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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고래 루나 Apr 05. 2024

나다운 봄을 시작하고 있는 나에게

나 자신을 마주하기까지

나는 내가 가진 에너지를 끌어 모아
스스로를 다독이고 격려하고 응원해 주어야 겨우, 오늘 하루를 살아낼 수 있는 사람이다.


1층에서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아파트 건물 밖으로 나선다. 까만 어둠에 잠겨 있는 새벽 공기와 얼굴에 스치는 봄바람이 아직 차가웁다. 검은색 레깅스, 긴 기장의 후드 집업을 걸치고 러닝화를 신은 나는 발을 빠르게 움직여본다. 횡단보도에서 신호를 대기하며 손목과 발목을 둥그렇게 돌려댄다. 아직 하늘에는 기울어져 내려온 달이 덩그러니 떠있지만, 내가 출근하던 방향으로 향하는 수많은 차들이 줄지어 눈앞에서 사라진다. ‘그래, 나도 저 무리 중 하나였지. 저 대열에 끼여있었지.’ 하는 생각이 들고 오늘 내게 주어진 자유에 감사해 본다. 신호등의 불빛이 바뀌고 나는 인도에서 내려서 바다를 향해 걸어간다. 빠른 걸음으로 잠시 몸을 데운 뒤 천천히 달리기 시작한다. 나를 지나쳐 앞질러가는 사람도 반대편에서 나를 스쳐가는 사람도, 서로 인사를 나누지는 않지만 여러 번 마주쳐온 사람들임을 이제는 안다. 왕복 5Km 구간의 반환점에 도착해 차오르는 호흡을 가다듬고 주위를 둘러보면, 하늘은 어느새 파란 새벽으로 바뀌어 있다. 해가, 떠오르기 시작하는 중이다.   

 



나의 아침 루틴은, 내가 나의 하루를 살아내기 위해 시간을 들여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어가며 정착시킨 나만의 생존 방식이다.

겨울을 제외하고는 새벽 5시 전후로 기상을 한다. 눈 마주치자마자 새벽의 고요를 요란스럽게 깨우는 고양이에게 아침 간식을 주는 것이 제일 먼저 하는 일이다. 양치 후 아침 물을 한 컵 마시고 나서 운동복으로 갈아입는다.  

가벼운 걷기와 조깅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몸을 움직이지 않고는, 하루종일 내 곁을 알짱대며 틈만 나면 나를 주저앉히려고 하는 우울과의 싸움에서 도저히 이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집을 나서는 순간 나는 하루를 ‘제대로' 혹은 ‘원하는 대로' 시작하고 있다는 성취감을 느낀다. 운동을 끝내고 돌아오면 아이가 기상해 있기도 하고 자고 있기도 한다. 아침밥을 꼭 먹어야만 하는 아이라서 식사를 준비하며 등교 준비를 돕는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잘 다녀오라는 인사를 나누고 나서야 운동복을 갈아입고 샤워할 시간이 된다.

머리를 닦아낸 뒤 갈아입은 실내복 위에 앞치마를 덧입고 집안일을 시작한다. 아이의 발채 남는 공간에서 뒹굴거리며 잠을 자기에 소복이 모여있는 우리 집 고양이털, 아마도 귀염 뽀작한 발꼬락 사이에 껴 있다가 빠져나왔을 모래, 너와 나의 길고 짧은 머리카락들을 돌돌이로 밀어낸 뒤 침구를 정리한다. 청소기로 방과 거실, 주방을 한바탕 밀고 나서 아침을 차린 주방을 정리하며 나의 첫 식사를 준비한다.  


나는 16시간 간헐적 단식을 수년째 해 오고 있다. 공복으로 운동을 하고 첫 식사는 11시에 시작을 하는데 3가지 종류를 먹는다. 직접 만든 그릭요거트에 블루베리와 제철 과일 한 두 가지, 견과류, 샐러드. 특히나 샐러드는 큰 접시에 그날의 채소를 가득 채우고 토핑으로 토마토와 올리브, 버섯, 두부나 계란등을 가득 올리기 때문에 도저히 1인분으로 보기는 어려운 양을 가득 먹는다. 이런 식으로 식사를 하는 나를 보고,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코끼리도 야채만 먹는단다….”  


식사 한 뒤에는 자유롭게 그날의 할 일을 한다. 해야 할 일은 전날 잠들기 전에 체크리스트를 만들어 두기 때문에 하나씩 살펴보며 해 나간다. 순서는 바뀌기도 하지만, 워낙 많은 것을 계획하기 때문에 그날 못 한 일은 있어도 더 하는 일은 결코 없다. 계획에 없던 새로운 일을 하는 경우도 잘 없다. 나는 불안장애가 심하기 때문에, 예상 밖의 일을 겪게 되는 것을 대체적으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것이 나에게 좋은 일이건 싫은 일이건 무관하게 말이다. 그저 나의 하루가 내가 예상가능한,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흘러가 주기를. 그러니까 그저, 평범한 하루가 되기를 언제나 바랄 뿐이다.  

책을 읽다 보면 언제나 시간을 도둑맞기 일쑤여서, 할 수 있는 일의 가짓수는 많지 않은 편인데 그래도 언제나 할 일을 쓰고 또 쓴다. 해야 할 일 목록에서 한 달째 지워지지 못하는 일도 있어서 매일 쓰고 다시 쓰기도 한다. 그래도 ‘또 못했네!’라고 스트레스받기보단, ‘잊어버리지 말고 언젠가? 는 꼭 하자!’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본다. 매일 많은 것들을 다독여야 해서 좀 힘들긴 하지만…  




일하지 않고 쉬는 동안에 내 삶에 나만의 루틴을 만들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왜 살아야 하는지, 오늘은 또 어떻게 살아내야 하는지 고민 없도록. 그저 내가 만들어 둔 루틴으로 아침을 시작하고 내가 만든 루틴으로 하루를 마무리한다. 무엇이든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는 있지만, 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운동이다.


운동을 하지 못한 날은 날씨 영향일 경우가 많고, 그런 날 내가 우울에 잠식될 확률은 백 퍼센트에 수렴한다. 그래서  조깅만 할 때는 들쑥날쑥한 기분을 컨트롤하기가 너무 어려웠다. 몸을 움직여야 살 수 있는데...

실내자전거를 병행했다. 땀이 나고 운동이 되는 것은 분명했지만, 러너스 하이 같은 기분을 느낄 수가 없어 무언가 아쉬웠다. 수영을 시작하려고 근처 어울림센터를 기웃거려 보았지만, 경쟁이 너무도 치열했다.

결국 어울림센터는 포기하고 아이가 다니고 있는 어린이 수영장의 아침 수영 강습에 대기를 걸었다. 선수 출신의 원장님이 아침 수업을 두 타임 맡고 계셨다.


대기로 몇 달을 지나 보내고 작년 11월 마지막 주, 드디어 수영장에 발을 담글 수 있었다. 이제 4개월 지나고 있는 나는 접영까지 영법은 모두 배웠고, 숏핀을 신으면 물속을 날아? 다니며 수중에서의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다. 물론 순탄하지는 않았다. 예민한 귀 덕분에 스테로이드제를 넣어가며 귀마개를 착용해야만 입수가 가능하고, 휘어있는 무릎 때문에 평영 발차기 후에는 보행에 문제가 생길 정도의 통증이 있어 결국 평영 발차기는 포기했다. 그럼에도 나를 우리 반 에이스라고 해 주시는 동료들과 운동선수 출신이냐며 (나는 단지 어깨가 넓고 키가 큰 편일 뿐이다. 절대 덩치가 크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잘한다 엄지 척해 주시는 상급반 언니들이 계셔서 수영이 정말 재미있다. 하루는 수영, 하루는 조깅, 이도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실내자전거를 타면서 오늘 하루치 살 만큼의 에너지를 충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나답지 않게 계획도 없이 덜컥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했다. 지금 봐도 무슨 생각이었을까, 싶은 결정이랄까. 계획 없이는 못 사는 극 J인 내가 앞뒤 생각 없이 우선 저질렀던 것 같다. 브런치에 연재를 시작하고 나니 일상이 다시 뒤틀렸다. 매일매일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아니면서, 다이어리를 펼쳐 들면 금요일이 다가오는 게 이루 말할 수 없이 부담스러웠다. 나의 무계획함에다가 글에 대한 생각만으로도 진이 빠져 나름 규칙적으로 달려오던 유튜브 마저 손 하나 댈 수가 없었다. 만약 다시 브런치에서 연재를 하게 된다면, 어느 정도의 목차와 내용을 정리해 두어야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나는, 머지않아 다시 출근길 대열에 합류해야 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나의 우선순위는 경제 활동을 하면서도 운동을 할 수 있는 루틴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현재 수영 강습 시간이 10시 반에서 11시 반이기 때문에 일을 시작하게 되면 수영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조바심이 났다. 하지만, 그때가 되면 새벽 수영을 찾아보려고 한다. 좀 먼 훗날이 되겠지만, 그리고 공약을 내 건 후보자가 이번 선거에서 당선이 되어야 하겠지만, 집에서 도보로 갈 수 있는 거리에 수영장이 포함된 스포츠센터를 건립하겠다고 한다. 치열한 경쟁을 어떻게 뚫어야 수영장에 내 한 몸 던질 자리를 확보할 수 있을까?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대는 기분을 안고 사전 투표를 하고 왔다.

 



나름 긴 시간을 지나왔다, 나 자신을 마주하기까지. 


그저 살아내 온 시간들을 뒤로하고 나는 이제 겨우 나를 마주하고 서 있는 기분이 든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은 없다. 각자의 사정이 없는 가정도 없다. 결국은 이겨낼 수 없을 거라 생각한 고통마저 이겨내고 생을 이어가고 계신 분들이 존재한다. 아! 나라면 절대 버텨내지 못했을 거야, 나라면 그대로 생을 포기하고 말았을 거야, 싶은 생각이 드는 분들도 오늘 하루를 살아낸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한다.   


생명은 그 자체로 존엄하다, 고귀하다. 내가 가진 생명 또한 그러하다. 비록 타인에 의해 그러한 대접을 받지 못하거나 나의 존재가 거절당한다고 해도, 나는 알아야 한다. 나의 생명은 고귀하고 존엄하며 존중받아야 마땅함을. 그 시작은 나 자신이어야 함을.


그래서, 오늘도 따뜻한 말 한마디 나에게 건네본다. 살아가보자 오늘 하루도! 잘 살아냈다 오늘 하루도!


나다운 봄을 시작하고 있는 나에게, 나는 누구보다 큰 응원과 사랑을 보낸다.


** 그동안 저의 글을 읽어 주시고 응원해 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


각자의 봄이 따사롭고 아름답기를 바랍니다(@석촌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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