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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입자

전원주택에 살면 생기는 일

by 당근 Mar 24. 2025

5년 만에 집으로 들어왔다. 집을 비운 동안 집이 낡아 손볼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집수리는 엄두가 안 나서 미뤄두고 올해는 텃밭과 마당관리를 제대로 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날이 좀 풀리자 몸이 근질거렸다. 삽질도 하고 싶고 호미질도 하고 싶어졌다. 남편에게 텃밭에 그늘을 만드는 나무들을 잘라달라고 말했다. 남편은 톱을 들었고 나는 삽을 들었다. 당초 내 계획은 거름자리(퇴비 만드는 자리)에 묻힌 타이어와 시멘트 블록을 꺼내는 정도만 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음식 찌꺼기, 풀, 낙엽, 잔가지들이 썩어서 폭신폭신하고 까만 흙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니 거름을 다 파헤쳐 내고 싶었다. 거름 자리 흙을 모두 삽으로 퍼서 텃밭으로 뿌리기로 마음먹었다.


거름 자리를 뒤집어 텃밭 거름으로 뿌린 건 집 짓고 처음 하는 일이다. 응달이라 윗부분에 약간 언 흙이 있긴 했지만 삽머리(삽어깨? 삽자루가 끼워진 부분의 양쪽 판판한 곳, 발로 밟는 부분)에 몸을 실으니 쑥쑥 삽이 잘 들어갔다. 거름 자리를 처음 만들 때 테두리로 표시해 둔 시멘트 블록 5개와 타이어 2개가 나왔다. 그것들을 파내고 나니 한결 삽질하기가 좋았다. 푹, 한 삽 떠서 휙 뿌리고. 푹, 한 삽 떠서 또 휙 뿌리고. 부엽토라 가벼우니 삽질하는데 하나도 힘들지 않고 흥이 났다.


신이 나서 거름을 휙, 휙, 뿌리는데 작고 하얀 뭔가가 날아가 흙 위에서 꿈틀거리는 게 보였다. 쥐였다. 눈도 못 뜬 새끼 쥐 두 마리가 거름과 함께 날아가서 버둥거리고 있었다. 놀라서 소리를 지를 뻔했다. 쥐가 도망을 갔다면 호들갑을 떨며 남편을 부르거나 나도 모르게 때려잡았을 텐데. 제대로 기지도 못하는 새끼들이었다. 자세히 보니 거름과 함께 날아간 두 마리 말고도 한 곳에 네 마리가 더 있었다. 남편에게 쥐의 처리를 부탁했다. 남편은 집게로 새끼들을 집어서 계곡 옆 숲으로 가서 해결하고 왔다. 징그러워서 못 한다고 하면 저걸 어떡하나 싶었는데 다행히 남편이 해결해 줘서 다행이었다. 저녁에 텃밭에 이랑을 만들 때 새끼 쥐 한 마리를 또 발견했다. 그 새끼 쥐는 죽어있었다. 삽질 소리에 놀라서 어미는 도망을 갔나. 쥐새끼들이 불쌍했다. 그렇다고 쥐를 그냥 둘 수는 없었다.


집 지은 지 몇 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저녁을 먹은 뒤 네 식구가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고 있었다. 갑자기 작은 회색쥐 한 마리가 현관으로 들어와서 계단 밑 창고로 걸어가는 게 아닌가. 종종걸음으로 걸어가다가 멈추고는 머리를 우리 쪽으로 휙 돌리며 빤히 보더니 다시 고개를 돌리고 가던 길을 갔다. 유유히. 마치 집주인처럼. 쥐가 지나가고 나서 우리는 방금 저 쥐랑 눈 마주쳤다, 저 쥐가 마치 이 집 주인 같다며 한참 웃었다. 웃을 일이 아니었지만 시골에 살다 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싶어서 웃음이 났다. 집 뒤쪽 통신선 들어오는 곳으로 구멍을 내고 통신선을 따라서 계단 밑 창고로 들어온 것 같다고 남편이 말했다. 실제로 그 후 전화가 안되어 남편이 통신 단자함을 열어 봤을 때 쥐가 통신선과 OSB합판을 갉아먹은 흔적을 발견했다.


또 몇 년 후에는 벽 사이를 돌아다니는 쥐소리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도 있었다. 밤마다 쥐가 돌아다니는 소리를 들으며 그 쥐가 우리 집을 다 갉아먹는 상상을 했다. 해충 퇴치 업체를 불러야 하나 쥐약을 놔야 하나, 혹시라도 이웃집 고양이나 강아지가 쥐약을 먹으면 어떡하나 고민을 했다. 그러다 1층과 2층 사이 계단 벽에서 쥐가 OSB합판과 석고보드를 뚫고 나온 것으로 보이는 새끼손가락 만한 작은 구멍을 발견했다. 쥐가 벽을 뚫고 나왔다면 집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인데 도무지 찾을 수 없었다. 다행히도 그 구멍을 발견한 이후에는 벽 사이를 돌아다니는 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다용도실에서 쥐가 사과를 갉아먹은 흔적을 발견했다. 다용도실 문을 닫고 쥐가 나오지 못하게 했다. 끈끈이와 쥐덫을 사서 쥐가 좋아할 만한 음식을 두고 잡히기를 기다렸으나 음식만 빼먹고 간다거나 털만 묻혀놓고 사라질 뿐 좀처럼 잡히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에는 그 쥐를 잡긴 잡았다. 그동안 쥐를 잡기 위해 넣어둔 음식을 얼마나 잘 빼먹었는지 그 사이 어른 주먹만한 덩치로 자라 있었다. 그때 잡은 쥐는 풀숲에 갖다 버리면 용돈을 주겠다는 엄마의 꼬드김에 넘어간 두 딸(한창 호기심 많은 초등학교 저학년이었던)이 처리를 했다.


새끼쥐를 갖다 버린 후 남편도 나도 쥐 때문에 우리가 겪었던 불편함과 쥐의 번식력에 대해 연신 이야기했다. 벽 사이로 다니던 쥐가 우리 집을 다 갉아먹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에 사로잡혔던 그 밤들을 떠올리며. 쥐 가족의 안온한 터전을 침범한 미안함을 떨쳐내기라도 하려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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