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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침 Mar 17. 2024

습벽(習癖)

- 관음(voyeurism)에 대한 구차한 변명

ⓒ 스침



# 술자리 관음(觀淫)

- 소싯적 술자리 시비가 잦았던 건 못된 습벽 때문이었다. 동석한 지인들 속사정이야 빤하니, 나의 눈과 귀는 늘 옆 테이블로 쏠렸다. 무례한 시선은 "뭘 봐!"와 "내가 뭐!"로 이어져 고성이 오갔다. 그렇게 타인의 대화를 엿듣고 표정을 읽어 '스토리라인'을 만드는 버릇은 오랜 습벽이고, 아직 고쳐지지 않았다. 물론 요령이 생겨 지금은 시빗거리로 번지지는 않지만.


- 못된 버릇이 든 건 내 삶이 '건조'해서다. 호기심의 용량을 채울 용기와 실천력이 부족해 관찰자가 된 것. 그런 습벽의 대상이 꽃과 새 같은 사물이었다면 좋았을 것을, 별로 신뢰하지도 않는 '사람'인 점은 스스로도 의아하다.                                                                                                                                  





# 야쿠자와 샤워하다

- 술자리 관음증은 외국에서 병증이 더 도진다. 해석 불가한 언어를 쓰는 다국적 타인들은 훨씬 자극적인 대상이다. 물론 리스크도 크다.


- 도쿄의 동네 목욕탕에서 샤워를 하던 나는 옆 사람과 시선이 마주쳤다. 재빠르게 시선을 피했다. 목 위와 손발목 아래를 뺀 모든 신체 부위에 문신이 가득한 야쿠자였기 때문이다. 


"최 기자. 야쿠자랑은 절대 눈을 맞추면 안 돼. 큰 일 나!"


룸메이트였던 대구대 조소과 교수의 조언도 한몫했지만 오래 습으로 터득한 요령 덕에 목숨을 구한 것이다. 


    




ⓒ 스침

# 순기능과 역기능 

- 불치인 습벽에도 순기능이 있다. 외국어 젬병인 내가 혼자 곧잘 외국엘 드나드는 건 습벽으로 인해 타인의 표정과 말투 등의 정보를 빠르게 분석할 수 있어서다. 당연히 역기능도 있다.


- 연전(年前)에 국내 한 프로야구단의 스프링캠프 취재를 위해 오키나와엘 갔었다. 취재가 끝난 리조트의 저녁이 무료해 해변이 보이는 바를 혼자 찾았다. 주문과 동시에 빈정이 상했다. 단박에 내가 한국인임을 알아챘을 수염자리 넉넉한 일본인 웨이터는 으레 하기 마련인 인사말도 없이 무례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그의 불쾌한 표정에 '어디 조센징 따위가'가 숨어 있었다고 지금도 확신한다.    


ⓒ 스침

- 비싼 요금 때문에 일본에서 택시를 탄 적이 거의 없다. 대신 클래식한 차종과 다양한 컬러를 좋아해 사진에 담는다. 흰 와이셔츠에 검정 넥타이를 단정하게 맨 노 기사가 주차된 자신의 택시에 기대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그의 상념이 궁금했다.   


ⓒ 스침

ⓒ 스침




# 태도의 위악성

- 기회가 있을 때마다 "나는 사람을 신뢰하지도 애정하지도 않는다"라고 말하곤 했고 지금도 그렇다. 하지만 거리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앵글은 항상 사람을 향하고 있다. 각도만 달리할 뿐 배경의 중심에는 어김없이 사람이 있다.


- 그렇다면 "사람을 애정하지 않는다"는 나의 말은 위악을 부린 것이 된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혹은 덜 받기 위해 애써 거리를 두고자 했나?


- 여전히 나는 허약하고 어리며, 늦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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