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첫날부터 화를 많이 냈다. 내가 가장 많이 화를 내는 대상이 내 아이라는 걸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이니까 이성적 판단과 감정 조절이 안 되고 떼를 부릴 수도 있는 걸, 어른이면 조금 더 인내하고 다정하게, 천천히 타이를 줄 알아야지 순간적으로 올라오는 감정을 참지 못하고 쏟아내 버렸다.
화는 불과 같아서 조금이라도 나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크게 번지고 만다. 그러다 보면 필요 이상의 말이나 표정이 섞인다. 화를 내며 아이를 가르친다고 행동이 빠르게 변하는 것 같지도 않다. 오래 걸리더라도 바르게 훈육하는 방법이 무엇일지 헤매고 있는 요즘이다.
파주 운정에 새로 문을 연 쇼핑몰은 빨간날이라 그런지 더더욱 사람이 많았다. 오픈빨을 노리는 가게들은 각종 휘황찬란한 것들을 방문객들의 눈에 걸리지 않는 곳이 없도록 늘어뜨려 놓았다.
뭐 하나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는 선이는 인파 사이를 종횡무진하며 하나하나 만져보고 옮겨보고 떨어뜨리며 혼자만 아주 신이 나도록 돌아다녔다. 그런 선이를 쫓아다니며 뒷수습하고 끌고 나오고 일으켜 세우고. 쇼핑몰은 덥고 패딩은 두껍고 안에 입은 옷은 땀으로 다 젖고. 갑자기 다시 화가 나고 그냥 혼자 집에 가버리고 싶고. 그러다 이런 데 데려온 내가 잘못인지 생각할 때쯤 선이가 한 곳에 멈춰 섰다.
선이가 멈춰 선 곳은 서점의 서가 앞. 선이를 멈춰 세운 것은 '에그박사'. '에그박사'는 어린이 학습만화로 초등 저학년이 읽기 적합한 책이다. 선이가 그 책에 관심을 보인 이유는, 얼마 전 집 근처 샐러드 가게에 갔을 때 벽에 꽂혀있던 에그박사를 엄마가 읽어줬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그때 이후로 선이가 에그박사를 찾은 적도, 나와 아내가 읽어준 적도 없었는데 쇼핑몰에서 우연히 만난 어딘지 반가운 모습에 선이는 발길을 멈추고 한동안 책을 구경했다.
문득, 아이의 경험은 연결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의 경험이 미래에 어떤 경험과 연결되어 선이 되고, 그런 선들이 모여 한 그림이 되어갈 것이다. 다만 그 그림은 아주 커다란 그림이어서 긴 시간의 거리를 두고 봐야 겨우 알아챌 수 있을 것이다. 샐러드 가게의 에그박사가 서점에서의 멈춤으로 이어진 것처럼, 지금 찍는 점들이 언젠가 어떤 모습으로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순간순간에 너무 큰 의미를 붙이지 않아도 괜찮지 않을까. 오늘의 화가 아이의 마음을 망가뜨렸을까, 오늘의 짜증이 무언가를 결정지어 버리진 않았을까 자꾸 따져 묻게 되지만, 삶은 그렇게 한 장면씩 판정되는 건 아닌 것 같다. 좋은 날의 점도 있고, 서툰 날의 점도 있다. 제멋대로 흩어져 있는 것 같아 보여도, 시간이 충분히 지나고 나면 나름의 형태를 만들며 이어질 것이다. 그러니 오늘이 좋으면 좋은 대로 두고, 힘들면 힘든 채로 흘려보내도 괜찮지 않을까. 지금은 그저 지나가는 한 장면일 뿐이라고, 너무 오래 붙잡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에게 그렇게 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