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석영 작가의 신작소설 <할매>에 나온 장소를 찾아서
군산에 온 지 10년이 되었어요. 처음 봤던 회색빛의 흐릿했던 도시는 도수에 딱 맞는 안경을 낀 듯 선명한 도시가 되었습니다. 선명해진 군산의 얘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도시, 군산.
2주 전 황석영 작가님의 신간 소설인 <할매>를 읽고, 지난주에는 하제마을을 다녀왔고, 오늘은 은적사에 다녀왔다. 이 소설을 계기로 군산의 숨겨진 아름다운 장소들을 찾아 헤매고 있는 중이다. 소설을 읽은 후의 감동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방문하니, 가는 장소마다 뜻깊다. 하제마을에 다녀온 이야기는 다음 주 월요일 연재인 <숲으로 출근합니다>에서 할 계획이다.
딱히 믿는 종교는 없으나 어릴 적 엄마를 따라 절에 다녔던 좋은 기억이 남아있다. 식물 조사하러 산에 자주 갔는데, 어느 산이든 초입에 늘 절이 있다. 조사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에 시간이 되면 들러서 부처님을 향해 절을 하곤 했다. 머리가 복잡하고 힘들 때도 절에 간다. 108배를 하고 나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10년 전 군산에 내려온 후 종종 다닐만한 절을 찾았었다. 몇 군데 가보기도 했으나, 마땅치 않았다. 조금 먼 거리인 김제의 만경강과 바다가 만나는 곳에 있는 망해사가 마음에 들었으나, 거리가 멀어 쉽게 갈 수 없었다. 그랬는데 군산 시내에서 가까운 곳에 절이 있다니, 이제야 알게 되었다. <할매>에서 몽각스님이 역병, 가뭄, 냉해로 열악해진 상황을 피해 찾아간 곳이 군산 설림산의 은적사였다.
"몽각이 충청도 내륙에서 금강 기슭을 따라 바다를 향하여 방향을 정한 것은 이런 시절일수록 산이나 들이 아니라 뭔가 먹을 것은 바닷가에 나가면 해결할 수 있으리라 보았기 때문이다." (p.71)
처음 듣는 절 이름이었다. 카카오맵에서 검색해 봤다. 세상에, 군산에 실제로 있는 절이었다.
"그는 군산포 진의 아전에게 부근에 찾아갈 만한 절집이 있는가를 물었더니, 서남쪽 십여 리에 설림산이 있는데 거기 은적사라는 절이 있다고 가르쳐주었다. 몽각이 금강 하구 바닷가에 장벽처럼 돌아나간 산자락을 따라서 오솔길을 한참 걸어가니 산을 등지고 바다를 내다보는 언덕 위에 절이 있었다." (p.71)
책에서는 은적사에서 바다를 내다본다고 하였으나, 지금은 매립한 후 주거지와 산업단지로 바뀌었다. 바다는 보이지 않았지만 소설 속 장면을 떠올리며 은각사 앞에 펼쳐진 넓은 바다를 상상했다. 차가운 바람을 피해 대웅전으로 들어가 두꺼운 방석을 깔고 석가모니불에 절을 20번 했다. 108배를 해야지 생각하고 시작했으나, 곧 힘들어져서 포기했다. 20번만 해도 몸이 따뜻해졌다. 영하의 날씨에 얼굴이 너무 시려 종종걸음으로 둘러보고 얼른 나왔다.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가봐야겠다.
은적사에도 보호수로 지정된 팽나무 두 그루가 있다. 이곳의 팽나무는 260살이다. 하제마을의 팽나무는 600살이었는데. 팽나무가 이렇게 오래 사는 나무였던가. 이 나무들은 그 모진세월을 다 견뎌내고 살아남았다. 이 겨울의 추위도 견뎌내고 내년 봄에 싹을 틔우겠지. 따뜻한 봄이 오면 다시 와야겠다. 느리게 이곳을 거닐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