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아주는 육아는 힘들다. 하루 종일 아이와 함께 있는 주 양육자에게는 더욱 그렇다. 오늘은 또 뭘 하며 아이와 놀아줘야 할지 고민하는 일이 매일 주어지는 숙제 같다. 조각 9개짜리 퍼즐을 수없이 맞춰다 뒤엎고, 10페이지짜리 그림책을 셀 수 없이 반복해서 읽어주다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날 정도의 하품이 나온다. 쌩쌩한 아이와 달리 나는 쉽게 피로해지고 눕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아이는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다. 웬만큼 놀아줬으니 어서 잠들길 바라는 마음으로 겨우 하루를 버텨낸다. 육아는 이런 날의 반복이다.
반복되는 날들의 지루함을 날려줄 방법은 나도 즐길 수 있는 활동을 일과 곳곳에 배치하는 것이다. 아이와 놀아주기만 하지 않고 나도 함께 노는 것이다. 내가 그저 자신과 놀아주는 건지, 아니면 진짜로 같이 노는 건지 아이는 잘 안다. 공만 던져주고 마는 게 아니라 나도 신나게 공을 차고 함께 뛰면서 놀아야 선이도 더 좋아한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에 나도 빠져들어야 시간이 잘 가고 육아가 쉬워진다. 선이도 하루 중 일부라도 같이 놀면, 이후에 혼자서도 잘 지내는 듯하다.
요즘은 육아를 핑계로 평소 가보고 싶었던 카페나 공원으로 놀러 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남들 일하는 평일 낮에 한가로이 여기저기 쏘다닐 수 있는 건 일부 육아인에게 주어진 특권이다. 물론 아이도 함께 갈 수 있을 만한 곳으로 다녀야 한다는 제약이 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의 지경은 넓어지니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행히 선이는 새로운 곳에 가는 걸 좋아한다. 동네에선 유모차에 타는 걸 싫어하는데, 처음 가보는 장소에선 다르다. 한 팔을 열린 창틀에 걸쳐놓고 오픈카를 모는 남자처럼, 다리 한 짝을 유모차 안전바에 올려둔 채 주변 풍경을 구경하며 콧노래를 흥얼거린다.
그럴때면 왜인지 나도 조금은 더 수다스러워지는 듯하다. 선이가 대꾸하든 말든 낯선 풍경에서 만나는 새로움에 대해 재잘재잘 떠드는 일이 즐겁다. 길을 걷다 재밌어 보이는 놀이터에서 그네와 미끄럼틀을 타고, 예쁜 카페에 들어가 나는 커피 한 잔, 선이는 우유 한 팩. 빵 하나를 나눠 먹고 함께 사진 찍으며 놀다 보면 하루가 금방 지나간다.
함께 논다는 것은 같은 위치에 선다는 말이다. 함께 노는 동안에 우리는 양육하는 보호자와 돌봄 받는 자녀가 아니라, 모두 동등한 '노는 사람'이 된다. 호칭과 위계가 사라지고 같은 자리에 서게 되면 더 깊은 하나 됨을 느낄 수 있다. 이 관계가 영원히 지속되지는 않겠지만, 어린 시절 우리가 쌓아온 동등한 관계가 훗날 선이에게 믿을 만한 구석이 되었으면 한다.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마음속 고민을 터놓게 만드는 비밀 열쇠 같은 추억으로 기억되었으면 한다. 때로는 엄격한 아빠의 위치에 서서 훈육하게 될지라도, 함께 노는 사이라는 기억은 우리의 관계가 아주 틀어지지 않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이자 철학자인 요한 하위징아는 인간을 "호모 루덴스(Homo Ludens)"라고 정의한다. '놀이하는 인간'이라는 뜻이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본질은 유희이며, 놀이를 통해 문화가 형성되고 창의적 사고가 발현된다고 한다. 아이든 어른이든 잘 놀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니까 영유아기 육아의 핵심은 특별한 교육이나 몸에 좋은 것들을 챙겨주는 게 아니라 아이와 같이 놀며 즐거운 시간을 쌓아가는 일이라 할 수 있겠다. 선이가 유희라는 인간의 본성을 잃지 않고, 그 안에서 자유롭게 상상하며 창의력을 펼쳐 나가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 오늘도 나는 선이와 뭐 하고 놀지 즐거운 고민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