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가 한아름씩 묶어 피어나는 들판을 보았다. 메밀밭처럼 한들한들 피어서, 그 가녀린 강인함을 볼 수 없도록 무더기로 피어나고 있었다.
연분홍 사이로 더없이 진한 자주색 한 두 그루는 사연을 가지고 웃고 있었고 손을 흔드는 하얀색 코스모스 속에서는 재잘거리는 친구들의 목소리가 자꾸만 메아리쳤다.
출장 가는 날은 두 손 들고 나와서 나눔의 기쁨을 만끽하게 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그 코스모스들이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다. 어딜 가도∼ 어느새.... 소리 없이 그들이 숨어버렸다.
나는 기약할 수 없는 안타까움에 코끝이 찡해왔다. 어디서든 기다리겠노라고 말없이 속삭이고 돌아서는데 온몸으로 느껴지는 서늘한 가을날..
어느 주말 오후 조급하게 재촉하는 무엇인가에 밀려 주섬주섬 집을 나섰다.
꽃집 앞을 지나는데 두 팔로 안아주고 싶은 풍성한 국화꽃들이 인사를 했다.
두 눈을 감고 얼굴을 가까이하고서 길게 숨을 쉬었다. 기분 좋은 현기증으로 몸이 말했다. 꽃송이가 갖가지인 국화들이 나를 끌고 안으로 들어갔다. 근조화환을 장식하는 꽃꽂이의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았다. 불과 10분 정도 지나자 플로리스트의 손을 통해 멋진 작품이 탄생했다.
근조화는 한 가지 뜻, 슬픔으로 피는 줄 알았는데 오늘에야 가슴으로 깨달은 이름! 그것은 ‘위로화’였다.
보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이겨내게 하는 따뜻한 위로가 거기 서 있었다.
그곳에서 반가운 사람을 만났다. 가끔씩 그리워지는 사이였다.
이 가을을 풍성하게 만들어주는 선물 같은 만남!. 기분은 어느새 부∼웅 떠올랐다.
지인은 꽃집 주인과 지인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소개했다.
그분의 얼굴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소개를 받고 발그레 붉어지는 귓불을 보니.
주인은 소박하면서 투명한 잔에 원두커피 한잔을 따랐다. 꽃향기가 원두향을 꼭 안았다.
네 분의 아주머니들이 얘기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세상 밖으로 나온 나는 호기심 많은 눈으로 반짝거려 보았다.
어정쩡하게 몇분간을 꽃을 구경했다. 순간 가슴으로 전해지는 울적함이 다가왔다.
키 큰 위로 화환 속에 있는 국화는 내 마음을 아는 듯 짠하게 웃었다.
급한 일라도 있는 것처럼 인사를 하고 나오는 데 따라 나오던 여주인이 “잠깐만요!”하고 다급히 들어갔다.
다시 나오는 여주인의 손에서 신문지 무늬로 된 갈색 포장지와 너무나 잘 어울리는 카랑코에가 방긋 웃었다. '선물이에요' 안개꽃처럼 작은 소리로 말씀하신 여주인의 미소가 가슴 뛰게 했다.
아아! 문득!
들국화를 한 아름 안고 나타나셨던 시아버님의 미소가 지나갔다.
어느 가을 따사로운 오후에 가슴 가득 국화꽃을 안고 오셨다. 마루 바닥에서 오랫동안 뒹굴던 퇴색된 신문지에 노란 국화꽃을 싸서.
들판을 오가며 가장 예쁘고 탐스러운 꽃을 고르시며 아들네를 향한 당신의 마음 담으려 무척이나 애쓰셨을 것이다. 상상만 해도 가슴이 뜨거워졌다.
시아버지는 들국화를 신문지로 돌돌 싸서 가지고 오셨다. 시골에서 우리가 사는 곳까지 버스를 두 번 갈아타셨다. 가슴에 꼭 안고 오셨다. 얼마나 부담되셨을까?
큰 위기를 만나서 부모의 가슴에 근심을 준, 별로 맘에 들지 않는 아들 부부에게 한 다발의 국화꽃으로 용서의 손을 내미시는 아버지의 사랑은 찐한 국화향이 대변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