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방의 신호등이 붉은색으로 변했다. 브레이크에 대충 얹어 둔 발에 힘을 실어 꾸욱, 달리던 차를 멈추어 세운다. 6,700세대 대단지 아파트에서 수변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위치한 삼거리 신호등.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5분이면 이곳을 지난다. 40층 건물과 면한 도로에는 해가 뜬 후에도 그늘이 짙게 드리워져 있다. 어느 깊은 허공에서 시작되어 쿰쿰하고 스산한 내음을 머금은 듯한 아침의 어둠 속에 나는, 멈추어 섰다. 조수석에 던져진 가방을 뒤적여 약봉지를 꺼낸다. 물 한 모금에 약을 털어 넣어, 삼킨다. 2021년 5월, 아침 8시 45분경 나의 출근길 루틴이었다.
내가 다니던 회사는 유연근무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아이 아빠가 있었을 때는 7시 30분에 제일 먼저 출근해 4시 30분에 퇴근하면서 아이를 픽업했다. 8시 30분이 정시 출근, 9시 30분에 출근을 하면 6시 30분 퇴근이었다. 사무실을 떠난 뒤에도 연락은 받아야 하고 급한 업무는 즉시 처리 해야 했지만, 분위기상 99% 칼퇴근이었기 때문에 아이를 키우며 다니기에는 제법 괜찮은 회사였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가고 있는 중이야, 나는.
회사를 향해, 오늘의 퇴근 시간을 향해, 저녁에 다시 만날 아이를 향해, 그리고 다시 만날 당신을 향해. 나는 현재에 발 붙이지 못하고 언제나 나를 지나쳐 달려가고 있는 미래의 그 언젠가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었다.
내 두 발로 밟아내어 지나온, 밭은 숨 내뱉으며 어떻게든 이어온 그 시간과 세월로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매일 깨달았지만 다시 매일 잊었다, 돌아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그래야 살아졌다.
불안정한 여러 감정들은 일상생활뿐 아니라 나라는 인간의 존폐에도 찐득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양손으로 움켜 잡고서 나는 몇 번이고 출근길 옆 고가 도로로 차를 올려 그대로 바다에 입수하는 상상을 했다. 그다지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고가 도로 아래에서 좌회전을 하는 3차선 대신, 딱 한 차선. 딱 한 차선만 이탈할 수 있다면 그다음부터는 물 흐르듯 가 닿을 수 있을 터였다. 고가 도로를 넘어 서자 마자 보일 테다, 푸른 바다가. 사랑하는 이를 기어코 먼저 떠나보낸 그 바다에, 나도. 바라보고 있는 곳에 가 닿을 수만 있다면.
하지만, 나의 간절한 시선은 내 자신에게 조차 매일 외면당했고, 나는 무의식의 습관으로 핸들을 왼쪽으로 내쳐 돌렸다. 눈물을 삼킨 채. 매일 삼켜낸 그 눈물이 내 안에 고스란히 들어차 오르는 것도 모른 채.
내게 닥친 현실을 인정하지 못한 나의 이성은 나 자신을 부정하는 마음으로 이어져, 종국에는 나의 존재에 대한 해방과 결말만을 꿈꾸게 되었다. 모든 것에서 그저 자유로워지고 싶었다. 미션 클리어. 게임을 끝내고 나라는 캐릭터를 이제 그만 버리고 싶었다. 모든 상황이, 책임이, 슬픔이 내겐 너무 무거웠다..
任重道遠(임중도원). 맡겨진 책임은 무거웠고, 갈 길은 멀기만 했다.
나의 반쪽이 세상을 떠난 후 내 삶은 나에게 지독히도 벌이였다. 나는 무슨 잘못을 했을까. 무엇이 잘못되어 이런 벌을 받고 있는 것일까. 살아온 모든 시간과 순간을 하나하나 되짚어가며 반성하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아, 그때 나쁜 생각을, 못된 마음을 먹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때 더 참았어야 했는데!… 온 세상 모든 것을 향해 뻗어 있던 나의 크고 작은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과 행동을 하나의 채반 안에 그러담아 놓고선 탁탁 쳐내어 하나씩 걸러내었다. 작은 잘못 하나라도 더 털어내 보고자 마주치는 손바닥이 부르트도록 거르고 또 걸러내었다. 그런 생각들이 꼬리를 물고 계속되다 어느 순간엔 울컥해져, 내가 도대체 뭘 그리 잘못했냐고! 하는 반항심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렇지만 자책의 마지막에는 언제나, 나는 무언가를 잘못했기에 지금 이렇게 혼자 남겨졌다고 결론 내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생의 끈을 놓는 것에 대해 그렇게 숱하게 많은 고민과 가상의 시도를 했음에도 실행하지 못했던 결정적인 이유는 단 하나였다. 나는, 자식을 품은 어미였다. 하루에도 수 없이 많은 생명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순간의 숨이 닿지 않는 한 켠에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을 안다. 그중 하나가 내가 되지 못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내가 엄마라는 이름을 가졌다고 해서, 그 책임을 가졌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생을 붙잡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홀로 떠난 이들이 남긴 부유물 보다 ‘일가족의’ 혹은, ‘동반’이라는 덩어리 진 찌꺼기들이 나를 붙잡았다.
동반 자살, 아니 자녀 살해 후 자살이라고 해야겠지. 절대 용서받을 수 없고 있어서는 안 되는 일이지만, 경우의 수에 포함되어 있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떠나야겠음은 이미 굳게 먹은 마음이었지만, 아이를 두고 떠난다는 것은 이 세상에 마지막 남은 고민이자 미련이었다.
아이와 함께 떠나기에 일산화탄소 중독이 제일 적합해 보였다. 여러 가지 방법과 준비물을 살폈다. 실패하지 않고 한 번에 끝내기 위해, 함께 떠날 아이가 힘들지 않기 위해, 떠난 후의 우리 모습이 너무 흉하지는 않게.
하지만, 내 생도 온전히 나만의 것은 아닐진대, 내가 뭐라고. 감히 나 따위가 뭐라고. 이렇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의 반짝이는 삶을 내가 서 있는 검은 구덩이 속으로 잡아끌어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자의인지 타의인지도 구분할 수 없는 아직 어린 나의 아이를. 그래서 자식 품은 어미인 나는, 차마 삶을 여기서 내려놓지 못했다. 내가 대단한 모성애를 지닌 어미여서가 아니라, 그저 나의 아이가 소중한 존재였기 때문에.
죽기도, 그렇다고 살아내기도 힘겨운 시간들을 버텨내며 내 가슴은 검붉게 피멍이 들어갔다. 나는, ‘그러한 나’와 ‘아무 일도 겪은 적 없는 나’로 분리되었다. 이중인격자가 되어 버린 것이 아닌가, 해리성 인격장애가 아닌가… 나는 분명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내팽개치고, 밤을 낮처럼 낮을 밤처럼 울부짖어야 할 것만 같은데. 오장육부를 다 뒤집어 까 갈기갈기 찢어 발기는 듯한 아픔과 슬픔에 절여 있는데. 그런 내가 아이를 챙기고 출근해서 업무를 보고 돈을 벌며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의 괴리를 견딜 수가 없었다. 소리 없이 울부짖는 내가, 멀쩡히 웃고 있는 나와 공존하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또한 '아이의 엄마라는 나'와 '당신의 아내라는 나'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하고 분명하게 분리된 두 개의 층으로 나뉘어 각각의 영역을 반듯하게 지켰다. 아주 조금만 정신줄을 놓아준다면, 대단히 잘 미쳐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우울은,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 나를 집어삼켰다. 결코 서두르지도 조바심 내지도 않고. 내 안의 깊은 곳에 씨앗을 심고, 내게서 양분을 받아 싹을 틔우더니 마침내 활짝 만개하여 흐드러진 꽃밭이 되어 나를 가득 채웠다.
어떠한 사건이 발생한 순간을 기점으로 갑자기 우울에 잠식당한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서서히 진행되었다. 꽃을 피우기 시작한 순간 걷잡을 수 없었고, 통제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는 생과 사를 넘나드는 우울의 꽃밭을 가슴에 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