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산에 책의 바람이 불다, 군산북페어

판매자의 눈으로, 구매자의 발걸음으로

by 초록노동자


군산에 온 지 10년이 되었어요. 처음 봤던 회색빛의 흐릿한 도시는 도수에 딱 맞는 안경을 낀 듯 선명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선명해진 군산의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군산






매년 연차를 쓰고 서울국제도서전에 가는 책덕후인 저에게, 군산에서 처음으로 '군산북페어'가 열린다는 소식은 설렘과 기대감을 가져다주었어요. 어떤 북페어가 될까, 서울국제도서전과 어떤 점이 다를까, 지방의 소도시인 군산에서 열리는 북페어에 사람들이 많이 올까, 더군다나 이렇게 책을 안 읽고 안 사는 시대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군산 독립서점인 조용한 흥분색에서 독립출판물 만들기 수업을 듣고 있었어요. 책 한 권 분량의 원고를 쓰고 다듬고, 포토샵으로 사진 보정하고 인디자인으로 편집하고, 책을 주문하는 전 과정을 배우는 수업이었어요. 수업을 모두 마치면 내가 만든, 내 이름으로 된 책 한 권이 뚝딱 나오는 것이었지요.


그 과정에서 조용한 흥분색 대표님의 제안이 있었어요. 군산북페어의 조용한 흥분색 부스에서 우리가 만든 독립출판물을 직접 팔아보면 어떻겠냐고요. 내 책을 만드는 것도 신기한데, 독자들을 만나고 책을 팔 수 있는 기회라니요. 이런 엄청나고 재미있고 흥분되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죠. 책 출판을 준비하면서 군산북페어 준비도 함께 했습니다.


제1회 군산북페어는 리모델링을 완료한 군산회관에서 열렸는데요. 이 건물은 건축가 김중업의 유작이라고 해요. 둥근기둥과 반듯한 선이 묘하게 어우러진 공간. 그곳에 각각의 특색이 가득한 책들과 전국 각지에서 온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문화행사가 많지 않은 지방의 소도시인 군산이 다른 빛깔로 물들었어요. 가슴이 벅찬 경험이었습니다.



KakaoTalk_20250913_184350174_02.jpg



2024년 제1회 군산북페어, 판매자의 눈으로


첫 번째 군산북페어에서는 판매자로 참여했어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하여 만든 작은 책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낯선 얼굴들을 맞이했습니다. 저의 책을 들어 책장을 넘기다가 열심히 설명을 곁들이는 저에게 고개를 들어 웃어주던 사람들의 표정이 아직도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사람들에게 책을 건네면서 마음을 나누고 따뜻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경험을 평생 잊을 수 없을 거예요.



KakaoTalk_20250913_184350174_21.jpg 제1회 군산북페어, 군산 독립서점인 조용한 흥분색 부스
KakaoTalk_20250913_184350174.jpg 제1회 군산북페어 끝날 무렵에^^



2025년 제2회 군산북페어, 책을 사는 사람의 발걸음으로


올해는 손님으로서 군산북페어에 갔어요. 이틀 동안 약 만 명의 사람들이 찾아주었다고 하는데요. 수많은 사람들의 파도에 몸을 맡기고, 책을 파는 사람이 아니라 사는 사람으로서, 매대와 매대 사이를 천천히 걸으며 오밀조밀하게 놓인 다양한 분야의 책들을 구경했어요. 시집, 사진집, 짧은 에세이, 그림책, 오래된 중고책… 책들이 저마다의 목소리로 저에게 말을 걸었어요. 책을 사는 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누군가의 시간을 오랫동안 내 곁에 두는 일이고, 그 사람의 삶을 살아보는 일입니다.



KakaoTalk_20250913_183844871_13.jpg



올해는 5:1의 경쟁률을 뚫고 참여자들을 선정했다고 하는데요. 치열한 경쟁률을 뚫고 작년에 만났던 1984Books와 BOOKSELLER를 다시 만나서 너무 반갑더라고요. 물론, 작년에도 책을 구매하고 올해에도 구매했습니다. 내년에 또 만났으면 좋겠다는 인사도 전했고요. 올해 군산북페어에서 새로 만난 가지 출판사와 프란츠 출판사, 열매 하나 출판사의 책들도 인상적이었어요.



KakaoTalk_20250913_183844871_08.jpg 2025년 제2회 군산북페어에서 산 책



판매자였을 때는 독자와의 대화를, 구매자였을 때는 판매자의 목소리를 들었어요. 두 번의 군산북페어에서 했던 서로 다른 경험이 겹쳐지자, 군산북페어가 다르게 보였습니다. 단순하게 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오가는 커다란 노트 같았어요. 그 안에서 책은 언제나 ‘사람’을 향해 있습니다.




군산에 여행올 이유, 책


다른 지역에 사는 사람들에게 군산으로 여행 올 한 가지 이유가 더 생겨서 기쁩니다. 가볍게 머무르다 떠나는 도시가 아니라, 책으로 연결되는 도시여서 마음에 듭니다. 군산에는 13개 정도의 독립서점이 있다고 하는데요(지금은 달라졌을 수도 있지만, 작년까지는요). 군산 독립서점의 대표님들이 모여 군산북페어를 만들었다고 해요. 군산북페어를 우리 도시만의 행사가 아닌 전 국민이 참여하는 축제로 기획하고 만들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입니다. 군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군산을 다시 찾고 싶은 도시로 만들어가고 있어요.


역사적 아픔을 간직한 도시, 바다와 갯벌과 섬이 아름다운 도시, 그리고 이제는 책으로 연결되는 도시인 군산.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해 준 군산북페어를 오랫동안 기억할 것 같아요. 2026년도에는 어떤 콘셉트로, 어떤 종류의 책들을 만나게 될까요. 다시 일 년 후를 기다립니다.



KakaoTalk_20250913_183844871_11.jpg


keyword
토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