이 났다. 아버지, 융자 추천서가 더 이상 없다고 해요. 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집으로 오리고 하셨다. 이제는 모든 희망을 내려놓아야 되는 상황이었다.
눈물 가득 눈에 담고 터덜터덜 걸어서 학교의 정문을 통과하고 있었다. 그런데 저 멀리 아버지가 보였다. 대학교에서 연락이 왔단다. 어떤 학생이 추천서를 반납했다고 가져가라고 했단다. 아버지는 나를 만나기 위해 대학교 쪽으로 택시를 타고 오셨단다. 대학 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라고 말씀하시던 아버지였는데, 대학입학을 반대하셨던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마음이 아프셨을까? 정작 딸이 마지막으로 잡은 융자추천서가 없다고 했을 때 얼마나 가슴이 내려앉으셨을까? 다시 돌아온 융자추천서가 있다고 하니 실망하고 있을 나를 찾아 달려오고 계셨던 것이다. 빨리 학교에 다시 가라. 융자추천서가 사라지기 전에 빨리가라. 나는 오르막길을 달리며 뒤따라오시는 아버지를 보았다. 눈물이 났다. 그분이 내 아버지이시다.
대학진학을 반대하면서도 내가 끝까지 고집부리길 바라셨다는 것을 알았다. 반대하는 아버지 마음이 많이 아팠다는 것을 알았다. 숨이 차도록 달려오시는 아버지가 그립다. 아버지의 응원이 지금도 그립다. 감사함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