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 들어가면 봄의 한복판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선이를 따라 들어간 초록 풀밭에 노란 민들레가 가득이다. 선이가 민들레 한 송이를 꺾어 주머니에 넣는다. 집에 가서 엄마한테 보여줄 거란다. 그럼 엄마를 데리고 와서 보여주면 어떻겠냐고 하니, 꺾은 꽃을 도로 땅에 심는다. 풀밭에는 민들레 말고도 하얀색, 분홍색, 보라색 꽃들이 피어있다.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은 게 많은 선이는 종류별로 하나씩 따고 싶어 한다. 꽃을 꺾으면 안된다고 알려줘도 선이의 손은 나의 말보다 빠르다. 엄마에게 준다하니 나도 적극적으로 말리지를 못한다. 꽃을 꺾어보기도 하고 선물도 해본 아이가 꽃을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생각하며 나는 애써 모른 척한다. 선이가 자신만의 사랑의 방식을 찾아가고 있는 것 같아, 이런 모습도 어여쁘다.
베란다 텃밭의 블루베리가 하얀 방울 같은 꽃을 피워냈다. 겨울 내내 돌봄을 받지 못했는데, 언제 소리도 없이 꽃을 피웠을까. 흙을 보충해줘야겠다 싶어 선이와 함께 동네 화원을 찾았다. 간 김에 비어 있는 화분에 심을 것도 골라봤다. 선이는 부추를, 나는 만리향과 오렌지 레몬을 키우기로 했다. 집에 돌아와 각자 고른 식물을 화분에 옮겨 심었다. 새 흙을 화분에 붓고, 삽으로 뒤섞으며 뭉친 흙을 풀어주었다. 잘 고른 흙에 오목하게 구멍을 낸 뒤 식물을 옮겨 심고, 물을 흠뻑 준 다음 흙을 손바닥으로 꾹꾹 눌러 주었다. 선이는 몸에 흙과 물을 뒤집어쓰면서도 모든 걸 직접 하고 싶어 했다. 부분씩 내가 도움을 주었지만, 물 뿌리는 일만큼은 선이가 도맡아 했다. 베란다 식물들에게는 한 번 물을 줄 때 화분 밑으로 물이 쫙 빠질 때까지 흠뻑 주는데, 그 일이 선이 전문이다. 알려주기도 전부터 선이는 늘 흘러넘치도록 주었다. 그 덕에 블루베리도 지난 겨울을 버텨낸 게 아닐까 싶다.
그날 밤, 선이는 잠들기 전 커튼을 열고 텃밭 친구들에게 축복의 말을 전했다.
"꽃들아, 내가 아빠랑 물 줘서, 바닥에서 꽃 심고 물 줘서, 어… 샤워도 해주고. 달과 햇님과 지구가, 엄마, 아빠가, 선이가, 할머니가, 어… 달과… 행복해. 사랑해."
작은 몸 안에 그보다 훨씬 큰 사랑이 담기기도 하는구나. 거대한 사랑이 꽃잎처럼 여리고 부드러운 입술 사이로 흘러 나온다. 이 모습 오래 변치 않도록 지켜주는게 나의 일이구나. 어쩌면 나는 지금 봄의 한복판에 서있는지도 모르겠다. 생각드는 밤이었다.
선이와 지내다 보면, 이 아이가 봄날의 햇살을 닮았다는 걸 느낀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화분의 흙을 꾹꾹 누르며, 키 쭉쭉 자라 나무가 되어 달라고 한다. 동네 어귀에서 만난 검은 고양이가 배고파 슬픈가 보다며 나뭇잎 위에 츄르를 짜 놓아준다. 내가 거짓으로라도 아픈 척 하면 장난감 청진기를 가져와 구석구석 진찰한다. 엄마가 아파 기도해달라고 하면 두 눈을 질끈 감고 양손을 꼭 모아 엄마 치료해달라고 말하는 아이. 선이의 따뜻한 말, 싱그런 웃음, 다정한 손길이 봄날의 햇살처럼 비춰들어와 나를 포근히 감싸 안는다.
봄날의 햇살 같은 선아.
네가 아니었으면, 내가 이런 계절 속에 살 수 있었을까.
자주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보았을까.
구름과 별에 이름을 지어줄 줄 알았을까.
더 건강하게, 더 선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을 수 있었을까.
벅차오르는 감사와 행복을 느끼고,
작은 존재에 마음을 내어주며,
아무 일 없는 날들의 소중함을 알 수 있었을까.
너로 피어난 오색찬란한 꽃천지 한가운데,
내가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