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랑 밤 보러 가지 않을래

by 벨찬

밤에 꽂힌 아이 덕분에 요즘 선이와 나는 낮이나 밤이나 밤을 찾으러 동네를 거닐고 있다. 가을엔 한참 도토리를 줍더니, 이제는 밤이다. 밤을 모아 다람쥐와 토끼가 먹을 식탁을 만들어 주는 게 선이의 계획이다. 그러나 동네의 밤은 진작에 할머니들께서 주워가셨고, 뒷산에 남아있는 밤도 수북한 낙엽이불에 덮여 찾는 게 쉽지 않다. 그런데 뭐랄까 밤을 향한 아이의 마음은 일편단심 민들레 같아서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밤, 밤 담을 가방을 챙기는 아이를 나는 말릴 수가 없다.

"대신 모자랑 목도리 하고 가자" 평소에 싫어하던 모자랑 목도리인데, 이럴 땐 또 잘 한다. 나도 옷장에서 롱패딩을 꺼내 단단히 챙겨입고 밤이 없는 걸 알면서도 밤을 찾아 거리로 나선다.


사실 밤은 보지 못하더라도 한겨울 인적이 드문 밤거리를 작은 아이 손을 잡고 걷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어둠 속에서 선이는 내 손을 더 꽉 잡는데 선이가 나를 의지하고 있는 거 같아서, 내가 선이의 피할 곳이 된 것 같아서 또 좋다. 차가운 공기가 스친 선이의 볼에 나의 볼을 비비면 선이는 배시시 웃는다. 그러다 웃음따라 새어 나온 입김을 발견하면 용처럼 연기를 뽑는 흉내를 낸다. 갑자기 시작된 달리기 시합은 중간에 경찰과 도둑으로 변했다가 기차놀이로 끝이 난다. 가로등 밑은 그림자놀이의 공간이다. 우리는 개구리도 토끼도 될 수 있다. 선이는 내 그림자가 선이 그림자를 잡아먹는 순간을 특히 좋아한다. 가로등 밑에서 폴짝폴짝 뛰다 보면 어느새 추위와 밤을 찾으려는 처음의 계획은 모두 사라져 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가 밤을 찾는 시간이다.


집에 돌아가는 길,

"아빠 여기 좀 보세요. 별이 있어요."

선이는 하늘이 아니라 바닥을 가리키며 말했다. 선이 눈에 뭐가 별로 보였을까 생각하며 아이 키만큼 쪼그려 앉아 보니 정말로 별이 있었다. 산책로를 덮은 포장재 속 석영이 가로등 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마치 별가루가 우리 앞에 흩뿌려진 것처럼.

"그러네! 정말 별가루가 있네!" / "왜 별가루가 있어요?"

"별이 기분이 좋아서 몸을 흔들었나 봐." / " 왜 별이 기분이 좋아서 몸을 흔들어요. 고양이처럼? 선이도 고양이처럼 걸을 수 있어요."

그러곤 정말 고양이 처럼 네발로 땅을 걷는 선이. 집이었다면 나도 야옹야옹하며 따라 했을 것이다.


밤 보러 나갔다 별 보고 오는 이런 날들은 아이와 함께하는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다. 계획했던 것과 다른 결과지만 그 길에서 더 예쁜 것을 발견하는 날들. 이런 시간을 걸을 수 있다면 겨울의 한복판을 지나도 그리 춥지 않을 듯하다. 집에 들어와 가방을 열어본 선이는 말했다.

"오늘은 밤이 없었어..."

선이의 목소리에는 아쉬움이 묻어 있었지만, 나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선이의 가방에 밤은 없어도 따뜻한 온기가 담겼을 거란 생각에. 선이도 어렴풋이 그 온기를 느꼈길 바라며 선이의 모자를 벗겨주고 대답했다.

"우리 내일 또 밤 찾으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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