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 찬 하루

by 벨찬

잠든 아이 옆에 누워 눈을 감으면, 먼바다 파도 같은 숨소리가 철썩인다. 규칙적으로 밀려왔다가 빠져나가는 숨. 너는 지금 어느 바다에 있을까. 낮의 놀이터와 밤의 산책이 너울이 되어 너를 꿈의 세계로 데려가고 있을까. 나도 그 바다에 들어가고 싶어, 너의 하루를 하나씩 따라가 본다. 그러다 나도 너를 따라 잠에 들어 같은 바다에서 만나는 꿈을 꾸며.


"우와, 날씨가 엄청 좋아!"

미세먼지가 가득한 날, 집 안에 먼지가 많아 잠시 창을 열었는데, 그걸 보더니 선이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외쳤다. 동시에 눈과 콧구멍과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크게 들이마시는 시늉을 한다. 창밖은 뿌옇고 공기질 지수는 빨간불인데, 어딘지 연극 같은 말투로, 어쩌면 내가 책을 읽어주던 모양으로, 실제와 맞지 않는 말을 참 말갛게도 뱉는 아이의 모습에 풉- 웃음이 났다. 저 작은 몸통에 맑음 한 조각이 들었는지, 현실이 어떻든 세상을 밝게 보는 아이는 어딘지 사랑스럽다.

"그러네, 날씨가 정말 좋다!"

선이의 말에 맞장구치며 선이만큼 눈, 코, 입을 크게 벌려보니 정말로 날씨가 좋게 느껴지는 듯했다.


요즘 나는, 만 세 살도 안 된 아이에게 살뜰히 보살핌을 받는다. 헛기침이라도 하면 어디선가 나타나 "아빠 기침 걸렸으니깐 약 먹어야지요" 하며 약을 갖다주고(근데 내가 먹는 약은 아니다), 소파에 잠깐 누우면 "아빠 추우니깐 이불 덮어야지요" 하며 이불을 끌어와 덮어준다(근데 머리끝까지 덮어줘서 숨이 잘 안 쉬어진다). 걸쳐 입은 옷의 지퍼까지도 올려주는(근데 너무 거침없이 올려 가끔 목이 찝힌다.) 선이의 돌봄은 내가 선이에게 건넸던 손길들의 잔상 같기도 하다. 그 어설픈 손길의 보드라움에 아끼고 살피는 마음이 흘러들어 온다. 어쩌면 덕분에 몇 번의 감기가 나를 지나쳐버렸을지도.


우리는 하루를 함께 산다. 같은 빛 아래서 웃고, 같은 공기를 나눠 마시며, 서로의 감정을 주고받는다. 연결된 마음에 날아든 하나의 작은 행복은 너와 나의 자리를 경계 없이 넘나들며 우리의 세계를 같은 색으로 물들인다. 작게 흥얼거리는 노래 한 구절, 툭 던진 한마디 말, 나비 같고 고양이 같은 몸짓 한 품에 우리는 서로에게서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는 마음을 읽는다.


꽉 찬 하루를 살아낸 너에게, 파도는 쉬지 않고 밀려온다. 숨 쉬는 건 살아 있다는 증거라, 너의 입가에서 새어 나오는 바람 소리에 나는 자꾸 안심하게 된다. 오늘 하루도 우리는 참 잘 살았다. 같이 누워 숨을 마주할 수 있는 것으로 족하다. 너는 지금 무슨 꿈을 꾸고 있을까. 단꿈이면 곤히 자고, 쓴 꿈이면 얼른 깨어 내게 오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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