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자꾸만 앞서 나가려는 내 손을 억눌러야 했다. 눈앞에 자리가 있는데도 엉뚱한 곳을 헤매고 있는 아이를 보면, 서둘러 정답을 알려주고 싶어진다. 그러나 나는 알고 있다. 여기서 내가 개입해 버리면, 모든 판이 뒤엎어진다는 것을.
이미 선이가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어 있는 자리에 맞는 조각을 그의 눈앞에 슬쩍 가져다 둔 상태다. 이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빠 생각에는 거기가 아닌 것 같은데~” 하고 한마디 건네는 정도다. 서둘러 퍼즐을 완성하고 싶은 나로서는, 마지막 서너 조각을 남겨 두고 애쓰는 선이가 답답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여기서 정답을 알려줘 버리면, 선이는 금세 짜증을 내며 정말로 퍼즐 판을 뒤엎어 버린다.
선이와 퍼즐을 맞출 때 필요한 건 적당한 도움이다. 스스로 완성해 가는 감각은 지키면서도, 너무 어려워 포기하지는 않도록 돕는 것. 퍼즐 조각을 요리조리 움직이며 심각하게 고민하는 선이를 보고 있으면, 나는 자주 육아의 골디락스 존을 떠올리게 된다.
골디락스는 동화 속 소녀의 이름이다. 곰 세 마리가 사는 집에 몰래 들어간 골디락스는 식탁 위에 놓인 세 그릇의 수프를 하나씩 맛보고, 너무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은 딱 알맞은 온도의 수프를 고른다. 의자와 침대도 마찬가지다. 너무 크거나 작지 않은, 너무 딱딱하거나 물렁하지 않은 딱 적당한 것을 고른다.
천문학자들은 이 이야기에서 이름을 빌려왔다. 태양에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거리. 생명이 머물 수 있는 딱 알맞은 구간을 '골디락스 존'이라고 부른다. 지구는 바로 그 안에 있는 행성으로, 물이 모두 증발하지도, 완전히 얼어붙지도 않을 만큼의 태양 에너지를 받아 수많은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이룬다.
육아에도 골디락스 존이 있다면, 그것은 개입과 방관 사이의 적당한 거리일 것이다. 아이와 너무 가까이 밀착해 지나치게 개입해 버리면,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힘을 기르기 어렵다. 한 번에 정답으로 가는 길만이 옳다는 인식이 쌓이면, 실패하고 돌아가는 과정에서 만나는 뜻밖의 재미를 놓치게 된다. 그 과정에서 자라나는 상상력과 창의성도 함께 자라기 힘들어진다. 반대로 너무 멀어져 방관으로만 일관하면, 아이는 반복되는 실패 앞에서 시도 자체를 망설이게 된다. 문제를 해결해 가는 즐거움이나, 해냈을 때의 성취감도 충분히 느끼기 어렵다. 새로운 놀이와 배움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경험 역시 줄어든다.
아이에게는 방관과 개입 사이, 적당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때 아이는 흥미를 잃지 않고 스스로 해보려는 마음을 이어가며, 실패를 견디는 힘을 기르고 결국 해내는 기쁨을 알게 된다. 퍼즐 놀이 역시, 나와 선이 사이의 골디락스 존이 지켜질 때 선이는 즐거움을 잃지 않고 스스로 퍼즐을 완성해 나간다.
요즘 동네를 걷다 보면, 여기저기서 생명이 움트는 장면들을 만난다. 목련 나뭇가지 끝에는 봉오리가 올라와 있고, 나비가 한두 마리씩 날아다니며 관목 줄기에는 여린 잎사귀가 돋아났다. 이 모든 건 태양과 지구 사이의 적당한 거리 덕분일 것이다. 풀밭에 자주 드나들고 그 안에 드러눕기도 하는 선이는 때때로 나보다 먼저, 조용한 봄 인사를 알아차린다.
어린이집 하원 후, 선이와 집 근처를 걷다가 선이가 나를 멈춰 세웠다.
“아빠, 이것 좀 보세요. 초록색이 올라왔어요.”
선이는 땅을 가리켰다. 그 손끝을 따라가 보니 작은 새싹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자세히 보니 곳곳에 초록 잎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아직은 무릎을 굽혀 내려다봐야 겨우 보일 만큼 작다. 새싹은 언 땅이 풀리고, 씨앗이 깨어날 만큼의 적당한 온기 속에서 대지를 밀어 올릴만한 힘을 얻었을 것이다.
“우와, 새싹이네! 어떻게 땅을 뚫고 나왔을까?”
“음… 봄이라서 그런가 봐요!”
“진짜 그런가 보다. 그럼, 우리 다른 새싹도 찾아보자.”
선이와 함께 또 다른 새싹을 찾으며, 나와 선이의 거리를 가늠해 본다. 나는 지금 적당한 거리에 있을까. 우리는 수시로 가까워졌다가, 또 멀어지기도 한다. 변해가는 우리 사이의 골디락스 존은 하루하루 다르다. 선이가 인생이란 퍼즐을 조각조각 맞춰가는 동안 그 여정이 너무 외롭거나 지루하지 않도록 새싹을 움트게 하는 만큼의 따스함으로 곁에 있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