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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1cm의 파장

by 벨찬

가끔 내가 뭐라고 이런 복을 누리나, 생각한다. 한참을 그런 감상에 빠지다 보면 크고 작은 불만과 불안이 사라지고 그저 감사한 마음만이 남는다. 아이가 태어나고 이런 생각이 드는 때가 많아졌다.


초음파로 처음 사람다운 형태를 확인했을 때 그는 겨우 4.71cm였다. 4.71cm. 키위보다도 작은 그 안에 팔과 다리와 눈, 코, 입이 모두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랬던 아이가 지금은 한 손에 키위를 움켜쥘 만큼 자라 있다. 요즘 선이는 자연관찰책을 꺼내 와 내게 읽어달라고 한다. 우리는 함께 바닥에 엎드려 얼굴을 맞대고 책 속으로 빠져든다. 무당벌레는 낙엽 밑에서 겨울잠을 자고 바구미는 도토리 속에 알을 낳는다고 한다. 읽어주는 나도, 자세를 바꿔가며 집중하는 선이도 모두 자연의 신비에 감탄한다.


그러나 그 어떤 자연물보다 인간 아이의 탄생과 성장만큼 신비로운 건 없는 듯하다. 그건 한 아이의 탄생과 성장은 그 개인의 생존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세계에 거대한 파장을 일으키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의 나는 선이와 가장 가까운 타인으로, 그로부터 밀려오는 파장은 나의 삶 전반을 흔들 만큼 강한 울림을 일으킨다. 그 파장은 때론 나를 흔들고, 때론 나를 다지며 무엇이 진실인지 헷갈리게 하는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내게 정말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 알게 한다.


그래서 나는 일생일대의 사건과도 같은, 아이와 함께 보내는 날들을 글로 남기기로 했다. 휘몰아치듯 지나간 고군분투의 시간들, 우당탕탕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모를 웃픈 이야기들, 아이 때문에 울고 아이 덕분에 웃으며 아쉬워하고 반성하다 결국엔 감사와 사랑으로 귀결되는 마음들. 이 모든 것을 간직하고 싶었다.


아이가 잠든 새벽. 우리의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동안 나는 지나간 시간을 다시 살았다. 울고불고하던 아이를 글에 붙잡아 한동안 들여다보면, 부족한 나의 인내심으로 그때는 헤아리지 못했던 그의 마음이 들려오는 듯했다. 아이가 이끄는 동심의 세계에서 보낸 한낮의 달콤한 꿈 같던 시간은 글로 살아나 나를 다시 그 세계 속으로 데려갔다. 때론 아이를 보느라 미처 살피지 못했던 나의 감정도 글에 묻어나 뒤늦은 위로를 건넬 수 있었다.


그렇게 40여 편의 글을 모으고 이제 다시 읽어보니 역시 나는 육아인으로 사는 게 꽤 좋다고 느껴진다. 물론 고된 날도 많았지만, 어쩌면 지금이 인생에서 가장 밀도 높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 순도 100%의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을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경험이다. 30대 중반, 아직 젊다 할 수 있는 나이에 나의 젊음을 아이에게 쓸 수 있어 다행이다. 꿈을 좇아 열정을 쏟듯, 나는 아이에게 시간과 힘과 마음을 쏟는다. 이건 단순한 희생이 아니다. 결국엔 이 시간이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순간임을 나는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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